해운업계의 우울한 현주소
지금의 해운업계 침체는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와 비슷하다. 호황기 때 발주된 선박이 침체기 때 건조ㆍ인도되면서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하지만 그 이후 상황은 판이하게 다르다. 1970년대와 달리 지금은 조선업계가 먼저 살아나고 있다. 이유는 뭘까.

진행상황을 보면 이번 상황도 유사하다. 2000년대 중반 중국은 본격적인 경제부흥기를 맞았다. 중국이 세계의 자원을 수입하고, 이를 제품으로 만들어 수출한 덕분에 해운업 규모는 몇배는 커졌다. 많은 발주가 이뤄졌고, 선박시장이 과열되면서 투기세력까지 선박을 발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데 조선업은 설비투자가 미리 이뤄지지 못해 선박 건조량은 밀려드는 발주량에 비해 적은 수준이었다. 문제는 세계 경기의 거품이 꺼지면서 금융위기가 발생했는데, 그 많은 발주 선박들이 본격적으로 인도된 시점이 그 이후라는 것이다. 전 세계 물동량은 둔화되는데 조선업 사상 가장 많은 선박이 위기 이후에 건조ㆍ인도됐다.

원인은 조선소들이 개발해 출시하고 있는 고효율선박에 있다. 고효율선박은 대형선 한척당 연간 연료비를 수십억원까지 절감할 수 있다. 그러하니 시황침체로 운임의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여유가 있는 선사들이 비용절감을 무기로 경쟁하기 위해 선박을 더 발주하고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공급과잉인 상황에 공급을 더 늘려가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고효율선박과 경쟁이 어려운 기존 구형선박들이 대량 폐선되면서 해운업이 살아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고효율선박의 숫자가 너무 제한적이다. 상당 기간은 구형선박이 공존하는 시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운임은 상승하기 어렵고, 해운시장에서의 업체간 양극화가 극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해운사가 모진 세월을 기약 없이 버텨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해운업의 경우, 바다의 상권을 한번 잃어버리면 회복하기 어렵다.
이제 어떻게 하면 우리 해운사를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다. 유럽국가처럼 보조금을 지급해야 할 것이지를 포함해 정부의 대책이 절실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해운 시황이 살아날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 해운업계가 살아날 것인가?’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flydon@koreaexi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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