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분할의 디스카운트 “쪼갤수록 깎인다”
기업분할의 디스카운트 “쪼갤수록 깎인다”
  • 강서구 기자
  • 호수 431
  • 승인 2021.03.10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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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정우철 바른투자자문 대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또다른 원인

“사업의 전문성과 핵심역량을 키우고, 주주가치 제고에 힘쓰겠다.” 기업들이 분할에 나설 때 투자자에게 제시하는 청사진이다. 하지만 기업의 분할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주주와 기업의 가치보다는 최대주주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기업의 잦은 분할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쪼갤수록 깎인다는 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정우철 바른투자자문 대표에게 기업분할의 위험요인을 물어봤다. 

“기업의 분할은 기업가치 상승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되레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우철 바른투자자문 대표는 기업의 분할을 국내 주식시장이 저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13년간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활약했다. 베스트 애널리스트에도 숱하게 이름을 올렸다. 우리나라의 기업 생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가 왜 기업의 분할·합병을 비판했을까.

✚ 이미 분할을 마친 LG화학뿐만 아니라 SK텔레콤 등 주요기업의 분할 이슈가 뜨겁다.
“그럴 수밖에 없다. 분할 이후 기업의 가치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 투자자와 신규 투자자의 수익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분할 손익을 따질 수밖에 없다,”

✚ 기업의 분할은 다반사다. 부정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업들은 사업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핵심역량에 집중하기 위해 분할을 꾀하겠다고 밝힌다. 하지만 기업 분할로 명확하게 이익을 보는 건 기업의 지배력이 높아지는 최대주주뿐이다. 일반주주는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 왜 그런가.
“기업을 지배하는 힘은 지분에서 나온다. 100%라는 한정된 지분에서 누군가의 지배력이 높아진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영향력이 낮아진다는 걸 의미한다. 기업 분할로 최대주주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일반주주의 지배력이 낮아지는 걸 좋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기업 분할로 기업의 가치도 달라질 수 있다.”

✚ 사실 투자자 입장에선 기업의 주가만 오르면 되지 않나.
“물론 그렇다. 문제는 기업의 분할이 일반주주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

✚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지난해 12월 LG화학이 배터리 사업(LG에너지솔루션)을 물적 분할하겠다고 밝히자 투자자가 크게 반발했다. 투자자가 LG화학에 베팅한 건 화학이 아닌 배터리의 성장성을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터리 부문이 빠져나가면 이를 보고 투자한 투자자는 투자 대상을 잃는 꼴이 된다. 분할 이후 LG화학의 주가가 하락하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 이른바 ‘지주사 디스카운트’의 영향인가.
“그렇다. ‘지주사 디스카운트’는 지주회사와 자회사가 모두 증시에 상장돼 있으면 실질적인 사업을 영위하는 자회사의 기업가치는 높아지고, 지주회사의 가치는 낮아지는 현상이다. 우리나라 지주회사가 저평가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투자자는 지주회사 지분을 갖고 있어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 최대의 적이 최대주주라는 푸념 섞인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기업의 분할을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요인으로 꼽은 것도 이 때문인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분할로 기업의 실적이 부풀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 쉽게 설명해 달라.
“A라는 그룹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A그룹은 실적이 1000억원인 상장 지주회사 B사와 실적 500억원 규모의 상장 자회사 C사를 거느리고 있다. B사는 분할로 떼어낸 기업이다. 문제는 A그룹이 지주회사와 자회사로 나뉘면서 실적이 부풀려진다는 것이다. 자회사 C사의 실적 500억원이 B사의 실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B사는 기존 실적 1000억원에 C사의 실적 500억원이 더해진 1500억원의 실적을 내는 기업이 된다. 여기에 C사의 실적 500억원까지 합하면 A그룹의 실적은 2000억원으로 증가한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실적이 500억원이나 늘어나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는 셈이다.”

✚ 지주회사의 가치가 실제보다 부풀려질 수 있다는 의미인가.
“선진 주식시장으로 불리는 미국은 지주회사 한곳만 상장한다. 나머지는 100% 자회사로 보유하고 있다. 애플·구글·디즈니 등 모두 그렇다. 모든 자회사의 가치가 지주회사에 집중되니 저평가받을 이유가 없다. 주식시장은 생각보다 매우 정확하고 냉정한 곳이다. 우리나라의 이런 사정을 외국인 투자자가 모를 리 없다. 대북리스크라는 지정학적 문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지주회사가 자회사의 지분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와 지분법 평가에 따라 지주회사에 반영되는 자회사의 실적은 달라진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잦은 기업 분할과 재상장이 기업의 평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최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분할·합병이 자주 일어나는가.
“그렇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활동할 당시에도 최대주주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기업을 분할하는 사례를 많이 봤다. 인적분할을 통해 분리한 기업을 몇년 후 재합병하는 방식으로 최대주주의 지분을 높인 상장사도 있었다. 당시 기업의 최대주주는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지분율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계속된 기업의 분할과 합병으로 투자자는 손실을 입었다. 더 큰 문제는 손실을 입은 투자자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기업의 분할과 합병이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해서도 최대주주의 지배력은 강화할 수 있지 않은가.
“물론이다. 증자나 자사주 매입을 통해서도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을 택하면 경우에 따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업 분할 후 재상장이라는 방식을 사용하면 신규 투자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기업이 분할 후 상장하면 투자자가 몰리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상장으로 시가총액이 늘어나면 기업의 규모가 커지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최대주주의 지배력을 높인다는 목적도 달성할 수 있다.”


✚ 지난해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지주회사의 자회사 의무 지분율 요건이 강화됐다. 기업의 분할·합병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는가.
“지주회사가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하는 자회사의 지분율이 상장사는 20%에서 30%, 비상장사는 40%에서 50%로 높아진 건 긍정적이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미국처럼 지주회사 한 기업만 상장하는 것이라고 본다. 한 기업만 상장하면 자회사 등 지주회사에 속해 있는 모든 기업의 가치가 상장사에 집중될 수 있다. 지주회사라는 이유로 기업 가치가 낮아지거나 잦은 분할로 일반투자자가 손실을 볼 가능성도 낮아진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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