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석유회사 진실공방

‘기존보다 20% 싼 기름, 가능하다? 가능하지 않다?’ 이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국민석유회사가 공언대로 20% 싼 기름을 국민에게 제공하면 된다. 문제는 국민석유회사가 출범한 지 8개월이나 흘렀지만 그 실체를 여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이태복 국민석유회사 대표는 “외국계 은행의 파이낸싱을 통해 기름을 구매할 수 있는 1억8000만 달러(약 190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며 “늦어도 내년 1월 안에는 실체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주식공모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허비해서다. 저렴한 기름값에 호기심을 갖던 국민도 이젠 피로감을 느낄 때가 됐다. 국민석유회사 측은 “주식공모만 제대로 진행됐어도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큰일 할 때마다 시비ㆍ마찰 반복
국민석유회사는 지난해 6월 21일 설립준비위원회(설준위)를 발족했다. 설준위는 인터넷 약정을 통한 ‘1인 1주 국민석유회사 주식 갖기’ 운동을 펼쳤다. 성과는 대단했다. 두달 후 약정액은 400억원을 돌파했고, 그로부터 세달 뒤엔 1000억원을 넘어섰다. 돈이 오간 것은 아니었지만 싼 기름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충분히 표출됐다.
이 열망을 발판으로 국민석유회사는 올 3월 정식 출범했고, 두달 후인 5월 13일엔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에 석유수출입업 등록을 마쳤다. 상큼한 출발이었지만 국민석유회사를 둘러싼 논란은 사실상 이때부터 불붙었다. 석유수출입업 등록이 ‘조건부’였기 때문이다. 산자부는 “30일분의 제품(5000kL 이상)을 보유할 수 있는 유류저장시설을 갖추고 본등록을 하기 전까지는 ‘조건부 등록’ 상태”라며 “이 상태로는 석유수출입업을 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20% 기름값에 의문을 표하던 일부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사업도 할 수 없는 조건부 등록을 했다’며 논란을 부채질했다.
그러나 국민석유회사가 조건부 등록을 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주식공모를 통해 자금을 모은 뒤 석유수출입업 등록을 추진했다가 혹여 자금이 모이지 않으면 사업 자체가 무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건부 등록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확신’을 주려 했다는 게 국민석유회사 측의 주장이다. 실제로 국민석유회사는 주식공모를 시작하기 전인 10월 14일 경기도 평택에 있는 유류관리업체 탱크터미널 주식회사와 유류저장탱크 사용계약을 체결했다. 더구나 이 회사의 탱크용량은 3만kL로, 등록조건 5000kL보다 6배가량 컸다. 약속을 보란 듯이 지킨 셈이었다.
그런데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국민석유회사 측이 올 9월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자 금융감독원이 수차례에 걸쳐 정정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에선 이번에도 “국민석유회사의 사업계획은 의문투성이”라고 꼬집었다. “주당 공모액이 평가보다 높고, 1년 내 20% 싼 기름을 도입하지 못하면 투자금을 떼인다” “공모금 횡령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심지어 회사채와 기업어음(CP)으로 물의를 빚은 동양사태와 연결하는 시각도 있었다.

실체 보여줄 때까지 논란 이어질 듯
국민석유회사는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막히거나 지적을 받는 부분은 개선하면서 사업을 꾸준하게 추진해왔다. 다섯번의 정정신고서를 내며 주식공모를 현실화한 건 단적인 사례다. 현재 국민석유회사는 1억8000만 달러의 자금을 확보했다. 국민석유회사를 공격하던 언론은 잠잠하다.
이쯤 되면 국민석유회사는 다양한 문제제기에 충분한 반박논리를 갖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20% 싼 기름을 실제로 공급할 수 있을지가 입증된 건 아니다. 논란의 불씨를 완전히 끄려면 ‘기름’을 국민에게 팔아야 한다. 그때까진 국민석유회사는 가시밭길을 걸을 게 분명하다. 국민석유회사를 둘러싼 의혹을 검증하는 일도 계속해야 한다. 기름은 유전과 마찬가지로 ‘투기’에 가장 가까운 원자재라서다.
Issue in Issue | Box Interview 이태복 국민석유회사 대표
“참고 또 참았다 … 신기루 걷힐 것”

“1000억원 공모는 국민적 관심을 높이고, 재원을 확보한다는 두가지 측면에서 진행했다. 그러나 애초부터 1000억원 공모가 쉬울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식공모와는 별도로 지난해 9월부터 진행해왔던 일이다.”
✚ 외자유치는 국민석유회사의 애초 취지에 맞지 않아 보인다.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어서 ‘외자유치’라고 보도자료를 냈다. 그랬더니 외국계 돈이 국민석유회사에 유입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더라. 사실은 파이낸싱이다. 기름을 현물담보로 은행이 중간에 끼는 거다. 이를테면 은행돈으로 기름을 사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외국계 은행이 국민석유회사에 투자를 한 게 아니라 돈을 빌려준 거다. 물론 이자가 발생하지만 기름을 팔아서 대금을 갚으면 충분할 것이다.”
✚ 그럼 기름을 확보했다는 얘기인가.
“몇몇 해외유류공급업체와 휘발유ㆍ경유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최종견적서도 이미 받아놓은 상태다. 일부에서 구하지 못할 거라던 ‘저장탱크’도 확보했다. 이렇게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는데, 실체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 일부에선 20% 싼 기름이라면 품질이 떨어질 거라고 우려하는데.
“말이 안 된다. 아무리 싸도 국내 품질 기준에 맞지 않으면 수입 자체가 안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국내 기준에 따르면 유럽에서 쓰는 좋은 기름을 들여오려 해도 질을 떨어뜨려야 한다. 웃기는 일이다.”

“다 못 팔면 도매로 공급할 수 있고, 다시 해외에 되팔 수도 있다. 걱정 없다. 싸게 들여오는 기름인 이상 국민이 쓰는 게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 계획보다 사업진행이 더디다는 지적이 있는데.
“사업 진행을 일부러 늦춘 적은 없다. 증권사가 요구하는 말도 안 되는 시장 진입 장벽들을 수용하며 가다보니 늦어진 것뿐이다. 최대한 돌파구를 만들며 사업을 현실화해 가고 있다.”
✚ 20% 싼 기름을 국민 눈앞에 보여줄 수 있나.
“기름을 수입하려면 국내 품질기준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한번 가공을 해서 들여와야 한다. 가공할 공장도 이미 구해 놨다. 자금이 확보된 만큼 늦어도 내년 1월 안에 기름이 들어올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또 늦어지는 건 아닌가.
“시중에 있는 30여곳의 주유소들과 공급계약을 맺어놓은 상태다. 우리가 기름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 계획보다 늦어지면 안 된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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