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 사람을 만나다보면 첫 만남부터 인상이 좋아 계속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두 번 다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은 이도 있다. 또 여러 번을 봐도 아리송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범했던 첫인상과는 달리 볼 때마다 새로운 매력을 풍기는 사람도 있다. 이들 중 누군가는 인생을 함께 걷는 동반자가 되고 평생 우정을 쌓아갈 좋은 친구가 되며, 얼굴을 붉히는 원수지간이나 별다른 친분이 없는 소원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예술 작품은 사람을 닮았다. 삶의 과정에서 여러 사람을 마주하듯 우리는 종종 예술 작품을 만난다. 발길을 오래 머물게 하는 작품, 한번만 봐도 머릿속에서 쉬이 지워지지 않는 작품, 특별한 느낌 없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작품 등 예술작품과의 만남 또한 다양한 느낌과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작품에 반영된 현대인의 모습
필자 역시 삶과 여행을 통해 고전미술에서부터 현대미술까지 여러 장르에 걸친 수많은 예술작품을 만나왔다. 그중 요즘 들어 눈길을 잡아끄는 건 21세기 현대미술 작품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이름난 고전미술과는 다른 매력을 갖고 있어서다. 현대예술작품은 실제로 현시대를 사는 우리와 닮은 구석이 많다.
최근 청담동에서 열린 ‘강남 마이동풍전展’에서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 작가가 ‘말’을 주제로 만든 작품을 선보였다. 남산타워가 보이는 음산한 새벽하늘 아래 어쩐지 고독해 보이는 한 마리의 말이 무심한 듯 서있다. 주위에는 전쟁터에서나 볼법한 다양한 전투기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미사일과 폭탄을 쏘아대며 말을 공격하고, 폭격이 가해진 자리에는 ‘펑’하고 폭염이 터진다. 그러나 이내 불길이 사라지면 말의 피부에 난 상처 자리에는 아름답고 화려한 꽃들이 풍성하게 피어오른다.
말은 도시의 하늘 아래에서 전쟁과 같은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아를 닮았다. 치열한 일상 속에서 우리 안에 내재된 욕망은 상처와 생채기를 통해 나타난다. 그러나 그 욕망은 ‘꽃’처럼 아름다운 것들이다. 힘들고 지치는 삶 속에서 때론 상처를 주고받지만 그 상처 안에서 다시 치유하고 극복하며 결국에는 모두 함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또 다른 작품으로 ‘풍랑 속의 말’이 있다. 웅장한 바다 위를 표류하는 말, 미지의 수평선을 바라보는 말의 고독한 뒷모습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처럼 쓸쓸해 보인다. 잔잔한 파도가 말의 뒷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는 말할 수 없는 애잔함이 느껴진다. 시간이 흐르면 말은 점점 파도가 부서지듯 사라지고 다른 말 몇 마리가 등장해 바다 위를 힘차게 뛰어다닌다.
제도 안에서 억압된 심리와 표출하고 싶은 욕구를 표현한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지친 현대인과 마주한다. 일상의 치열함, 목표를 잊은 채 무기력하게 흘러가는 삶 속에서 현대인은 외롭고 고독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내면에 남아 있는 열정, 세상과 소통하고 꿈을 위해 더 역동적으로 뛰고 싶은 또 다른 자아가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치열한 삶의 과정 속에서 종종 상처받지만, 그 상처를 치유하고 또다시 행복을 추구하는 모습.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도 내면의 열정과 마주하며 다시 힘을 내는 나의 모습. 현대미술은 그렇게 우리의 모습을 닮았다.
마치 마음이 통하는 것 같은 작품 앞에 서면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좋은 친구를 만난 것 같이 든든하고 행복해진다. 살아가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는 것처럼 일상에서 현대미술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마음이 잘 맞는 친구를 얻은 듯 행복해질 것이다.
손보미 프로젝트에이에이 대표 katie.son@theprojecta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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