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 김미선 기자
  • 호수 53
  • 승인 2013.08.13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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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Part1]성공·실패 사례로 본 위기대응전략

사람도 그렇듯 기업도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위기는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중요하다. 한때 주당 100만원이 넘으면서 황제주라 불리던 남양유업 주가가 날개 없이 추락하고 여객기 추락사고 하나로 여론의 지탄을 받는 아시아나항공이 이를 잘 보여준다.

▲ 위기관리는 이슈 발생 시점 이후부터 시작되는 게 아니다. 철저한 매뉴얼과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

올 7월 7일 3시 30분(한국 시간). 아시아나 여객기(보잉 777)가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중 활주로에 충돌했다. 바다 쪽에서 육지로 접근하다 기체 뒷부분이 제방에 부딪히면서 동체가 활주로에 그대로 미끄러졌다. 이 과정에서 기체 후미 부분이 아예 떨어져 나갔다. 승객들은 사고 직후 비상 탈출구로 급히 빠져나왔지만 현재까지 중국인 여학생 3명이 숨지고 180여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사로 이어졌다.

이번 사고는 아시아나항공 창립 후 발생한 3번째 여객기 추락 사고다. 국제선 사고로는 처음이다. 첫 사고였던 만큼 아시아나항공의 대응은 빠르지도 유연하지도 않았다. 뒤늦은 기자회견이 가장 대표적인 문제로 거론되는 부분이다. 아시아나항공 경영진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최초 공식 기자회견은 7월 7일 오후 3시 30분 진행됐다. 사고 발생 후 무려 12시간이 지난 시점이다. 대한항공 괌추락 사고가 있었던 1997년, 당시 대한항공의 첫 공식 기자회견은 사건 발생 후 약 6시간 후 열렸다.

위기관리는 철저한 준비에서 시작
 

 

2배나 빠른 시점이다. 아시아나항공의 뒤늦게 열린 기자회견은 내용마저 미흡했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 업체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용민 대표는 “사고 12시간 후 열린 아시아나항공의 최초 공식 기자회견은 육하원칙에 따른 사고 공지 이외에 별다른 게 없었다”며 “세부적인 상황파악이나 피해자들을 위한 공감대 형성이 전혀 없는 부족한 기자회견이었다”고 평가했다.

아시아나항공의 미숙한 초기 대응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실제 사고가 발생한 미국에서의 사고 대응은 더욱 심각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이 사고 현장에 사장과 직원들을 파견하는 데는 꼬박 사흘이 걸렸다. 대한항공 괌항공 사고대책반은 사고 발생 7시간 후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아시아나항공 사고대책반은 이보다 늦은 10시간 후 공항서 출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7월 10일 “기업은 재난이 발생하면 빠르게 위기 모드로 전환한다”며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은 늑장 대응을 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정용민 대표도 “위기관리가 발생할 때 빨리 움직일 수 없었다는 건 사전에 준비가 덜 돼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며 “시의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은 문제”라고 말했다. 대외 커뮤니케이션도 허점투성이다. 아시아나항공은 미국서 단 한 번의 기자회견도 갖지 못했다. 당초 공항에서 내외신 기자브리핑을 계획했지만 미국 교통안전위원회로부터 조사에 영향을 미치는 언행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탐탁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시아나 항공에 미국 커뮤니케이션 기업들이 위기관리를 해주겠다고 제의했지만 관심 없다는 대답으로 일관하며 미국 내 대변인을 내세우는 것도 거절했다”고 꼬집었다. 정용민 대표는 “사고 발생 이후 시점에서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대행업체를 선정하는 것은 위험하다”면서 “하지만 사고 전부터 현지 언론에 대응 가능한 대행사를 선정하고 준비하지 못했던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실 일어나지도 않은 위기사항에 완벽하게 대비하고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하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업 평판도는 크게 달라진다. 2011년 4월 7일, 현대캐피탈 175만명에 달하는 고객 정보가 유출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현대캐피탈은 4월 8일 피해 규모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킹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당시 노르웨이 출장 중이었던 정태영 현대캐피탈 사장은 4월 9일 급하게 귀국해 회의를 열고 바로 다음날인 4월 10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사태가 발생한 데 대해 고객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후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했다. 당시 현대캐피탈의 내부 변호사들은 소송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책임진다’는 발언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 사장은 소송보다는 고객의 피해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는 또 기자회견에서 조사 결과의 상세한 공개는 물론 상황 수습 방안, 재발 방지 노력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밝혔다. 이후 비판 여론은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운이 없었다”는 동정론까지 생겨났다. 정용민 대표는 “해외 경험 등이 풍부한 정태영 사장은 대표적인 오픈마인드 CEO”라며 “때로는 강력한 리더십이 위기관리 시스템을 대신한다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위기관리 극약 처방은 ‘리더십’ 


같은달 NH농협도 갑자기 전산망이 마비되며 현대캐피탈과 비슷한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대응 면에서는 현저하게 달랐다. 농협은 사건 발생 후 3일이 지나서야 첫 기자회견을 갖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하지만 이자리에 나선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약속이나 사고 원인을 알리기보다 준비해온 사과문을 읽는 데만 급급했다. 이후 최 회장은 사건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이재관 전무이사가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하며 사건이 일단락될 수 있었다. 금융권 위기관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농협과 현대캐피탈의 사례가 함께 거론되는 이유다. 

▲ 위기관리는 이슈 발생 시점 이후부터 시작되는 게 아니다. 철저한 매뉴얼과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

최악의 위기관리 기업으로는 남양유업이 손꼽힌다. 최근 피해대리점협의회와 극적인 타결을 이뤘지만 그동안 잃은 게 너무 많다. 위기관리를 적재적소에 하지 못한게 이유다. 올 7월 초 공정거래위원회는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행위 등 불공정행위에 대해 과징금 123억원을 부과했다.

남양유업의 허술한 위기관리는 녹취파문 직후부터 지적받아 왔다. 특히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은 5월 초 욕설녹취 파문 이후 있었던 대국민 사과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재량권이 없는 김웅 대표와 임직원을 내세웠다. 처음부터 진정성이 빠진 사과라는 비난이 일었다.
 

 
이후로도 남양유업은 피해대리점협의회측과 정기 교섭을 가졌지만 이렇다 할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오히려 검찰에서는 혐의 내용을 부인하고 심지어 현직 대리점주로 구성한 대리점 협의회를 구성해 “어용 단체를 설립해 조직 와해를 시도한다”는 의혹까지 받았다. 심지어 국회의원과 시민단체까지 나서 남양유업에 수차례 시정을 요구했지만 앞에서는 “알았다”고 해놓고 피해 대리점주 협의회 앞에서는 말을 바꾸며 간극을 키워나갔다.

이선근 경제민주화를위한민생연대 대표는 “남양유업은 외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까지 감추는 데만 급급해 피해를 키워나갔다”며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대리점주들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는 홍원식 회장의 탐욕경영이 결국 회사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고 말했다. 위기가 닥쳤을 때 현명하게 대처하면 박수갈채를 받는다. 위기의 순간에 애먼 선택을 하면 기업의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

남양유업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즐기지는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상황을 매듭지어 나가는 현명함이 절실하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story6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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