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 반열 오른 토리 버치

뉴욕에서 상하이上海까지 세계적 도시에서 더블티(Double T) 로고의 토리버치 플랫슈즈를 신고 토트백을 멘 여성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토리버치는 2009년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심혈을 기울여 들여온 브랜드다. 2010년 청담동에 단독 플래그십 매장을 론칭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명동과 남대문 시장 거리에는 토리버치 로고의 카피제품이 즐비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루이뷔통·구찌 브랜드의 짝퉁제품이 대부분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에서는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토리버치 컬렉션을 즐겨 입는다. 오프라 윈프리 외에도 가십걸로 유명한 블레이크 라이블리, 캐머런 디아즈, 제니퍼 로페스, 기네스 팰트로, 힐러리 스웽크 등이 토리버치를 찾는 단골 스타다.
사교 뒤에 숨은 치밀함
전 세계 여성들이 열광하는 토리버치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2004년 2월 미국 뉴욕 놀리타 지역의 엘리자베스가에서 오픈한 부티크가 시작이다. 업력이 10년이 채 되지 않은 셈이다. 토리버치의 디자이너이자 현재 토리버치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토리 버치는 이 브랜드로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올해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위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비결은 뭘까. 많은 이들은 버치의 ‘사교능력’을 꼽는다. 버치의 첫 부티크는 오픈 첫날부터 상류층 인사와 패션계 거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들은 버치의 제품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이는 버치의 인맥 덕이다. 필라델피아 사교계 출신인 그는 대학 졸업 후 뉴욕으로 건너가 랄프로렌, 베라왕 등 유명 디자이너 밑에서 일하며 패션과 마케팅 업무를 배웠다.


일부에선 버치의 이런 성공을 ‘운’ 때문이라며 깎아내린다. 제품보다 사교활동으로 브랜드를 키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버치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버치만큼 브랜드 홍보를 위해 혼신의 힘을 쏟는 CEO는 드물다. 2009년 버치는 미국 인기 드라마 ‘가십걸’에 카메오로 등장했다. 글로벌 패션시장을 주무르는 CEO가 드라마에 출연한 것만으로도 큰 화제를 일으켰고, 이는 브랜드를 알리는 데 한몫 톡톡히 했다. 지난해 한국에 왔을 땐 SBS 드라마 ‘패션왕’에도 깜짝 출연했다. 그의 열정이 읽히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그는 치밀한 CEO다. 자신의 브랜드 ‘토리버치’를 대충 론칭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팀원들과 8개월 동안 론칭을 준비했다. 워킹맘이던 그가 ‘토리버치’의 출시를 준비할 때 아이들을 재워놓고 새벽 4시까지 홍콩사무실과 업무를 본 일은 유명한 일화다. 이 때문인지 토리버치의 브랜드는 콘셉트가 확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액세서리·핸드백·슈즈와 의류 등 다양한 패션 아이템을 취급하는 토리버치의 콘셉트는 프레피 보호(Preppy-boho)다. 프레피 보호는 엘리트 느낌을 대표하는 ‘프레피’와 1960년대 향수가 느껴지는 ‘보헤미안’이라는 두가지 말을 결합한 것이다.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최고 자리에…
버치를 둘러싼 오해는 또 있다. 그는 상류층과의 사교활동에 모든 걸 쏟아붓는 스타일이 아니다. 트위터 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대중과 ‘소통’을 시도하는 걸 더 즐긴다. 회사 운영시스템이 바뀌거나 공장으로부터 물건을 제때 공급받지 못할 때도 SNS로 이 사실을 알린다. 문제가 생기면 감추기보다 많은 이들과 공유하며 해법을 찾는 게 그의 스타일이다.


버치의 성공에 ‘네트워킹’이 들어있던 건 사실이다. 스스로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네트워킹과 협력의 끈은 자신의 운을 만들어주는 힘이 된다.” 그러나 그의 네트워킹은 가만히 앉아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때론 발품을 팔고, 때론 소통창구를 만들어 구축한 것이다. 버치는 사교계의 여왕이자 세계 최고의 여성 CEO일지 모른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story6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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