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신수길의 일본국왕 책봉식이 거행됐다. 이번 책봉으로 명나라와 일본은 화의를 맺었다. 하지만 조선과 일본의 화의는 성사되지 않았다. 수길은 조선의 사신 황신을 벼슬이 낮다는 이유로 보기를 거절했다.

그래도 수길의 웅심은 그치지 아니하여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을 만한 가궁전假宮殿을 다시 짓고 책봉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이날에 정사 양방형은 앞에 서고 부사 심유경은 금으로 조각한 일본왕의 인장을 들고 뒤를 따르고 일본측으로는 덕천가강 모리휘원 부전수가 전전리가前田利家(마에다 도시이에) 등 각제후가 벌여 섰다.
예식이 시작되매 수길이 누른 장막을 열고 지팡이를 짚고 청의동자들을 뒤에 세우고 식장에 나왔다. 그는 무릎이 아프다 하여 지팡이를 짚은 것이었다. 배례는 무릎이 아파서 행할 수 없다고 핑계하였다.
수길이 나오매 좌우 시위가 무슨 호령을 하는데 모인 사람이 다 송구하여 엎드렸다. 이 소리에 책봉 정•부사까지도 겁이 나서 엎드려 버렸다. 수길은 명나라 사절이란 것이 자기 앞에 굴복하는 것을 보고 한번 웃더니 이리로 오르라고 말하였다. 마치 상국 군왕이 하국 사신을 불러 보는 것처럼 명령을 자기 뜻대로 하는 것 같았다.
소서행장이 수길에게 말하기를 “천조天朝에서 온 사신을 우대해야 합니다” 하였다. 이에 심유경은 일어나 수길의 앞에 나아가 명나라 황제가 하사한 금인金印과 왕복을 주고 또 수길의 신하되는 사람 중에 덕천가강ㆍ직전신웅ㆍ전전리가ㆍ모리휘원ㆍ부전수가ㆍ상삼경승上杉景勝(우에스키 가게카쓰)ㆍ소조천수추小早川秀秋(고바야카와 히데아키)ㆍ흑전효고ㆍ생구친정ㆍ중촌일씨中村一氏(나카무라 가즈우지) 등 10인에게는 도독ㆍ굴미길청堀尾吉晴(호리오 요시하루)ㆍ천정장정ㆍ증전장성ㆍ석전삼성ㆍ협판안치ㆍ도진의홍ㆍ소조천융경ㆍ가등청정ㆍ소서행장ㆍ구귀가륭 등 10인에게는 아도독ㆍ장속정가ㆍ전전현이前田玄以(마에다 겐이)ㆍ흑전장정ㆍ과도직무ㆍ이달정종ㆍ장종아부원친ㆍ가등광태ㆍ종의지ㆍ가등가명ㆍ대우의통ㆍ송포진신ㆍ등당고호ㆍ봉수하가정ㆍ입화종무ㆍ천야행장浅野幸長(아사노 요시나가) 등 15인에게는 도지휘사, 기타 15인에게는 아지휘사의 관작과 인장을 주고 관복과 칙유문勅諭文을 주었다.

奉天承運皇帝 制曰 聖仁廣運 凡天覆地載莫不尊親 帝命溥將 暨海隅日出罔不率俾 昔我皇祖 誕育多方 龜紐龍章 遠錫扶桑之域 貞珉大篆 榮施鎭國之山 嗣以海波之揚 偶致風占之隔 當茲盛際 宜讚彜章 咨爾豊臣秀吉 崛起海邦 知尊中國 西馳一介之使欣慕來同 北叩萬里之關懇求內附 情旣堅於恭順 恩可靳於柔懷 茲特封爾日本國王 錫之誥命 於戲 寵賁芝函襲冠裳於海表 風行卉服 固藩籬於天朝 爾其 念臣職之當修恪循要束 感皇恩之已渥無替款誠 祗服綸言 永尊聲敎 欽哉 萬曆 二十三年1) 正月 二十一日 御寶御符捺着
봉천승운황제는 제 하노라. 탕임금, 요임금은 무릇 하늘 땅 사이에 존경하고 친애하지 않는 자가 없었나니 황제의 명령을 크게 받아 멀리 해돋는 동쪽 나라에까지 미쳐 모두 믿게 따르고 하였도다. 옛날 우리 황조2)께서 여러 지방의 제후를 탄육하여 귀문과 용문을 멀리 부상의 땅에 하사하고 빗돌에 대전으로 써서 영광이 진국의 산에 미치고 해파의 드날림을 이어 마침 풍신의 구역에 이르렀으니 이 태평성세를 맞아 마땅히 예법을 계승할지어다.
그대 풍신수길은 섬나라에서 나서 중국을 높일 줄 알고 일개 사신을 서쪽으로 달려 흠모하여 함께 하고자 하고 북으로 만리의 관문을 두드려 복종해서 따르기를 간절히 구하매 그 공손한 정이 이미 굳은지라 은혜를 베풀어 품을 수 있도다. 이에 특별히 그대를 일본국 왕으로 봉하여 고명을 하사하는 도다. 조서를 꾸며 은총을 내리나니 바다 바깥에서 의관제도를 물려받아 오랑캐들에게 행해지도록 하여 굳건히 천조에 울타리가 되도록 하라. 그대는 신하의 직분을 맡았음을 유념하여 삼가 좇고 단속하며 황은이 이미 분에 넘침을 새겨 이 정성 변치 말지어니 다만 황명에 복종하고 황상의 가르침을 길이 따르도록 하라. 만력23년 정월 21일 어부에 어보를 넣어 날인해서 보내다.
이튿날 수길은 명나라에서 내린 일본국 순화왕順化王의 망룡포를 입고 익선관을 쓰고 옥대를 차고 적석을 신고 또 그 휘하 제후들도 각기 품계를 따라 명나라 조정에서 내린 관복을 입고 책봉사 일행을 주빈으로 하여 연회를 차렸다. 이날 밤에 잔치를 파한 뒤에 수길은 글 잘하는 태장로兌長老 철장로哲長老 등을 불러들여 명나라 황제가 보낸 책봉문을 일본말로 번역하여 읽으라 하여 듣더니 “너로 일본왕을 봉하노니” 하는 구절과 “신하되는 직분을 닦아야 한다”는 구절에 이르러 수길은 웃으며 또 노하였다.
하여간 이번 책봉으로 하여 명나라와 일본이 화의는 되었다고 하겠으나 조선과 일본의 화의는 아직 되지를 아니하였다. 수길은 조선의 사신 황신을 벼슬이 낮다 하여 보기를 거절하였다. 수길은 “내가 포로로 잡힌 두 왕자를 놓아 보냈거든 저희도 왕자를 보내어 사례를 해야 옳지. 그래 미관말직을 보내어 되나?” 하고 조선사신을 불러 보려고는 아니하였다.
대담하게 큰소리 잘하던 심유경도 수길의 앞에는 벌벌 떨고 입을 벌리지 못하였다. 평조신이 생각하되 조선과 화의를 하여야 전쟁이 없어질 것이라 하여 수길의 앞에서 건의하여 조선사신도 차제에 만나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간청하였다.
수길이 노하여 “조선서 왕자를 사신으로 들여보내기 전에는 불러볼 수 없다” 하며 소서행장 등의 강화파를 가리켜 “너희들이 하는 일이란 것이 다 무엇이냐? 명나라에서 나를 봉왕한다더니 명나라에 속한 지방을 주어서 봉왕하는 것이 아니고 결국 일본 나라의 왕이고 보니 내가 일본 일국의 60여주를 통일한 이상에는 사실상 일본왕이니 명나라 황제가 봉왕하기를 기다릴 것이 있느냐 모두 너희 놈들의 농간이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깐 책봉사절 일행은 다시는 수길을 만나보지를 못하고 또 수길이 대명황제에게 올릴 사은표라는 회답문도 어쩌지를 못하고 섣불리 굴다가는 목숨이나 잃어버릴 것을 두려워하여 슬몃슬몃 꽁무니를 빼어서 일본을 떠나고 말았다고 하였다.
조선통신사 황신은 일본과 화의가 이루어지지를 못한 것과 수길의 생각이 반드시 그대로만 있지 아니 할 것을 조정에 보고하고 적의 대군이 또다시 움직일 것을 예고하였다. 이 보고를 받은 선조는 눈물을 흘리며 우상 정탁을 갈고 이원익을 우의정 겸 도체찰사를 삼아 적군을 막을 방책을 맡겼다. 이원익은 적극적으로 적과 싸울 힘이 없는 이상에는 소극적으로 청야전술3)을 쓰기로 하여 영남 호남 호서 3도를 순력하여 먹을 곡량과 인민을 모두 각 산성으로 옮겨서 적이 오더라도 군량을 어쩌지 못하게 하였다.
경상우병사 김응서는 소서행장과 또는 요시라와 여러 번 왕래교접한 일이 있어 일본 뇌물도 많이 받았다. 한 번 교접할 때면 매번 뇌물이 행해졌다는 소문이 조야에 낭자하였다. 선조는 이 소식을 듣고 노하여 엄히 견책하라는 교지를 내렸다. 그때 김응서뿐만 아니라 알고 보면 도원수 권율과 명 제독 유정의 무리들도 임유정 가등청정을 통하여 그러한 사실이 있었으나 서로西路 출신인 김응서만 견책을 받았다. 그 엄견책의 칙유문은 이러하였다.
王若曰 禍慘國家 讐在宗社 尙未迅掃妖氛 孰不扼腕腐心 卿以對壘之將 不奉朝廷命令 擅對賊面 敢述悖逆之辭 累通私書 顯有尊媚之態 修好講和之說 小無顧忌 自陷罪辟 予甚怪駭 卿其改心惕勵 毋貽後悔 云云

김응서는 적군과 싸우기도 두려워할 뿐 아니라 적의 뇌물에도 마음이 팔렸던 것이었다. 김응서뿐만 아니라 권율과 임유정까지도 이러한 허물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때 삼도통제사 이순신이 김응서가 조정의 견책을 당한 말을 들었다. 도원수 권율도 김응서가 사신 요시라와 왕래 교섭한다는 내정을 알고도 말을 못한다는 것까지 순신은 다 들었다. 순신은 분개하고 한탄함을 마지아니하였다. 순신은 생각하되 김응서란 사람은 그 위인이 과오를 뉘우치거나 고치려 할 사람이 못되니 장래에 또 무슨 사달을 저질러 낼 것이라 하여 염려하였다. 만일에 김응서가 사람 같으면 조정의 이러한 엄책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라도 할 것이라고 그 난중일기에 기록하였다.
소서행장과 요시라의 반간계가 김응서를 통하여 성공이 되어 권율이 그를 조정에 보고함으로써 이순신이 모해를 당해 감옥으로 잡혀가고, 원균이 수군대장이 되어 삼도의 병선이 칠천도에서 전멸이 되고, 한산도의 수군 근거지가 적군에게 유린을 당하게 되고, 남도 유민 100만명이 어육이 되는 참화를 면치 못하게 된 것은 선조의 우유부단으로 그때에 김응서를 죽이지 않아 반간계가 성공한 까닭이었다.
정리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자료제공 | 교육지대(대표 장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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