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티오프 시간은 1시간 전
골프 티오프 시간은 1시간 전
  • 이병진 발행인
  • 호수 49
  • 승인 2013.06.28 08: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난 예쁘지도 않았고, 빼어난 연기력도 없었다. 대신 항상 먼저 와서 준비를 했었다.” 지난 50년간 수많은 스타 연예인들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강부자가 건재한 이유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골프 라운드 티오프 시간은 1시간 전으로 맞춰 놓아야 한다. 최악은 지각이다.

‘대한민국 아나운서 신화’ 차인태씨를 내세운 경인방송 간판 토크프로그램 ‘명불허전’에 최근 탤런트 강부자씨가 출연했다. “어떻게 50년이나 꾸준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는가”는 질문에 강부자씨는 “녹화나 출연 때 단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었던 것”이라고 답했다. 강부자씨 인생 성공 비결이다.

필자는 최근 부부 라운드를 가졌었다. 10여년만의 부부 라운드다. 상대 부부도 마찬가지. 오랜 지인인 이동주씨가 운영하는 포천힐스컨트리클럽은 집에서 1시간 이내의 거리다. 아내는 2시간 전에 출격 채비를 끝낸 상황이다. 그런데 배달된 아침신문의 와이드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었다. 호기심으로 읽다가 인물에 대해 더 확인하느라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어느덧 1시간이 흘러버렸다.

▲ 티오프(tee-off) 지각은 그날 동반자의 라운드를 망쳐 놓는다.
그리곤 적기 출현으로 항공모함에서 이륙하는 전투기 조종사처럼 골프장을 향해 내달렸지만, 두 번째 홀에서야 합류할 수 있었다. 아내는 주말아침 ‘광란의 질주’ 로 경직된 근육의 후유증 탓인지 라운드 내내 샷감이 풀리지 않았다. 필자의 지각이 십 수년만의 두 부부의 라운드를 망쳐버렸다.

후회도 후회지만 문제는 상대방이다. 기다림은 우리 고전에는 자주 한恨으로 표현된다. 절망적인 줄 알면서 한가닥 희망을 놓지 않는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이다. 상대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저 그렇다면 기다림은 분노나 원한으로 바뀐다.

미국 의학박사인 데이비드 마이스터의 논문 ‘기다림의 심리학’ 은 기다림에 대한 인간의 심리를 잘 분석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아무것도 할 것 없는 시간은 지겹다. 불안하면 더 지겹다. 무한정 기다리는 것은 더욱 지겹다.” 논문의 결론은 기다린다는 것은 지루하다는 것이다. 세계적 택배회사인 ‘FedEx’의 광고문구에는 다음에 같은 내용이 있다. “기다림은 화나고, 비도덕적이며, 성나고, 공격적이며, 성가시며, 시간낭비며, 참을 수 없는 낭비다!”

티업 임박해 도착하면 모든게 ‘꽝’

미국 경제학 박사인 프랭크 파트노이의 저서 「속도의 배신」에서 인용한 지각사례에선 성인 다섯명 중의 한 명은 거의 만성적으로 지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한민국 골프장 사정상 주말 황금타임에서 지각으로 티오프(tee-off) 시간을 늦춘다는 것은 대통령골프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피크 시즌의 주말 라운드라면 일찌감치 도착해 티타임으로 서로의 여유를 즐기는 것이야말로 골퍼들이 부킹한 이유이자 행복이다. 사업상 골프라운드도 그래서 한다.

화이트칼라의 라운드는 몇십분간 티타임에서 분위기를 돋구고, 라운드에서 상대방과 즐거워하며, 욕실에서 발가벗고 몸을 담구면서 결정적인 프로젝트의 실마리, 또는 타결의 대박을 얻는다. 허겁지겁 약속시간에 임박해 도착한다면 티타임은 물론 라운드 분위기조차 생략된 채 목욕탕에서 서론부터 꺼내야 한다. 꽝이다. 요즘엔 휴대전화가 있지만 아직도 시계를 찬 많은 화이트칼라들 중엔 일부러 5분 이상을 앞당겨 놓은 사람들이 많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상대방의 기다림으로 자신에게 닥칠 폐해를 알기 때문일 것이다. 절체절명의 사업이나 면담에서 지각을 했을 때 결과는 끔찍하다.

감히 이름을 거론하는데, 필자가 골프 매너에 관한 한 가장 존경하는 분은 박용민 두산그룹 고문(전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춘천 라데나CC 사장)이다. 30여년 박 고문과 골프라운드를 하면서 필자는 단 한 번도 그보다 먼저 클럽하우스에 도착한 적이 없었다. 박 고문의 티오프 시계는 1시간 30분 전이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절대 그렇지 않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간을 아끼는 것과 허비하는 것은 천양지차다.

 
강부자씨는 ‘명불허전’에서 “난 예쁘지도 않았고, 빼어난 연기력도 없었다. 대신 항상 먼저 와서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지난 50년간 수많은 스타 연예인들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강부자가 건재한 이유다. 반면 필자는 최근 ‘부부 라운드 사건’으로 장난 아니게 후유증을 앓고 있다. 골프 라운드 티오프 시간은 1시간 전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경인로 775 에이스하이테크시티 1동 12층 1202호
  • 대표전화 : 02-2285-6101
  • 팩스 : 02-2285-6102
  • 법인명 : 주식회사 더스쿠프
  • 제호 : 더스쿠프
  • 장기간행물·등록번호 : 서울 아 02110 / 서울 다 10587
  • 등록일 : 2012-05-09 / 2012-05-08
  • 발행일 : 2012-07-06
  • 발행인·대표이사 : 이남석
  • 편집인 : 양재찬
  • 편집장 : 이윤찬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병중
  • Copyright © 2025 더스쿠프.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thescoop.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