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 시동은 아직 끄지 않았다
‘헬리콥터’ 시동은 아직 끄지 않았다
  • 이기현 기자
  • 호수 49
  • 승인 2013.06.25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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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파트1]단서 많은 버냉키 전략
▲ 버냉키 FRB 의장이 출구전략의 첫걸음을 뗐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입을 열었다. “올해 말부터 양적완화 조치를 중단하겠다.” 시장은 벌써 요동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증시는 급락하고 국채금리는 치솟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게 있다. 버냉키의 ‘양적완화 중단선언’ 뒤에 수많은 단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벤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2012년 9월 13일(현지시간), 그는 깜짝 발표를 했다. 3차 양적완화(QE3)를 전격 발표한 것이었다. 외신은 “헬리콥터를 띄우기 위한 ‘시동 걸기(jump start)’를 선언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버냉키는 9월 12~13일 이틀간 열린 연방시장공개위원회(FOMC) 회의가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 실업률 상황에는 여전히 ‘중대한 우려(grave concern)’가 남아 있다”며 QE3를 실시해 월 400억달러 규모의 모기지 채권을 사들이는 한편 초저금리 기조도 2015년 중반까지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고도 노동시장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주택저당증권(MBS)을 계속 사들이고 추가 자산 매입에 나서는 동시에 또 다른 정책수단을 동원하겠다고 선언했다. 버냉키가 말한 중대한 우려는 이런 내용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잃어버렸던 800만개의 일자리 가운데 아직 절반도 회복하지 못했다. 8.1%에 달하는 실업률은 올해 초부터 거의 변화가 없다.” 그는 이런 상황을 ‘정상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QE3의 세부내용은 경제전문가들조차 깜짝 놀랄 만했다. 커먼펀드의 수석 투자전략가인 마이클 스트라우스는 “이번 조치는 경제에 추가적인 탄환을 제공할 것”이라며 “시장이 기대하던 것 이상”이라고 평가했다. TD 아메리트레이드의 수석 파생상품 전략가인 J.J. 키너한은 아예 찬사의 말을 던졌다. “오늘은 버냉키에게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자. 그는 시장에 신뢰를 줄 수 있는 말을 해야 했는데, 오늘 확실히 그렇게 했다.”시장은 환호했다. 국제금융 이코노미스트들은 QE3 규모가 5000억 달러에 달할 경우 실업률은 0.1%포인트 떨어지고 국내총생산(GDP)은 0.2%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경제의 화려한 부활을 QE3가 도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망은 맞아떨어졌다. 버냉키의 QE3 선언 이후 미국경제에는 봄바람이 불었다. 미 주택지표가 상승하고, 실업률은 떨어졌다. 경제성장률이 상승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전망도 쏟아졌다.

이때부터 버냉키의 고민이 또 시작됐다. 풀린 돈을 제대로 끌어들이지 못하면 인플레이션이 유발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시장은 버냉키의 입에 초점을 맞췄다. 올해 5월. 버냉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미 의회에서였다. “올해 말부터 채권매입을 축소하겠다.” 사실상 양적완화 정책을 철회하겠다는 거였다. 시장에 풀린 돈을 끌어들이는 ‘출구전략’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얘기다.

투자자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유럽 금융시장에 타격을 입혀, 되레 미국시장이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지출을 삭감해야 하는 미국정부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재정역풍에 대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버냉키는 출구전략 카드를 꺼낼 태세를 마친 듯했다.

▲ 버냉키가 양적완화 조치를 중단하겠다고 밝히자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사진은 한국외환은행 명동지점 딜링룸.

버냉키, 출구전략 암시했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버냉키는 월 850억 달러의 채권매입 프로그램을 올해 말 축소하겠다고 말했다. 2014년 중반에는 완전히 종료할 수 있다는 뜻도 밝혔다. 버냉키의 움직임은 예상범위 안에 있었지만 시장은 충격을 받고 있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6월 19일 206.04(1.35%) 하락한 1만5112.19에 마감했다.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같은 기간 2.308%로 0.126%포인트나 뛰었다. 지난해 3월 이래 최대 상승폭이다. 미국 이외에 이탈리아•스페인•영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도 올라갔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유럽과 아시아 증시도 급락했다. 특히 유럽 주요 증시는 6월 19일 하루 낙폭으로 1년7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영국 증시 역시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원유와 금 등 원자재 가격도 대폭 내갔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7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2.84 달러(2.9%) 하락한 배럴당 95.40 달러에서 거래를 마감했다. 런던 ICE선물시장에서 북해산 브렌트유는 4달러(3.77%) 빠진 배럴당 102.12 달러선에서 움직였다. 금값도 직격탄을 맞으며 2년9개월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8월물 금값은 6월 19일보다 87.80 달러(6%) 하락한 온스당 1286.20 달러에서 장을 마쳤다. 이는 종가 기준으로 2010년 9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제조업 지표 부진까지 맞물리면서 미국의 출구전략 충격파는 더 커지고 있다. 중국의 6월 HSBC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잠정치는 48.3으로 집계돼 지난해 9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시장의 전망치 49.1에도 미치지 못했다.

 

버냉키가 양적완화 축소선언 배경엔 미국 경제회복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 무엇보다 내년 경제전망에 대한 긍정적인 심리가 한몫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는 올 5월 7.6%였던 실업률이 2014년 말에는 6.5~6.8% 사이로 떨어질 거라는 전망도 포함된다. 상승하는 경기에 ‘탄력’을 붙이려 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뉴욕 금융컨설팅업체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버냉키가 출구전략을 선언하면 투자자들이 미국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버냉키의 선언에는 무언가 빠져 있다. 선언은 했지만 못을 박지는 않았다. ‘유연하게 대처하겠다’는 등 애매한 말을 덧붙였다. 채권매입을 축소하기 위한 ‘단서’도 여러개 달았다. “인플레가 FRB 목표치인 2%에 근접할 경우”라는 식이다. 평소 단호하게 상황을 정리하는 버냉키가 이처럼 ‘모호한’ 선언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첫째 이유는 FRB의 출구전략이 번번이 실패해서다. 그동안 FRB는 경제 회복 속도를 과대평가해 투자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두차례나 채권매입을 종료했다가 추가경기부양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버냉키가 시장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위험을 인식한 듯 “경제상황에 따라 양적완화를 조정할 것”이며 “연준이 같은 실책을 반복해 상황을 과대평가하게 된다면 정책도 그에 맞출 것”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이유는 채권매입 프로그램 종료에 대한 과대평가를 잠재울 요량이었을 것이다. 채권매입 프로그램의 종료는 양적완화의 철회로 가는 첫걸음일 뿐이다. 실제로 제로에 가까운 단기금리를 인상하는 것 같은 조치들이 시행되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한다. 출구전략,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버냉키는 시그널만 울렸을 뿐이다. 
이기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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