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파트2] 새 정부 출범 100일의 기록 | 고집스런 대북정책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핵실험, 개성공단 잠정폐쇄 등으로 골머리를 앓아왔던 남북관계에 청신호가 들어왔다. 북한이 6월 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의 특별담화 형식을 빌려 남북 당국간 실무회담을 제안하면서다. 개성공단 출입이 막힌 지 65일 만이다.
북한은 실무회담 의제로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관광 재개는 물론 이산가족 상봉 문제도 다룰 수 있다고 밝혔다. 회담시기와 장소는 남측의 재량에 맡겼다. 북한은 6•15공동선언 기념행사도 함께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을 의식해서인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체결된 7•4 남북공동성명 기념행사의 진행 가능성도 거론했다. 북한의 강한 대화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통일부는 약 1시간 만에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로부터 몇시간 후엔 “6월 12일 서울에서 장관급 회담을 갖자”는 입장을 내놨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첫 성과라고 할 만하다.
그동안 남북관계 경색으로 홍역을 앓은 개성공단입주기업협회(개성공단협회)와 현대아산엔 화색이 돌고 있다. 남북관계의 향배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우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장마철이 오기 전에 공단 설비를 손보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며 얼마 전까지 방북 신청 허가를 요구해온 개성공단협회로선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강산관광 중단 5년째를 맞으면서 경영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아산 측도 “남북의 당국 간 회담을 반긴다”며 “당국간 회담이 원만히 진행돼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개성공단을 비롯한 금강산관광이 조속히 정상화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율 없는 지시는 효과 없어
남북관계 정상화에 걸고 있는 이해당사자들의 기대감은 매우 크다. 하지만 북측에서 회담제의가 들어온 것만을 두고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무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기반으로 한 고도의 전략과 전술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독단적 결정으로 추진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5월 14일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대화제의는 통일부와 사전조율이 되지 않은 박 대통령의 공개적이고 일방적인 지시였다. 4월 11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북한 당국은 대화의 장으로 나오길 바란다”면서도 “공식 대화 제의는 아니다”고 말하자, 박 대통령이 한밤중에 “공식 대화 제의가 맞다”고 전한 일화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고집전략이 먹혔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북한이 당국 간 대화를 제의하자 청와대가 기다렸다는 듯 “정부를 믿고 기다려 준 국민에게 감사한다”고 밝힌 것을 보면 그렇다. 그렇다면 남북 당국 간 대화에서도 비슷한 전략이 사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측의 남북대화 제의가 ‘의미 있는 성과’라는 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가 ‘하나의 방법’만을 고집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홍민 동국대(정치학) 교수는 “남북경색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 남북한이 공감대를 갖고 있어서 작은 문제가 터져도 풀릴 가능성이 크다”며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처럼 비핵화를 모든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달지 않는다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민 교수는 “이전까지는 북한은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이 ‘공동의 이익’이라는 데 공감하지 못했다”며 “이 때문에 북한이 ‘공동의 이익’이라는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면 현 정부는 더 과감하게 접근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다만 “박근혜 정부는 정부 당국 간 루트만을 고집해왔는데, 사실 적십자사 등 다양한 루트를 이용할 수 있었다”며 “원칙을 보여주면서 기싸움을 하는 건 한두번으로 끝내고 향후엔 다양한 루트를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제의한 것은 개성공단 정상화가 아니라 기업들이 개성공단에 두고 온 완제품•원부자재 반출에 대한 문제를 마무리 짓자는 게 아니었냐는 거다. 김연철 교수는 “현 정부의 정책결정구조는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회담제의가 나온 건 다행이다. 분명히 정부 성과다. 다만 해당 부처가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것도 아니고 부처 간 조정이 잘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이 불쑥불쑥 개입하는 방식이다. 대북문제는 초당적 협력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펼친다고 했는데, 여기에 무슨 프로세스가 있나. 중요한 사안에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게 정책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보니 예측도 불가능하다. 로드맵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이래선 향후 문제들을 풀 수 없다. 각 부처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움직이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장관급 회담이다. 청와대와 통일부•국정원•국방부 등이 서로 긴밀하게 공조하지 않으면 회담은 엉망이 될 수도 있다.”
지시보다 부처 간 소통 우선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금은 실무회담을 할 상황이지 장관급 회담을 제의할 상황이 아니다”고 전제한 뒤 “경험없는 김정은이 속전속결 전략을 취하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경험이 많은 우리가 거기에 따라가는 건 현 정부의 아마추어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며 이렇게 꼬집었다.

이제 며칠 후면 남북간 회담이 진행된다. 현 정부에겐 둘도 없는 기회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 기회를 충분히 살리고 싶다면 독단적이고, 고집스런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박근혜의 ‘고집’에도 유연함이 필요하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juckys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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