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대명사 ‘버버리’가 백화점에서 퇴출됐다. 매출 부진이 가장 큰 이유다. 한편에선 ‘명품의 굴욕’이라고 평한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버버리는 고소득층만 구입하는 명품이 아니다. 명품치곤 값이 저렴해 중산층도 즐겨 찾는다. 버버리의 철수 뒤편엔 ‘한국경제의 소비가 심상치 않다’는 시그널이 담겨 있다.

버버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명품 브랜드 중 하나다. 어느 곳에서든 ‘국민가방’으로 불릴 정도로 불티나게 팔린다. 버버리 특유의 체크가방을 너도나도 들고 다닌 결과다. 버버리가 전 세계 192개의 매장에서 지난해 올린 수익은 7억4500만 달러(약 8440억원)에 달한다.
그랬던 버버리가 불황의 터널에 빠졌다. 버버리코리아의 국내 매출은 올해(2011년 4월~2012년 3월) 들어 크게 줄었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428억원) 대비 24%가량 감소한 343억원에 그쳤다. 당기순이익은 258억원으로 지난해(348억원)보다 34% 줄었다.

가장 대중적인 명품 브랜드라는 구찌는 실적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2011년 2959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2825억원으로 떨어졌다. 영업이익도 460억원에서 301억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적자를 낸 명품도 있다. 디오르는 지난해 6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명품의 매출 부진은 흔한 일이 아니다. 루이뷔통의 매출 급감은 1991년 한국시장에 진출한 이후 처음이다. 루이뷔통이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에도 성장세를 이어왔다는 점에서 매출 급감은 이례적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퇴출당한 버버리ㆍ루이뷔통이 대표적인 ‘매스티지(Masstige)’ 브랜드라는 점이다. 매스티지는 대중(Mass)과 명품(Prestige)의 합성어다. 중가中價 제품을 주로 구입하던 중산층 소비자가 감성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 비교적 저렴한 명품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버버리ㆍ루이뷔통 등 매스티지 브랜드의 실적부진은 특정집단의 문제도, 단순한 문제도 아니다. 국내 대중소비가 줄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산층 지갑 닫자 명품 매출 감소

문제는 소비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가계부채에 짓눌린 가구가 너무 많다. 대출이자를 갚기도 벅찬데 소비할 틈이 어디 있냐는 거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실질 가계부채는 198조5000억원으로 전년의 146조4000원보다 52조1000억원 늘어났다. 더구나 가계부채의 질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주택경기 부진에 소득 증가세마저 둔화해서다. 올 3월 말 기준 은행의 가계여신 부실채권비율은 0.78%로 전년 동기 대비 0.07%포인트 올랐다. 소비를 이끄는 중산층의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다.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중산층이 많은데다 고물가로 고통을 받고 있어서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정부가 나섰다. 추가경정예산을 편성에 경기회복의 불씨를 지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국은행도 5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다. 금리를 낮춰 경기회복을 꾀하고 소비를 진작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가계의 소비심리가 워낙 얼어붙어 있어서다. 갈수록 강해지는 불황심리가 소비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비를 할 여력이 있는 가구 중 상당수는 불황에 대비해 저축을 늘리고 있다. 올 1분기 가계가 벌어들인 소득에서 세금 등을 제외한 가처분소득은 가구당 339만원. 그중 저축능력을 뜻하는 흑자액은 84만8000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0.8% 늘었다. 가계에 돈이 남아도 소비보단 저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가계소득이 소비를 늘릴 만큼 크게 늘어날 상황도 아니다.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를 넘지 못했다. 사상 처음으로 8분기 연속 0%대 성장률을 기록하는 불명예도 뒤집어썼다. 경제활력도 잃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새로운 수출주력산업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 2010년 세게 3위였던 제조업 순위도 지난해 6위로 떨어졌다.
저성장 국면을 탈출하지 못하면 기업은 물론 가계까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소비가 늘어날 가능성이 더 줄어든다.
버버리의 철수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명품의 굴욕’으로 치부할 한낱 해프닝이 아니라는 얘기다. 버버리의 실적 부진은 대중소비가 줄었음을 의미한다. 대중화된 버버리를 찾던 중산층이 지갑을 닫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중소비의 위축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그렇다면 한국경제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가 저성장에 빠졌다는 뜻이다. 버버리의 실적 부진에 숨은 한국경제의 현주소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kkh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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