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키스에 담긴 反이슬람
짜릿한 키스에 담긴 反이슬람
  • 정소담 기자
  • 호수 46
  • 승인 2013.06.04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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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복판서 열린 키스시위

▲ 터키 수도 앙카라의 지하철 쿠르툴루쉬역 앞에서 한 젊은 커플이 키스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터키에서 사상 초유의 키스시위가 벌어졌다.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이슬람주의의 반발에서 비롯됐다. 시위의 배경은 세속주의냐 이슬람주의냐를 둔 정치적 대립에 있었다. 시위는 몇분 만에 끝났지만 터키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키스는 상징에 불과했다.

5월 25일 터키 수도 앙카라 도심에서 상상도 못할 ‘키스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200여명의 시민은 앙카라 쿠르툴루쉬역에서 ‘우리에겐 키스할 자유가 있다’고 적힌 플래카드를 손에 들고 일제히 입을 맞췄다. 경찰이 진압에 나섰지만 ‘키스할 자유를 달라’고 외치는 시위자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키스 시위자들 주변에는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환호와 카메라 플래시가 가득했다.

이번 시위는 ‘애정 표현이 비도덕적인가’라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거였다. 시위 발단은 터키 앙카라 도심의 한 지하철역이었다. 5월 22일 쿠르툴루쉬역의 역내 감시카메라(CCTV)로 젊은 남녀가 키스하는 것을 본 지하철 관리자는 “여러분, 도덕에 맞는 행동을 합시다”고 안내방송을 했다. 이는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애정표현이 비도덕적인가’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그러던 중 한 시민이 페이스북에 ‘5월 25일 오후 6시30분 쿠르툴루쉬역에서 자유롭게 키스하자’며 ‘키스 시위’를 제안했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5월 25일 ‘키스 시위’는 이렇게 열렸다. 하지만 이번 시위는 단순히 ‘애정표현의 자유’를 위한 게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터키의 정치•종교의 이념대립에 있다. 터키는 1924년 헌법을 통해 국교(이슬람교)를 없앴다. 국가와 종교를 분리한 것이다. 이후 공공장소에서의 히잡 착용이 금지되고, 이슬람 정당의 폐쇄 조치가 이어졌다. 하지만 2002년 이후 에르도간 총리가 터키를 장기집권하면서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표면적으로는 군사 독재를 종식하고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은 그는 ‘이슬람’ 신봉자였다. 정교분리에 성공한 터키가 이란식 ‘정교일치’를 지향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 것도 이 무렵이다.

 
이란식 ‘정교일치’ 쫓는 터키
우려는 현실이 됐다. 2010년 9월 정교분리와 이슬람주의가 맞붙은 개헌투표에서 놀랄 만한 결과가 나왔다. 58%의 국민이 이슬람주의를 강화하는 내용의 새 헌법을 지지한 것이다. 당시 국민투표를 앞두고 에르도간 총리는 “이슬람적 법률제정을 막고 있는 시대는 막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터키 내 이슬람세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 청년지부 회원들은 ‘부도덕은 자유가 아니다’며 키스시위에 맞섰다. 반대파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속칭 ‘이슬람 공화국’의 수립일인 지난해 10월 29일 수천명의 시위대가 국부로 추앙되는 무스타파 케말의 묘지를 향해 행진하며 “터키는 정교분리의 국가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터키 도심 복판에서 벌어진 젊은이들의 키스 시위는 퍼포먼스에 불과한 게 아니었다. 이들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따로 있었을지 모른다. “터키는 정교분리 국가다.” 키스에 숨은 뜻이다.
정소담 인턴기자 cindy@thescoop.co.kr|@cindyd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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