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는 국경이 없다
세계 최고는 국경이 없다
  • 김건희 기자
  • 호수 45
  • 승인 2013.05.3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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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총론] 스마트폰 국수주의 깨라

“아이폰과 나머지 스마트폰.” 미국 IT 전문가들이 흔히 쓰는 말이다. 아이폰은 혁신품, 나머지는 모방품에 불과하다는 거다. “삼성은 애플을 넘었지만 넘지 못했다.” 이 아이러니컬한 말의 뜻은 또 뭘까. ‘스마트폰 국수주의’를 읽으면 답이 보인다.

 
#지난해 8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북부지방법원에서 비보가 날아왔다. 삼성전자(삼성)가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특허를 침해했다는 거였다. 9명의 배심원은 10억4939만 달러(약 1조1800억원)를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배심원단은 애플이 삼성에 배상할 금액은 없다고 말했다. 미국에서의 소송은 애플의 완승이었다.

같은 날.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도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이 진행됐다. 한국법원은 애플 제품의 디자인에 독창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널리 알려진 디자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스마트폰 디자인이 애플만의 것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비슷한 이슈에 대한 법적소송. 결과는 판이했다. 왜일까.

# 삼성이 새로운 스마트폰을 출시하면 국내 언론은 외신의 반응을 빠르게 보도한다. 새로운 스마트폰에 대한 해외반응을 체크하기 위해서다. 해외의 평가는 균형이 잡혀 있을 것이라는 맹목적 믿음의 발로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외신, 특히 미국 언론의 평가는 무척 꼬여 있다. 올 4월 삼성이 출시한 갤럭시S4에 대한 미국 언론의 평가를 보자. IT업계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월트 모스버그 올싱스디지털 기자의 비평이다. “갤럭시S4는 새로운 소프트웨어(SW) 기능이 떨어진다. 기존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앱)을 베낀 티가 너무 많이 난다.” 여기까진 냉정함을 잃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다음 비평은 자신의 ‘편향성’을 드러낸다. “스마트폰을 구입하고 싶은 소비자는 갤럭시S4보다는 HTC ONE X를 구입할 것을 추천한다.”

 
애플 넘었지만 애플 못 넘어

갤럭시S4에 ‘저주’에 가까운 혹평을 퍼부은 모스버그는 정작 아이폰5에는 ‘무한애정’을 드러냈다. “지도라는 약점을 제외하면 최고의 스마트폰으로 손색없다.” 이는 균형 잡힌 시각이 아니다. 아이폰5의 최대 약점은 ‘지도기능’이다. 지명이 잘못 표기됐거나 정보가 빠지면서 ‘애플의 최대 실패작’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지도라는 약점을 제외하면’이라는 문구는 그래서 주관적이다. ‘지도라는 약점 때문에 최악의 스마트폰이다’고 비평했어야 옳다. 그는 왜 그랬을까.

두 질문을 던졌다. ‘비슷한 이슈에 대한 소송결과가 왜 그리 다를까’가 첫째 질문이다. ‘미국 언론이 아이폰을 찬양하는 이유는 뭘까’가 둘째다. IT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벌써 눈치챘을 게다. 그렇다. 우리는 ‘스마트폰 국수주의’를 꼬집으려 한다. 자국 스마트폰을 띄우기 위해 정의를 버리고 체면을 불사하는 세태를 말이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도, 일본도 다를 게 없다.

‘스마트폰 국수주의’가 발동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스마트폰에 내장된 ‘IT기술’이 미래경제판도를 좌우하는 최대변수라서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매킨지는 ‘스마트 시대’를 이렇게 평가했다. “산업혁명 이후 가장 폭넓고 빠르게 사회가 변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IT경제를 주도하면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25년간의 변화보다 향후 5년이 더 빠르게 변할 것이다.”

▲ '세기의 전쟁'이라 불리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대결은 특허소송을 넘어 스마트폰 국수주의로 이어지고 있다.
과장된 분석이 아니다. ‘손안의 PC’ 스마트폰엔 음성인식ㆍ원격조정 등 다양한 첨단 IT기술이 장착돼 있다. 스마트폰에 탑재된 이 기술은 스마트TV는 물론 스마트카ㆍ스마트쉽에도 적용되고 있다. ‘스마트폰을 보면 미래경제권력이 보인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스마트폰 국수주의’가 판을 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스마트폰 부문에서 밀리면 ‘스마트 시대’에서 경제권력을 휘어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는 “IT산업은 소비자의 교체주기와 산업의 사이클이 상당히 빠르기 때문에 스마트 산업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애플이 삼성보다 우위에 있다.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삼성이 1위라고 해도 그렇다. 애플은 ‘혁신’이라는 환상을 세계시장에 심었기 때문이다. 삼성은 ‘애플의 추격자(Follower)’라는 이미지가 아직은 강하다. 미국 IT전문가가 별것 아닌 아이폰 기능에 ‘찬사’를 쏟아내도 주목을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성이 넘어야 할 산은 분명하다. ‘잡스 신화’가 첫째 산이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IT CEO다. 2007년 MP3 아이팟ㆍ휴대전화ㆍ인터넷 통신기기를 융ㆍ복합해 ‘아이폰’을 출시해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잡스가 애플에 ‘혁신 이미지’를 덧씌웠다면 잡스 때문에 삼성은 ‘모방의 황제’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안드로이드는 둘째 산이다.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효율적으로 연동하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은 다르다. 세계 최고 하드웨어 제조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소프트웨어, 다시 말해 운영체제(OS)가 없다. 삼성이 ‘하드웨어 업체에 불과하다’ ‘소프트웨어 기술력은 형편없다’는 혹평에 시달리는 이유다. 특히 전략적 파트너인 구글이 하드웨어 기술력을 갖춘다면 삼성은 낙동강 오리알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이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독자적인 모바일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단순한 구축만으론 안 된다. 혁신적인 모바일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애플을 넘고도(시장점유율) 애플만큼 대접받지 못하는 아이러니컬한 현실을 깰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IT 생태계를 재편할 필요가 있다. 삼성의 모바일 플랫폼이 IT 모든 분야에서 활발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우호세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하드웨어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곳은 극히 드물다. 고작해야 IBM 정도를 꼽을 수 있는데, 이마저도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위세에 밀려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세계 IT전문가들은 삼성의 제1 경쟁력으로 ‘우수한 캐치업(catch up) 능력’을 꼽는다. 앞서가는 누군가를 따라잡는 덴 당할 자가 없다는 얘기다. 모바일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애플에 비해 초라한 수준이지만 언제든지 추격할 수 있다.

국수주의는 편협하고 배타적이다. 다른 나라의 경쟁력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국수주의를 깨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강해지면 된다. 국수주의의 배타성은 ‘강함’ 앞에 무기력해지게 마련이다. “애플, 나머지는 애플 모방자”라는 스마트폰 국수주의는 미국이 만들었다. 이 배타적인 논리, 이젠 깰 때가 됐다. 해법은 소프트웨어에 있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kkh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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