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질’이라는 물질이 있다. 물과 기름을 모두 수용한다. 그래서 인지질로 화장품을 만들면 피부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꿈에서나 가능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인지질을 보호할 캡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꿈의 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한 화장품 연구개발업체가 있다. 흥미롭게도 국내기업 한국콜마다.

다중액정캡슐기술의 탄생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콜마 중앙연구소의 연구부장(당시)이던 이창언 수석연구원은 화장품의 유효성분을 피부에 전달할 방법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유효성분 입자구조가 온도ㆍ햇빛ㆍ공기ㆍ수분 등 환경변화에 따라 깨지곤 했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유효성분의 입자를 보호할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해야 했다. 그런데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피부의 속성에서 기인하는 변수였다. 피부는 ‘방어기관’이다. 피부조직과 유사하지 않은 물질이 투입되면 트러블을 일으킨다. 피부와 궁합이 맞지 않는 유효성분은 효능이 탁월해도 무용지물로 전락한다.
이창언 연구원은 유효성분의 입자를 보호하는 물질로 ‘리포솜’을 떠올렸다. 피부세포를 구성하는 기관인 ‘리포솜’이 트러블을 일으킬 가능성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 리포솜에도 결함이 있었다. 리포솜으로 개발된 화장품 역시 외부 압력이 가해지면 구조가 쉽게 깨졌다.
연구팀은 또다시 고심했다. 리포솜을 활용할 수 없다면 다른 물질을 찾아야 했다. 그때 이 연구원의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다. 리포솜의 단점을 보완한 물질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거였다. 연구팀은 인지질을 주목했다. 물ㆍ기름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인지질은 혈액을 타고 이동하는 게 자유로워 유효성분 전달이 가능할 듯했다.
이 연구원을 비롯한 한국콜마 연구팀은 피부세포를 구성하는 세라마이드ㆍ콜레스테롤ㆍ지방산 을 조합해 인지질을 만들었다. 그 이후 유효성분이 피부에 잘 흡수될 수 있도록 인지질을 여러번 감싸 캡슐화했다. 인지질을 활용한 다중액정캡슐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하지만 남은 관문이 있었다. 실험이었다. 연구팀은 다중액정캡슐기술로 만든 화장품 A와 다른 화장품 B를 20대ㆍ30대ㆍ40대 여성 10명의 피부에 발랐다.

한국콜마가 개발한 다중액정캡슐기술은 아톰미화장품이 출시한 ‘에센스(아톰미 스킨케어 6 시스템)’에 활용되고 있다. 이 제품은 2011년 520만개가 생산됐고, 100억원이 훌쩍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초미립자 원액으로 피부를 맑고 깨끗하게 만드는 효능까지 인정받아 2012년 장영실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과학으로 만든 화장품의 힘, 생각보다 세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kkh4792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