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으로 협박하면 열에 아홉은 ‘사기꾼’
저작권으로 협박하면 열에 아홉은 ‘사기꾼’
  • 김건희 기자
  • 호수 41
  • 승인 2013.05.01 0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 ‘묻지마 고소’ 주의보

습관처럼 사진을 퍼다 나른 누리꾼 A씨. 어느날 내용증명이 날아왔다. 저작권을 침해했으니 수백만원을 배상하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잠깐, 이런 유형의 사건이 많다. 그러니 긴장할 필요는 없다. 무단 사용했더라도 통상사용료 만큼 주면 돼서다. 터무니없는 배상금을 요구하면 십중팔구 ‘묻지마 저작권 고소’다. 아는 것이 힘이다.

▲ 최근 저작권 침해를 내세워 합의금을 갈취하는 사건이 늘어나 주의가 필요하다.
해외 저작권 업체의 국내 대리중개를 맡은 A사 대표 B씨와 임원진이 올 4월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저작권 소송 권한이 없는데도 저작물을 임의로 사용한 누리꾼과 영세업체에 저작권 위반이라고 협박해 수백억원의 합의금을 뜯어낸 사실이 적발돼서다. 검찰이 저작권 대리중개업체의 불법 저작권 고소를 적발하고, 기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온라인에서 제약 없이 저작물이 공유되던 2005년 8월. 저작권대행업체 A사 대표 B씨(당시)는 영국의 게티이미지와 계약을 맺었다. 게티이미지의 사진저작물을 국내 누리꾼과 웹 제작업체에 대리•중개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묻지마식 저작권 합의금 장사 심각

▲ 저작권을 침해했더라도 통상사용료만큼 배상금을 지불하면 된다.
B씨는 회사 상무 C씨ㆍ저작권관리실장 D씨ㆍ법무팀장 E씨와 공모하고 불법 고소 계획을 세웠다. 저작물을 임의로 사용한 누리꾼과 웹 제작업체를 운영하는 영세사업자에게 저작권 침해를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합의금을 받아내자고 공모한 것이다.

변리사 F씨가 범행에 가세해 소송업무를 도왔다. 이들은 2005년 8월~2013년 1월 5000여명으로부터 합의금 명목으로 92억원을 받아냈다.

범행 대상은 개인과 영세사업자뿐만이 아니었다. 병원ㆍ관공서ㆍ언론사 등 기관을 상대로 과감하게 범행을 저질렀다. 관공서 등이 구설에 오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쉽게 합의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저작권 통상사용료 10배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며 “합의금을 주지 않으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협박하고, 실제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소란스러워질 것을 염려한 기관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합의금을 지불했다.

A사의 범행은 더욱 대담해졌다. 게티이미지로부터 저작권을 양도받은 것처럼 허위로 확인서를 꾸미기까지 했다. 2009년 4월부터 A사는 허위확인서를 내세워 저작물 임의 사용자 3700여명을 고소하고 8억원의 합의금을 챙겼다.

이런 방법으로 A사가 갈취한 합의금은 대략 100억원, 피해자는 7000명에 달한다. 피해자로부터 받은 합의금의 60%는 게티이미지에 지불했고, 나머지는 B씨를 비롯한 임원진이 챙겼다.

B씨는 이런 방식으로 2005년 설립한 A사를 4년 만인 2009년 130억원짜리 회사로 키웠다. 일반인과 영세한 개인사업자로부터 갈취한 돈으로 사세를 확장한 것이다.

최근 저작권 관련 업체와 일부 법무법인이 저작권법을 방패가 아닌 무기로 삼고 있다. 특히 그 대상을 누리꾼이나 영세 웹 제작업체로 삼고 있다는 게 문제다. 저작권 법률 지식이 부족한 점을 노리고 돈을 뜯어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엔 저작물을 무료로 배포했다가 유료로 전환한 후 배상금을 요구한 사례까지 발생했다. 서울의 한 S초등학교 교사는 지난해 프로그램 개발업체의 법무법인으로부터 내용증명서 한통을 받았다. “2011년 G사의 PC 원격제어 프로그램을 무단으로 사용해 저작권을 침해했으니 5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하라”는 내용이었다. 2009년에 무료로 내려받은 원격제어 프로그램이 유료로 전환된 사실을 모르고 무심코 사용한 게 원인이었다.

G사는 2008년 원격제어 프로그램 무료버전을 배포하면서 개인과 기관 구분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2010년 1월 라이선스 유료버전을 출시한 후 일부 구입자에게만 유료버전을 구매하라고 공지했다. 그로부터 10여개월 후인 2010년 12월부터 PC 원격지원 프로그램을 설치하거나 무료버전을 그대로 사용한 이들에게 내용증명을 발송했고, 전국 200여개 초중고와 교사가 손해배상청구소송에 휘말렸다. 내용증명을 받은 한 교사는 “합의금을 물어주지 않으면 민ㆍ형사상 고소하겠다고 협박해 결국 배상금을 물었다”고 털어놨다.

 
시민단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국내 저작권법 위반 관련 고소사건은 3만5532건이었다. 2010년(2만7572건)보다 28.9% 증가했다. 이 중 불기소된 사건은 2만9235건으로 불기소율이 82.3%나 된다.

특히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는 청소년이 소송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다. 2011년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당한 청소년 4577명 중 정식기소돼 재판을 받은 경우는 0건이다. 약식기소돼 벌금형을 받은 경우는 5건에 불과하다. 전체의 99.9%는 혐의가 없거나 미비해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저작권 관련 업체와 법무법인이 합의금을 받아내기 위해 고소를 남발한 것이다. 사실상 혐의가 없는 셈이다.

김진숙 서울고등검찰청 부장검사는 “피해자가 실제 저작권자를 확인하지 않는 맹점을 이용한 범죄가 늘고 있다”며 “이런 방법으로 저작권 관련 업체와 법무법인이 벌어들이는 돈은 연간 1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청소년에게 고소 남발

문제는 저작권법이 저작권 업체와 법무법인의 이윤창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법이 창작자의 권리보호라는 본래의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는 얘기다. 저작물을 무단으로 도용해서는 안 되지만 이것을 약점으로 삼아 돈을 갈취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저작권법 125조 2항을 근거로 저작권 침해 손해배상액이 통상사용료를 넘을 수없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진숙 부장판사는 “사진이미지를 무단으로 사용했을 경우 저작물 사용료가 10만원이면 손해배상액을 10만원 범위에서 지불하면 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저작권 침해로 고소를 당했을 경우 겁먹지 말고 차분하게 문제를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 경미한 사건일 경우엔 ‘기소유예제도’를 통해 구제를 요청할 수 있다. 앞으로 저작권 침해에 주의하겠다는 내용의 조서를 작성하면 된다. 청소년 역시 ‘저작권교육 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만약 법무법인 등이 “합의금을 물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협박하는 경우 실제 저작권사인지 꼼꼼하게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평소 저작권법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저작권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 돈벌이 수단에 이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묻지마 저작권 고소에도 ‘아는 것이 힘’일 수 있다는 얘기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 @kkh4792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경인로 775 에이스하이테크시티 1동 12층 1202호
  • 대표전화 : 02-2285-6101
  • 팩스 : 02-2285-6102
  • 법인명 : 주식회사 더스쿠프
  • 제호 : 더스쿠프
  • 장기간행물·등록번호 : 서울 아 02110 / 서울 다 10587
  • 등록일 : 2012-05-09 / 2012-05-08
  • 발행일 : 2012-07-06
  • 발행인·대표이사 : 이남석
  • 편집인 : 양재찬
  • 편집장 : 이윤찬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병중
  • Copyright © 2025 더스쿠프.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thescoop.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