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총론] ‘작전세력과의 전쟁’선포
작전세력. 그들을 아는가. 치고 빠지는 데 명수다. 개미(개인투자자)의 눈에 피눈물이 맺히게 만드는 장본인이다. 이들의 활동범위는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인터넷을 넘어 이젠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서도 작전을 건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정부가 주가조작 근절에 나섰다. 하지만 작전세력을 옭아맬 만한 확실한 무기가 보이지 않는다.

C씨는 지난해 12월 자수했고, 재판부로부터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앞서 2009년 8월 B 전 대표를 제외한 공범 3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3명 중 1명은 징역 1년6개월•집행유예 3년을, 나머지 2명은 징역 8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실형은 C씨 혼자뿐이었다. 검찰은 지난해 1월 주가조작을 부탁했던 B 전 대표를 구속기소했다. B 전 대표는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엄단을 받을진 미지수다.
# 영국계 투자관리회사 헤르메스의 펀드매니저 A씨는 삼성물산의 외국인 지분보유비율이 42%로 높아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게다가 그룹 계열사와 대주주의 지분을 합쳐봐야 14%밖에 되지 않았다. A씨는 삼성물산 주식을 ‘M&A 테마주’로 띄우는 계획을 세우고, 2004년 3월 지분 5%를 취득했다.
헤르메스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누군가 적대적 M&A를 한다면 우리는 그를 지지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삼성물산, 외국인에 M&A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효과는 당장 나타났다. M&A 기대감에 삼성물산의 주가가 치솟았고, 2004년 12월 헤르메스는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처분해 73억원의 차익을 챙겼다. 헤르메스는 2006년 증권거래법 위반혐의로 기소됐지만 2008년 무죄판결을 받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증권범죄(시세조종, 내부자 미공개 정보 이용 등)는 2009년 200건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증권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가 늘면서 이를 이용하려는 범죄세력도 덩달아 증가했다. 지난해 증권범죄는 2011년(249건)에 비해 13% 증가한 282건에 달했다. 이 중 주가조작 사건은 92건이다.
앞서 언급한 두 사례는 일반인이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작해 시세차익을 얻는 범죄 행위다. 여기서 주가조작 행위 주체가 회사 내부 고급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인물(오너, CEO와 임직원)이라면 ‘내부자의 미공개 정보 거래’로 구분된다. 내부자 미공개 정보 거래는 지난해 73건이 발생했다. 이밖에 풍문 유포•사기적 수단 등 부정한 방법을 사용해 이익을 얻는 부정거래는 96건 발생했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테마주 열풍이 불며 주가조작 사건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작전세력들이 증권 게시판•증권 방송•언론을 통해 허위정보를 유포해 시세조종이나 부당한 이득을 얻고 있다”며 “최근에는 모바일이 발전하면서 그 수법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주가를 의도적으로 움직이는 세력, 이른바 ‘작전’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얘기다. 작전세력, 그들은 누구일까. 주가에 반영되는 ‘꺼리’, 속칭 ‘재료’를 수집해 보기 좋게 포장하는 사람들을 ‘꾼’ ‘도사’ ‘선생’이라고 부른다. 이들이 바로 ‘카더라 정보’를 확산시켜 개미들을 끌어들인 뒤 빠지는 ‘작전세력’이다.[※참고 : The Scoop 3호 24~25쪽]
이들의 정보 수집 능력은 상상 이상이다. 흔히 생각하기 쉬운 메신저, 증권 전문 사이트를 돌며 정보를 취합, 유통하는 사람들은 ‘하수’다. 고급 룸살롱 웨이터를 상대로 귀동냥을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 진짜 고수는 증권사 직원•애널리스트•기업 CEO와 친분을 맺고 있다. 때론 기업, 때론 큰손으로부터 주가를 부양해 달라는 청탁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들 작전세력이 노리는 종목은 손쉽게 주가를 움직일 수 있는 ‘중소형주’다. 작전을 세우기 안성맞춤인 종목이 넘쳐나고, 개미들의 대박 심리도 폭발 일보직전이기 때문이다. 실제 작전세력에게 재료만큼이나 필요한 것이 개미들이다. 역설적이지만 개미들이 주가 부양의 지렛대 역할을 해야 이들이 돈벌이를 할 수 있다.

증권범죄 실형 선고비율은 약 13%
작전세력 중에는 대주주를 활용하는 이들도 있다. 작전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시세조종의 열쇠를 쥐고 있는 대주주를 포섭한다는 얘기다. 여기엔 알려지지 않은 중소형주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재벌 2~3세들도 포함된다. 작전세력 B씨는 “개미들을 유혹하는 데 그만한 재료가 없다”고 말했다.
대주주 또는 재벌 2~3세가 투자하면 돈을 딴다는 개미들의 대박 심리를 역이용하면 ‘게임 끝’이라는 것이다. ‘대주주와 재벌 2~3세가 내부정보를 이용, 부당이득을 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주주나 재벌 2~3세를 이용한 ‘카더라 정보’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작전세력이 이렇게 활개를 치는 것은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라고 꼬집는다. 사례로 언급한 두 사건만 봐도 그렇다. 헤르메스는 무죄를 받았다. 스코포스디앤알의 경우, 판결이 난 공범 4명 중 1명만이 실형을 선고받았고, 3명은 집행유예로 형이 확정됐다.
증권범죄의 제재절차는 한국거래소 적발, 금융감독원 이송, 검찰고발 등 세단계다. 혐의자 입장에선 금감원에서 무혐의를 받으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설령 검찰에 고발돼 재판을 받는다고 해도 실형보다는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가 더 많다. 부과되는 벌금도 주가조작으로 얻는 부당이익에 비해 적다.
금감원은 지난해 243건의 불공정거래(시세조종, 내부자 미공개 정보 이용 등)를 확인•조사했다. 그중 28건은 무혐의로 처리됐고, 17건은 경고조치, 18건은 단기매매차익으로 조사를 완료했다. 경고조치와 단기매매차익건은 경미한 사건으로 분류돼 사실상 처벌을 받지 않는다. 금감원이 검찰에 고발한 건은 180건으로, 전체의 74%였다. 고발비중이 꽤 높지만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난해 5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검찰이 기소한 자본시장법상 불공정거래행위 사건에 대한 법원의 1심 선고 내역을 분석한 결과(2006~2010년), 실형 선고비율은 13.1%에 불과했다. 반면 집행유예 선고비율은 86.9%에 달했다. 100명 중 86명은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14명만이 실형을 받았다는 얘기다. 그것도 1심이라는 점이 문제다. 확정판결까지 통계를 냈다면 실형비중은 더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이 정도의 처벌로는 주가조작을 사전에 방지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증권업계에서 ‘한 건 크게 하고 빠져나가면 그만’이라는 얘기가 떠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십 또는 수백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기고, 집행유예와 벌금 몇억원만 선고받으면 남는 장사 아닌가”라며 “주가조작을 할 수 있는 능력만 된다면 할 만하다는 얘기가 나올 법한 처벌수준”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나서 ‘주가조작 근절책’을 발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형을 더 높이고, 실형 선고 중심으로 판결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다. 우선 형벌의 금전적 제재 기능에 초점을 맞췄다. 정부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징역형(집행유예 포함)이 선고될 경우 벌금형을 필요적으로 부과한다고 밝혔다. 기본적으로 부당이득 금액을 반드시 몰수•추징하고, 여기에 부당이득의 1~3배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작전세력이 증권범죄로 얻은 부당이득의 2배(최소)에서 최대 4배까지 뱉어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나섰지만 ‘글쎄’
엄격한 처벌로 증권시장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렇게 시스템을 바꿔도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무엇보다 ‘증권범죄가 중대범죄’라는 인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상복 서강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증권범죄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지만 아직은 더디다”며 “벌금 액수를 늘려도 최대한도까지 선고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증권범죄는 더 그렇다”며 “양형 기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복 교수는 대표적인 행정제재인 과징금 제도도 빠졌다고 지적한다. 그는 “미국 등 금융선진국의 경우 자본시장법을 위반하면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며 “현재 우리나라는 자본시장법의 불공정거래 중 허위공시에 대해서만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 규정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78조는 시세조종(주가조작) 금지행위의 유형을 ‘부정한 수단•계획•기교’ 등으로 일반적•포괄적•추상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상장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의 매매를 유인할 목적이 있어 주가조작 행위라고 명시하고 있다. 고의로 주가를 조작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고의성을 밝혀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고의성을 입증해 주가조작 세력을 붙잡아도 ‘부정한 수단•계획•기교’ 조항에 부닥치기 일쑤다. ‘고의성’보다 ‘부정함’을 입증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증권범죄는 갈수록 치밀해지는데, 기존 규정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법기관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법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해야 범죄로 처벌할 수 있다. 이를 죄형법정주의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주가조작행위는 유형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규정하기도 힘들다. 이 때문에 주가조작 혐의를 받고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측 변호사 대부분은 이런 식으로 검찰을 공격한다. ‘수단•계획•기교가 부정한지 입증해 보라.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가’라고 말이다.”
범죄 입증이 어려워 처벌도 약해
앞서 언급한 삼성물산의 사례는 법적 공백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당시 법원은 ‘펀드 매니저가 삼성물산의 주식을 매도하기에 앞서 신문사 기자와 M&A 가능성을 언급한 내용의 인터뷰가 일반투자자로 하여금 삼성물산 주식을 매수하도록 유인하기 위한 기망(속임)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주가조작의 목적성과 행위가 인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대광 법무법인 정곡 변호사는 “주가조작 행위자의 속내를 검찰이 직접증거를 제시하면서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일정한 경우에는 주가조작 행위자가 조작목적이 없었음을 스스로 입증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광 변호사는 “주가조작을 사법적 절차로만 규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시세조종행위가 발견되면 즉각 주식거래를 중지하는 ‘중지명령제도’, 취득한 부당이득을 환수하는 ‘부당이득 환수제도’ 등 다양한 행정적 규제수단을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 @brave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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