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리스크가 관록을 밀어내다
최태원 리스크가 관록을 밀어내다
  • 박용선 기자
  • 호수 39
  • 승인 2013.04.16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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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사라진 SK그룹 부회장단

2010년 말 SK그룹 부회장단이 결성됐다. 최태원 회장을 보좌하며 그룹 성장 방안과 전략을 구상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2년 만에 해체됐고, 핵심 인물들은 대부분 고문으로 물러났다. 김신배•정만원 전 부회장이 대표 인물이다. 그들이 물러난 이유는 무엇일까.

 
김신배•정만원•박영호 SK그룹 부회장단 소속 3인방이 올해 2월 부회장직에서 고문으로 물러났다. 김신배 전 부회장은 SK자원봉사단장에서도 물러났고, 고려대 겸임교수직도 정리했다. 박영호 전 부회장은 모든 경영활동을 중단하고, SK그룹 고문직만 수행하고 있다. 정만원 전 부회장만이 SK스포츠단장을 겸직하고 있다. 이에 앞서 SK그룹 부회장단 소속 최상훈 SK가스 전 사장과 김용흠 SK에너지 전 사장은 2012년 초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이 물러난 이유는 무엇일까. 나이 때문일까. 5명의 부회장은 원로 경영인이다. 그렇다고 나이가 무척 많은 건 아니다. 김신배 전 부회장은 1954년생, 박영호 전 부회장은 1947년생이다. 정만원 전 부회장, 최상훈 전 사장, 김용흠 전 사장은 1952년생이다. 나이보다는 경험과 지식이 더 풍부하기 때문에 원로로 받아들여진다.

부회장 5명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가장 큰 이유는 최태원 SK 회장의 현재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최태원 회장은 그룹 계열사 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올 1월 열린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회사 자금 횡령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만큼 그는 그룹 회장직에서도 물러났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을 보좌하던 그룹 부회장단도 공동책임을 지고 한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 최태원 회장은 1심 선고공판을 두 달 앞둔 2012년 11월 그룹 회장직을 내놨다. 최 회장에게 경영자문을 하던 부회장단도 역시 전격 해체됐다.
SK그룹 부회장단이 결성된 2010년으로 시계추를 돌려보자. 2010년 12월 SK는 정기 임원인사에서 그룹 부회장단을 새롭게 만들었다. 최 회장을 보좌하고, 그룹 성장 방안과 전략을 구상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김신배•정만원•박영호 전 부회장, 최상훈•김용흠 전 사장이 부회장단에 참여했다. 최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이 수석부회장에 오르며 그룹 부회장단을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새롭게 계열사 CEO에 오른 젊은 인재와 부회장단의 경험과 지식이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감돌았다. 그룹 내부엔 활력이 넘쳤다.

하지만 2011년 SK에게 위기가 닥쳤다. 오너 위기다. 그해 중순 최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검찰조사가 시작됐다. 이후 검찰은 최 회장이 그룹 계열사 자금을 빼돌린 혐의를 포착했고, 지난해 1월 첫 공판이 열렸다. 오너가 법정에 서는 일이었다.

이번 공판은 최 회장과 SK에 심각한 위험 요인으로 받아들여졌다. 최 회장은 2003년 6월 SK네트웍스(옛 SK글로벌) 분식회계를 지시한 혐의로 징역 3년 실형을 선고 받았다. 설상가상 외국계 자본인 소버린이 오너의 모럴해저드를 꼬집으며 SK 지분을 매입,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했다. 3개월 수감생활 이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최 회장은 경영권 방어를 하느라 전전긍긍했던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을 게다.

부회장단 전격 해체 ‘왜’

 
그래서 최 회장과 SK는 향후 열린 재판을 꼼꼼하게 준비했다. 그런데 201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변수로 작용했다. 과거 집행유예로 풀려났던 그룹 오너들이 연이어 실형을 받기 시작했다.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그랬다. 최 회장 역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SK로선 위기였다. 그룹 오너가 없으면 미래전략구상은 물론 투자를 꾀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를 예상한 듯 최 회장은 2013년 1월 1심 선고공판을 두 달 앞두고 그룹 회장직을 내놨다. 최 회장에게 경영자문을 하던 부회장단 역시 2년 만에 전격 해체됐다. 대신 계열사 자율 경영체제를 도입했다. 동시에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가 중심이 된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가 그룹 최고의사결정기구로 자리 잡았다. 경영시스템의 무게중심을 오너에서 수펙스추구협의회로 바꾼 것이다.

계열사 젊은 CEO로 경영 중심이 옮겨지면서 그룹 부회장단이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부회장단의 경험을 현장에서 전수받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5명의 부회장은 2000년대 주요 계열사 CEO로 그룹의 성장을 이끈 인물들이다. 김신배 전 부회장은 소통을 강조하는 경영인으로 통한다. 그는 소통을 통해 팀워크를 높이고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하곤 했다. 김 부회장은 2004년부터 SK텔레콤을 맡았고, 이후 2008년부터 부회장단에 참여하기 전까지 SK C&C를 이끌었다.

▲ 최태원 회장이 2013년 1월 서울중장지방법원에 들어가고 있다.
김 전 부회장에 이어 2009년부터 2년 동안 SK텔레콤을 맡은 정만원 전 부회장은 통상산업부(현 산업통상자원부) 과장을 지낸 관료 출신이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경영 스타일이 장점으로 꼽힌다. 포화상태에 다다른 국내 이동통신시장에서 SK텔레콤의 변화와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영호 전 부회장은 2010년부터 SK차이나 총재를 맡으며 SK그룹의 중국사업을 담당했다. 기획과 조직관리 능력이 뛰어나다. 2003년 SK경제경영연구소장을 지냈고, 이듬해 SK 투자회사관리실 실장으로 옮겨 SK그룹 지주사 전환의 밑그림을 그렸다.

“겉모양 바꿨다고 실체 달라지진 않아”

에너지•화학 부분 계열사를 담당했던 최상훈•김용흠 전 사장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최상훈 전 사장은 2006년 인천정유가 SK 계열사로 공식 출범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김용흠 전 사장은 SK에너지와 30년을 함께한 석유화학 전문가로 통한다.

최태원 회장과 부회장단은 함께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최 회장은 얼마든지 되돌아올 수 있다. 재판이 끝나고, 세간의 관심이 적어질 때면 경영일선에 다시 나설 게 뻔하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SK의 경영체제 전환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한 제스처로 단순히 외부 모양새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며 “최태원 회장이 그룹 회장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고 꼬집었다. 부회장단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을지 모른다. 이들의 경영 노하우와 경험을 SK에서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 @brave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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