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천무후가 한국에 살았다면…
측천무후가 한국에 살았다면…
  • 양정학 제림성형외과 원장
  • 호수 37
  • 승인 2013.04.08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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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학의 고전성형열전 ⑧

▲ 예나 지금이나 예쁘게 관리하려는 여자의 욕구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어려서 많이 들었을 거다. 오경의 하나인 「서경書經」이 그 출처다. 다음이 그것이다. ‘古人有言曰, 牝鷄無晨, 牝鷄之晨, 惟家之索(고인유언왈, 빈계무신, 빈계지신, 유가지삭’이라고 읽는다. 뜻은 이렇다. “옛 사람이 말하길 암탉은 새벽에 울지 못하게 해야 한다.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을 망친다고 했다.”

이 명구는 「목서牧誓」에 등장한다. 암탉은 은나라 주왕의 애첩 달기達己다. 그녀의 입김(정치적 역할)이 커지면서 집안殷이 망하게 됨을 이르는 내용이다. 요컨대 여성의 정치 참여를 반대하는 목소리다. 암탉이 아니라 수탉(남성)이 울어야 한다는 거다.

과거 여성(여태후•측천무후•선덕여왕•대처)이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반드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지만 않는다는 증거다. 중국 최초 여황제 측천무후처럼 민심을 얻어야 할 거다.

측천무후는 나이 67세에 황위에 올랐다. 국호를 대주大周로 칭했다. 중국대륙을 지배한 240명 황제 가운데 유일한 여황제로 약 50년간 지배했다. 게다가 여황제 측천무후는 70살이 넘어서도 전혀 늙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실로 놀랍다. 역사에 따르면, 당태종 이세민은 그녀가 ‘꽃과 옥같이 어여쁘다’는 뜻에서 특별히 ‘미媚’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는 설도 있다. 태생이 미녀인 셈이다. 하지만 세월을 비껴가지는 못하는 법인데 어찌 해서 ‘일흔 나이에도 그녀가 늙어 보이지 않았다’는 걸까. 화장술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섹스 파트너이자 백마사 주지인 사회의篩懷義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측천무후가 지금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면 과연 어땠을까.

아마도 화장술에만 의지하지는 않았을 거다. 성형외과 병원을 찾았을 거다. 20대에는 황제의 총애를 차지하기 위해 피부 관리는 물론 각종 프띠 성형 등을 했을 것이고, 40대 이후로는 늘어나고 처진 피부와 꺼진 눈과 볼을 살리기 위해 시술을 받았을 거다. 60대 이후엔 얼굴의 이마나 팔자주름 혹은 턱밑 주름수술을 진행했을 거다.

예나 지금이나 ‘나’ 자신을 예쁘게 관리하고자 하는 여자의 욕구는 아주 자연스러운 거다. 알고 보면 측천무후도 사회 초년병(궁녀) 때부터 잘나간 것은 아니다. 처음 10년은 그저 보통의 궁녀였을 뿐이었다. 다만 동기 궁녀들과 다른 한 가지가 있었다면 ‘불굴의 권력의지’였지 싶다. 남자의 사랑에만 기대기보다는 자신의 운과 능력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서 절망이 아닌 희망에 기댔다는 점에서 현대 여성은 답을 찾아도 될 것이다.

 
궁 밖으로 내쳐져 4년이나 비구니로 지내다 다시 황궁으로 돌아온 측천무후의 나이는 서른 즈음이었다. 역경에 쉽게 굴하지 말자. 자포자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역경은 거꾸로 읽히는 경력으로 빛날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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