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1996년 마스터스 마지막날 4라운드에서 ‘스윙 머신’ 닉 팔도와 당시 세계랭킹 1위 ‘백상어’ 그레그 노먼의 우승대결은 세계골프 사상 가장 잔인한 승부의 하나로 꼽힌다. 이후 팔도는 “마인드컨트롤에 한번 실패하면 절대 재기하지 못한다”며 ‘한번 실수는 영원한 파멸’이란 마인드컨트롤 극단주의자가 됐다.
골프가 메이저 스포츠의 하나로 꼽히는 미국에선 마스터스 대회가 열리는 매년 4월 초 일주일간을 ‘마스터스 위크’라고 부른다. 마스터스 대회는 세계 4대 메이저 타이틀 중 첫 번째로 열리는 대회로, 적어도 미국인들은 US오픈 PGA챔피언십, 디 오픈(브리티시오픈)의 다른 메이저 타이틀과는 비교 대상이 안된다고 여기고 있다.
골프에 관심 있다면 마스터스 만큼은 시간을 내서 중계를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각설하고, 1996년 마스터스를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마지막날 4라운드에서 ‘스윙 머신’ 닉 팔도와 당시 세계랭킹 1위 ‘백상어’ 그레그 노먼의 우승대결은 세계골프 사상 가장 잔인한 승부의 하나로 꼽힌다.
노먼은 3라운드를 마쳤을 때 팔도에게 무려 6타차, 마스터스 사상 3라운드까지 2위와 가장 큰 차이 선두여서 세계 대부분의 언론은 “올해의 마스터스 파이널은 근래 드물게 싱겁게 끝날 것”이라며 전망했다. 그런데 마지막 라운드 11개 홀만 남겨둔 8번 홀부터 18번 홀 아웃으로 장갑을 벗었을 때까지 둘 사이는 11타가 뒤집어져 팔도가 되레 5타차 앞서 그린재킷을 입었다. 4라운드 스코어는 팔도 67, 노먼 78.

4라운드에서 보여준 노먼의 플레이는 바로 이번 칼럼에서 말하려는 ‘마인드컨트롤의 실종’이다.(스쿠프 독자들은 ‘생각하는 골프’로 이해해도 된다) 그는 빨리 장갑을 벗고 그린재킷을 입고 싶어했다. 초반부터 티잉 그라운드에 들어서자마자 티샷을 날렸으며, 그린에 올라오면 어드레스 하자마자 퍼트했다.
반면 팔도는 자만에 충만한 노먼을 무시하면서 퍼팅플레이도 평균 1분 10초대의 지리한 슬로 플레이로 일관했다. 노먼의 78이란 주말골퍼 수준의 스코어가 말해주듯 마지막 9개 홀에서 그가 보여준 스윙은 “헤드 업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 할 정도였다. 14번 홀부터 완전 혼수상태가 된 노먼이 퍼트가 실패하자 그린에 누워버리는 추태까지 연출한 반면 팔도는 어프로치 샷 조차 갤러리의 환호가 나서야 처박았던 고개를 돌려 볼을 보았다.
당시 현장의 갤러리들은 물론 TV해설자까지 너무나 비참하게 무너지는 노먼과 너무나 냉정한 팔도의 플레이에 치를 떨었다. 팔도가 위대한 마인드컨트롤 플레이로 인생을 역전시켰지만, 그 중요성은 노먼이 훨씬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노먼은 마스터스 충격이후 1개월 뒤 모든 일정을 집어치우고 자신의 호화 요트를 타고 대서양에 나가 1개월 이상 ‘칩거’했다. 그러나 노먼에게 이후 메이저타이틀의 영광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주말골퍼 수준으로 돌아가자. 사실 화이트칼라 골퍼가 한번 마인드컨트롤이 안됐다고 영원히 원상회복이 안될 것까지는 없다. 그 위험성을 상기하고 ‘생각하는 골프’로 상황에 대비하면 된다. 이에 대한 팁으로 영국의 레슨프로이자 칼럼니스트인 비비언 사운더스의 레슨 북 ‘Golfing Mind’에서 ‘실전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다음의 상황에서 마인드컨트롤에 성공하지 못하면 무너진다’는 대목을 소개한다.
▲티샷이 슬라이스가 나면서 벙커에 박혔을 때 ▲벙커에서 나이스 플레이로 탈출을 했는데 러프에 들어갔을 때 ▲파 4홀에서 어렵게 3온이 되어 파로 끝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3퍼트로 더블보기가 됐을 때. 이럴 때 나타나는 다음과 같은 감정을 극복하면 성공이다. 스코어 불안감, 3퍼트를 저지른 자신에 대한 배신감, 동반자가 보내는 동정에 의한 모멸감, 동반자의 얼굴에서 읽혀지는 희열이다.

스쿠프의 ‘생각하는 골프’를 읽은 독자라면 이 정도 쯤의 스트레스는 문제없이 극복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만, 세상의 거의 모든 골퍼들은 한 라운드에 위와 같은 상황을 한번 이상씩 접하게 되는데 흔들리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도 명심하시도록.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