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처럼 날았다 날기 위해 울었다
나비처럼 날았다 날기 위해 울었다
  • 김미선 기자
  • 호수 36
  • 승인 2013.03.29 2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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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가 배워야 할 김연아 DNA

김연아가 벌처럼 빙판을 날아다녔다. 관중은 기립했고, 심판은 최고점수를 줬다. 김연아가 화려한 컴백에 성공했다. 혹자는 ‘2년 또 1등한 걸 보면 타고났다’고 말한다. 속 모르는 소리다. 그가 얼마나 고된 훈련을 참고 견뎠는지 아는 이는 드물다. 김연아의 ‘시크릿 성공전략’을 공개한다.

▲ 2년이라는 긴 공백 끝에 등장한 피겨퀸 김연아가 더욱 완벽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여자 피겨 스케이팅 역사상 동계올림픽 2관왕을 차지한 이는 단 두명뿐이다. 1920년 생모리츠 대회를 시작으로 동계올림픽 3관왕을 차지한 소냐 헤니와 1980년대 동계올림픽 2관왕을 차지한 카타리나 비트다. 둘의 공통점은 유럽 출신이라는 거다. 소냐 헤니는 노르웨이, 카타리나 비트는 독일 출신이다.

유럽은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카타리나 비트가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이렇다 할 ‘인재’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유럽 사람들이 카타리나가 빙판 위에서 마법을 부리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페기 플레밍, 도로시 해밀, 크리스티 야마구치, 미셸콴 등 걸출한 피겨스타를 여럿 배출한 미국은 최근 몇년 동안 여자 피겨스케이팅에서 눈에 띌 만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04년 기술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심사기준이 바뀐 후부터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 이 때문인지 미국은 2013 ISU 세계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세계선수권대회)에서 애슐리 와그너와 그레이시 골드가 5·6위를 차지한 것에 대해 만족하는 분위기다.

# 일본 언론은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의 진가를 봤다고 평가하고 있다. 기술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김연아를 넘기 힘들다는 표현까지 나왔다. 하지만 일본은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만은 아사다 마오가 김연아를 꺾어주길 내심 기대하고 있다.

 
3월 17일. 김연아가 침묵을 깨고 다시 날았다. 그의 컴백을 관중들은 기립박수로 맞이했다. 세계 언론은 2년 만에 돌아온 김연아를 향해 감탄과 탄성을 보내느라 바빴다. 심판들이 김연아에게만 유독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댔지만 그의 화려한 컴백을 막지 못했다. 레미제라블의 선율보다 그의 연기가 훨씬 아름답고 완벽했기 때문이다. 2년의 공백은 그렇게 깨졌다.

세계 언론은 여왕의 귀환에 흥분했다. AP통신은 “앞으로 그 누구도 이같이 완벽한 경기를 보일 수 없을 만큼 김연아의 이번 세계선수권 대회에서의 연기는 장엄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김연아는 세계 최고”라고 평했고, 시카고트리뷴은 “김연아가 무대를 장악했다”고 언급했다. 그의 화려한 컴백이 유독 조명을 받는 것은 정상에서 내려왔다가 다시 정상에 복귀했기 때문이다. 특히 김연아는 ‘일주일만 운동을 쉬어도 감각을 잃는다’는 피겨선수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최고스타는 단연 김연아였다. 그는 쇼트와 프리에서 ‘클린’에 성공했고, 역대 최고 점수인 228.56점을 기록하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2위를 차지한 아사다 마오의 총점은 205.50. 점수 차이는 무려 23.06점에 달했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김연아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축제는 또 다른 공허함을 남겼다. 깡마른 소녀 시절부터 ‘올림픽 금메달’만을 위해 연습해 온 김연아는 목표를 잃었다. 더 이상 ‘압박’을 받기 싫다고 했고, 더 이상 지옥 같은 훈련을 하기 싫다고도 했다. 올림픽 직후에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싱글 준우승을 차지한 후 그는 국제대회는 물론 국내대회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은퇴설이 나돌았다. 맥주와 커피광고에 출연하는 그를 두고 ‘연예계 진출설’까지 나왔다.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던 대중은 냉정해졌다. 세계피겨여왕은 ‘돈연아’라는 낯 뜨거운 별명으로 불렸다. 한 외신기자가 쓴 기사를 보면 당시 김연아에 대한 평가를 엿볼 수 있다. “김연아는 한국에서는 다양한 상품의 광고를 찍은 록스타 같은 존재다.”

 
웬만한 사람 같았으면 멘털이 붕괴됐을 법하다. 하지만 김연아는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서두르지 않았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법칙을 지킨 거다. 공식 피겨대회에서 모습을 감춘 지 1년6개월여 만인 지난해 7월 그는 컴백을 결정했다. 그는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고 선언했다. 힘든 결정이었다.

컴백을 두고 장고를 거듭했지만 결단 이후 그의 행보는 빨라졌다. ‘목표를 세웠으면 실행에 옮기라’는 말을 그대로 실천한 거다. 실제로 김연아는 단 한번도 ‘어쩔 수 없이 컴백했다’며 아쉬움을 내비치지 않았다. 김연아는 복귀를 선언하자마자 어릴 적 스승이던 신혜숙 코치와 류종현 코치를 선임하고 복귀준비에 들어갔다.

떨어진 체력 오로지 연습으로 극복

다행히 김연아는 두가지 장점을 갖고 있었다. 타고난 신체조건과 재능이었다. 동양인으로선 드문 ‘가늘고 긴 팔과 긴 다리’는 같은 동작을 해도 좀 더 우아해 보였다. 남들은 몇 달씩 걸리는 점프를 단숨에 성공할 정도로 재능 또한 뛰어났다.

하지만 김연아는 안심하지 않았다. ‘피겨여왕’이라는 수식어를 스스로 내려놓고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실제로 그의 하루 일과는 훈련으로 가득찼다.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는 워밍업, 오후 2시까지는 스케이트를 탔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상훈련을 했는데, 오후 5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공백기가 길었던 만큼 그의 체력은 쉽게 올라오지 않았다. 2012년 10월 김연아는 “아직도 몸 상태가 70%”라고 말했다. 당시 신혜숙 코치에 따르면 김연아는 프리스케이팅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까지 남은 기간은 5개월. 더구나 세계선수권대회에 참여하려면 최저기술점수(TES)를 획득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12월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열리는 NRW트로피에 출전해야 했다. 남은 시간은 2개월 남짓. 김연아는 훈련 강도를 높였다. 매일 30~40분 연습시간을 늘려 ‘죽음의 스케줄’을 소화해 냈다. ‘컴백 후 실패’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몸을 담금질한 것이다. 그렇다. 김연아는 정상의 자리에서 잠시 내려오는 ‘여유’를 찾을 줄 알았다. 결단을 서두르지 않았고, 결단한 후엔 빠르게 실행에 옮겼다.

탁월한 재능을 믿지 않고 고된 훈련도 마다치 않았다. 젊은이가 배워야 할 김연아 특유의 DNA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 즐길 줄 아는 그만의 여유다.

김연아는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직전 외신과 갖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복귀를 고려해 왔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 스케이팅이라는 사실이 이번 경기 참여에 동기부여가 됐다. 스케이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도전하게 됐다.”

2012년 7월에도 비슷한 말을 했다. “(팬들의) 부담 기대치 낮추고 자신만을 위한 피겨연기를 목표로 삼으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이제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 선수가 아닌 대한민국 국가대표 김연아다.”

외신 기자들은 김연아를 보고 이렇게 감탄했다. “2년을 쉬고 저렇게 잘할 수 있다니.” 속 모르는 말이다. 그만큼 피나게 훈련하고, 그만큼 자기가 잘 하는 일에 몰두하고, 그만큼 결단 후 빠르게 실행하는 이도 없을 게다. 물론 김연아가 소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금메달을 따지 못하더라도, 최악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에게 삿대질하는 이는 이제 없을 거다. 그는 이미 ‘아름다운 도전’을 했고, ‘거대한 성공’을 일궜기 때문이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story6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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