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최근 스크린골프가 번성해 골프룰에 대한 중요성이 크게 희석되고 있는 현실은 유감이다. 특히 업•다운 경사나, 러프, 벙커플레이에 대한 기술적 프로그램이 전무한 것은 스크린골프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As It Lies. ‘있는 그대로’는 골프가 탄생하면서 생긴 대원칙이다. 골프규칙 제1장 1절은 ‘골프경기는 이 원칙에 따라 볼을 티에서 홀에 넣을 때까지 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18홀 코스라면 1번홀 티에서 18번홀 그린의 홀에 볼을 넣을 때까지 ‘있는 그대로’ 몇 번 쳐서 끝냈는가만 계산하면 라운드는 종료된다. 이 얼마나 단순하고 쉬운 스포츠인가. 정말 그럴까. 아니다. 다만, 알면 재미있지만 모르면 머리에 쥐가 나는 스포츠가 골프다.
골프는 축구나 농구처럼 몇 명의 심판이 눈을 부릅뜨고 파울을 지적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은 심판이 일일이 따라다니지 않는다. 드넓은 18개홀에서 백 수십명이 일제히 흩어져 경기를 치르는데,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를 유심히 체크하려면 수십명의 심판이 동원되어도 부족할 것이다. 실제 그 어떤 골프대회라도 현장에 투입되는 심판(경기위원)은 몇 개홀에 1명 정도다. 대부분 골퍼 자신이 심판이다.

프로골퍼라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고 수준의 미국PGA 투어에서, 그것도 지난해 경우만 보더라도 선수들이 룰을 몰라 벌타, 실격을 당한 사례는 너무나 많아 책 한권으로도 부족할 지경이다. 이 시대 골프지존인 타이거 우즈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5월 노스캐롤라이나 퀘일할로코스에서 열렸던 웰스파고챔피언십 2라운드. 우즈는 5번홀 티샷을 300야드가 훨씬 넘는 장타로 때렸는데 이게 왼쪽 러프로 들어가고 말았다. 경기위원이 급히 달려와 함께 찾아봐도 볼이 없자, 분실구로 간주해 우즈는 다시 티잉 그라운드로 돌아가 3타째 티샷을 하려던 참이었다.
스크린골프 확산으로 룰의 중요성 희석
이때 갤러리 중 한명이 “우즈의 볼이 떨어진 지점을 안다”고 외쳤다. 다시 갔지만 그곳에는 볼이 없었다. 여기서 경기위원은 수많은 갤러리들이 주변에 있었음을 감안, 그중 한명이 우즈의 볼을 가져간 것으로 판단해 무벌타로 그 지점에서 새 볼로 플레이를 해도 된다고 해석했다. 우즈는 2타를 번 셈이다. 우즈가 볼을 찾을 때 그곳에서 서성이는 갤러리에게 “내 볼 떨어진 것 본 사람 있느냐”고 묻기만 해도 해결될 문제였다.
우즈도 룰을 잘 모르는데 주말골퍼들은 말하나마나다. 개중에는 카트도로 위에 있는 볼도 ‘있는 그대로’랍시고 그대로 쳐대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무식의 소치다. 페어웨이에서도 ‘박힌 볼(embedded)’처럼 있는 그대로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볼을 집어들을 수 있는 경우는 수십가지나 된다.
최근 스크린골프가 번성해 골프룰에 대한 중요성이 크게 희석되고 있는 현실은 유감이다. 특히 업, 다운 경사나, 러프, 벙커플레이에 대한 기술적 프로그램이 전무한 것은 스크린골프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지난해 스크린골프 최강자가 어느 오픈대회에 참가했는데 1라운드가 끝나기도 전에 너무 많은 벌타가 매겨져 기권하기도 했다.

필드 라운드 때는 꼭 뒷주머니에 미니 룰북을 지참하기를 권한다. 주말골퍼의 볼은 페어웨이로만 가지 않는다. 스트레스 풀자고 간 필드에서 냉탕~온탕의 도리질이 계속되고, 벙커만 찾아다녀서 패대기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룰북을 펴면 상황을 반전시키는 기쁨을 틀림없이 경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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