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익의 CEO 에세이

“시민사회가 되면서 1세대는 짐승같이 돈을 벌었다. 2세대는 그 돈으로 권력을 잡았다. 하지만 돈과 권력의 무상함을 깨달은 3세대는 문학과 예술의 길로 갔다. 4세대는 봉사와 자선이 최고의 가치라는 걸 알고 실천한다.”
정치 대물림 없는 독일
토마스 만과 같은 국가적 지성의 가르침 때문인지 독일에는 정치 2세가 없다. 총리를 지낸 정치지도자의 아들과 딸이 정치한다는 말을 들을 수 없다. “너는 나중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연방정부의 총리요!”“그것은 안돼, 내가 이미 총리를 지냈기 때문에 그것으로 충분해.”
독일 초대 총리인 콘라드 아데나워와 그의 손자와의 대화로 유명한 내용이다. 유명정치인 2세가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의 상징이 된 일화다. 물론 법으로 2세가 정치를 하지 못하게 규정된 건 아니다. 자기 자식을 챙기는 것보단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정치 지도자를 배출하기 위한 독일만의 지혜로운 정치철학인 셈이다. 본받을 만한 점이라 생각된다.
최장수 총리이자 독일 통일의 주역 헬무트 콜의 아들인 발터 콜이 한 말이다. “아버지 콜에게 가정은 집이 아니라 기민당이었어요. 우리 가족은 그의 정치무대에서 정해진 역할만 수행했어요. 나는 어린 시절 고독하게 보냈고 항상 테러의 위험 속에서 살았어요. 나는 결코 정치인의 가족으로 남아있고 싶지 않아요.”
콜 수상의 아들은 경제학을 공부했고 현재 자동차 유통사업을 하고 있다.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아들 역시 정치를 멀리 한다. 말하자면 독일에는 미국의 케네디•부시 같은 정치가문이 없다. 한국의 정치역사를 돌이켜 보자. 이승만 초대 대통령 때 일이다. 1957년 8월 30일 밤, 경북 경주의 한 경찰서에 전화가 걸려왔다. 희대의 사기사건이었던 것이다.
“나 이강석이요.” 전화를 받은 경찰서장은 진위여부를 확인해 볼 겨를도 없었다. 황급히 두손으로 전화기를 귀에 대고 연신 굽실거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강석은 누구인가. 이강석은 당시 이기붕 부통령의 아들이었다. 자식이 없었던 이승만과 프란체스카 부부에게 ‘양자’로 선물된 이다. 이승만 부부는 이강석을 애지중지 했다. 그래서 이강석은 세상이 자기 것인 양 활개치고 다녔다.
진짜 ‘귀하신 몸’ 이강석이 설치는 통에 가짜 이강석이 나타났던 것이었다. 권력에 빌붙으려는 공직자들을 등쳐먹은 웃지 못할 사건이었다. 이승만은 4•19혁명으로 하야했다. 그후 하와이로 망명해 객지에서 쓸쓸히 삶을 마감해야 했다.
정치적 후광으로 활개치면 안돼
1960년 4월 28일 새벽 5시40분경 이강석은 부모 이기붕과 박마리아, 그리고 동생 이강욱을 권총으로 쏴 죽였다. 자신도 그 총으로 자살했다. 동아시아에 새로운 권력들이 출발하고 있다. 그들은 기묘하게도 모두 정치 2•3세들이다. 중국의 새 지도자 시진핑習近平은 건국 8대 원로 중 하나인 시중쉰習仲勳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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