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불리는 ‘용산국제업무지구’ 프로젝트가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경기침체로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데다 사업자간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어서다. 시행사 드림허브의 자본금은 바닥을 드러냈는데 증자 작업 역시 여의치 않다. 이대로 가다간 ‘부도’를 맞을지도 모른다.

‘사통팔달의 요지’ 용산은 수십년 동안 찬밥취급을 받아왔다. 미군부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군기지 이전계획이 2004년 국회를 통과하면서 용산지역 재개발이 급물살을 탔다. 시티파크•한강로재개발•한남뉴타운 등 굵직한 개발계획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용산국제업무지구는 건국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 사업이 좌초될 운명에 놓였다. 경기침체로 인한 자금난과 사업자간 이해충돌 탓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은 2000년대 초 정부의 고속전철사업에서 시작됐다. 당시 코레일은 KTX고속전철 사업의 부진으로 부채 4조5000억원을 떠안았다. 이런 부채를 해소하기 위해 떠오른 방안이 용산역 인근 철도정비창부지(44만2000㎡)의 매각이었다.
토지소유자 코레일은 2006년부터 해당 토지를 매입하고 개발할 사업자를 물색했다. 큰 어려움은 없을 듯했다. 당시 용산에는 ‘개발바람’이 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레일의 계획은 서울시의 반대에 부닥쳤다. 오세훈 서울시장(당시)은 “철도정비창부지 개발사업은 서울시의 한강르네상스 계획과 연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드림허브 자본금 1조원 중 9억원 남아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땅주인 코레일이 드림허브에 25%의 지분을 출자해 참여했다. 롯데관광(15.1%)•삼성물산(14.5%)보다 지분이 많은 1대 주주였다. 땅주인도, 사업시행자도 코레일이 된 셈이다. 당연히 ‘토지대금으로 부채를 해결해야 할 코레일이 쓸데없이 사업욕심을 부린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2008년 용산국제업무단지의 드림허브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힘차게 돛을 올렸지만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드림허브의 부족한 자본금도 문제였다. 사업초기 드림허브가 마련한 자본금은 1조원이었다. 전문가들은 “대형 부동산 프로젝트는 초기 자본금이 총사업비의 10%정도는 돼야 안정적”이라면서 “드림허브는 자산비율이 너무 낮다”며 걱정스러워 했다. ‘드림허브프로젝트가 31조원 사업이니 초기 자본금으로 3조원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우려였다.
그러나 드림허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사업비 중 10조원 이상을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해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나머지 사업비는 공사 전후 벌어들일 분양대금으로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불가능한 계획은 아니었다. 언급한 것처럼 당시 용산엔 ‘개발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8년 10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부동산 시장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PF대출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고, 그 결과 사업진행이 더뎌졌다. 분양도 너무 먼 얘기가 돼 버렸다.
사업시행 1년 만인 2009년 4월 문제가 터졌다. 코레일에 갚아야 할 2차 토지대금(4000억원)을 드림허브가 내지 못한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코레일이 ‘돈을 갚으라’고 드림허브를 압박할 수 있다. 하지만 코레일은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드림허브의 1대 주주가 자신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코레일은 한발 물러서는 제스처를 취했다. “토지대금은 6~7년 분납해도 좋다”고 양해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야 할 게 있다. 용산국제업무지구의 사업시행자는 드림허브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주체는 ‘용산역세권개발’이다. 이는 드림허브의 법적 성격에서 기인한 일이다. 드림허브는 금융투자사다. 대형 부동산사업을 위한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런 경우 부지취득, 인허가, 건설•분양을 모두 담당하는 자산관리회사(AMC)가 필요한데, 용산역세권개발이 그 역할을 맡았다.
용산역세권개발의 자본금은 30억원이다. 애초 주주는 삼성물산(45.1%), 코레일(29.9%), 롯데관광(25%) 세회사다. 2010년 9월 삼성물산이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지분을 롯데관광에 넘겨, 대주주가 바뀌었다. 그 결과 드림허브의 최대주주 코레일, 용산역세권개발의 최대주주 롯데관광이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을 이끄는 양축이 됐다.
실제로 양쪽은 국제업무지구 개발방식을 두고 갑론을박을 거듭했다. 코레일은 경기침체 등을 이유로 ‘단계적 개발’을 주장했다. 롯데관광은 원안대로 ‘통합개발’을 해야 한다고 맞섰다. 양쪽이 갈등을 빚는 동안 드림허브의 자본금은 바닥을 드러냈다. 증자를 위해 추진한 외국인 투자자 모집 역시 순조롭지 않았다.
2011년 7월 자금난에 부닥친 코레일은 또 다른 악수를 던졌다. 용산국제업무지구에 세워질 111층 규모의 랜드마크 타워를 4조1000억원에 구입하기로 한 것이다. 세워지지도 않은 빌딩을 구입하고 그 매입비를 드림허브에 지급해 자금난을 해소할 계획이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방식의 전형적인 ‘돌려막기’였다. 코레일 내부에서조차 “실체도 없는 유령빌딩을 사고판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코레일과 드림허브는 2011년 9월 랜드마크 빌딩계약 체결을 밀어붙였다. 코레일로부터 빌딩계약금 4100억원이 들어오자 사업은 잠시 활기를 띠었다. 드림허브 출자사들 역시 4000억원을 증자하겠다고 뜻을 모았다. 하지만 활기는 금세 사라졌다. 건설경기가 침체의 늪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용산국제업무지구의 무리한 분양•시공계획은 사업성마저 의심하게 만들었다. 설상가상으로 4000억원을 증자하겠다던 드림허브 출자사들이 돌연 입장을 바꿔버렸다. 그러자 코레일은 지난해 3월 예정돼 있던 랜드마크 빌딩 2차분 대금 4160억원을 드림허브에 지급하지 않았고,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은 사실상 중단됐다.

용산 ‘상전벽해’ 프로젝트 진통
그러나 이 역시도 출자사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무산됐다. 벼랑에 몰린 드림허브는 올 2월 28일 긴급이사회를 다시 소집했다. 자본금을 1조원에서 5조원으로 늘리고, 증액자본금 4조원 중 2조6000억원은 코레일이, 1조4000억원은 민간출자사가 부담하기로 했다. 과거 삼성물산이 보유하다 롯데관광에 넘긴 용산역세권개발 지분 45.1%는 코레일에 위탁한다는 내용도 의결했다. 롯데관광은 “지분 45.1%를 양도하는 대신 미루고 있는 2차 빌딩대금(4160억원)을 조속히 내라”며 코레일을 압박했다.
이 의결내용이 주총을 통과하면 코레일의 드림허브 지분은 25%에서 57%로 늘어난다. 용산역세권개발의 지분도 29.9%에서 75%가 된다. ‘민간개발’이었던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이 ‘공공개발’로 성격이 바뀌는 셈이다. 이 사업이 활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다.
문제는 또 있다. 추가자본금 2조6000억원을 마련해야 하는 코레일은 민간출자사에서 먼저 1조4000억원을 구해와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민간출자사는 출자여력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 드림허브의 자본금은 9억원밖에 남지 않았다. 더구나 드림허브는 3월 12일까지 금융비용에 따른 이자 59억원을 납부해야 한다. 이러다간 부도를 피하기 어렵다. 용산 ‘상전벽해’의 꿈도 물거품이 된다. 뾰족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유두진 기자 ydj123@thescoop.co.kr|@allint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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