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골프에서 빈스윙만큼 보기 싫은 것도 없다. 스윙이 망가지면 상대방의 동정을 사지만, 빈스윙을 반복하면 기다리는 상대방은 짜증을 넘어 자신의 스윙까지 망가지기도 한다.
빈스윙은 영어로는 ‘exercise swing’ 예비스윙이라고 하며, 나이가 많은 분들은 아직도 ‘가라 스윙’ 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빈스윙은 골프망각증이나 입스처럼 골프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할 스테레오 타입 가운데 하나다.
한국여자프로골프가 바야흐로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세계 골프 역사상 종주국 영국과 골프 공룡시장 미국을 제외한 국가가 이처럼 상위랭킹에 군림하는 경우는 아마 이후에도 없을 듯하다. 국내 여자골프는 1998년 5월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기 전까지만 해도 남자협회(KPGA)의 한 부서에 불과했다. 이후 단 1년만에 남자와 여자의 위치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여자골프의 중흥은 파격적인 변화를 단행했기에 가능했다.

그날 모임에서 위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선수들은 설령 우승권이라도 중계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음은 물론, 보도에서도 준엄하게 지적하기로 했다. KLPGA는 빈스윙에 따른 지연플레이에 대해 시즌오픈부터 아예 대회 로컬룰로 정할 정도로 초강경책을 폈다. 샷마다 4,5번 빈스윙에 퍼팅도 2,3번은 그린을 왔다갔다하는 데 익숙해 있던 선수들은 스윙이 무너지거나 시간제한에 쫓겨 후반 1~4 홀은 뛰면서 라운드하는 모습이 속출했다.
몇 개월만에 대부분 선수들의 지연플레이가 없어졌다. 대신 시청자들은 ‘예쁘게 화장한’ 선수들의 시원스런 빠른 플레이에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시청률 급상승과 함께 대회 갤러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필자는 지금도 확신하고 있다.
골프에서 빈스윙만큼 보기 싫은 것도 없다. 스윙이 망가지면 상대방의 동정을 사지만, 빈스윙을 반복하면 기다리는 상대방은 짜증을 넘어 자신의 스윙까지 망가지기도 한다.
고인이 된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김기수씨는 한때 핸디캡 1일 정도로 골프도 국내 정상급이었다. 그에게는 그러나 함께 라운드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다. 골프 명칼럼니스트이자 현재도 국내 아마추어 골프 대가인 우승섭씨의 회고담. “(30년전 쯤) 한양CC에서 서로 자존심을 건 라운드가 있었다. 나는 후반에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10번홀에서 김기수씨의 쏘시게(빈스윙)를 세어봤다. 티잉그라운드에 들어서 어드레스부터 서른여덟번 만에 임팩트가 이뤄졌다….” 미국PGA투어에서는 단 1번의 빈스윙도 갤러리들의 야유를 받는다. 빈스윙을 안하면 될 거 아니냐?
이처럼 쉬운 답이라면 이 칼럼을 쓰지도 않았다. 지난해 3월 미국PGA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돌풍의 나상욱(케빈 나)은 샷마다 빈스윙을 해 경기위원의 지적을 받았고, 급기야 미국언론은 “케빈 나의 스윙은 갤러리들을 짜증나게 했다”며 치명타를 날렸다. 그러나 나상욱은 이후에도 여전히 빈스윙을 계속했다.
TV중계에선 그의 빈스윙을 조롱하듯 방영하곤 했다. 본인은 오죽했을까. 5월 인터뷰에서 “너무 괴롭다. 이 ‘스윙 입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토로했다. 나상욱의 고통스런 빈스윙은 가을시즌이 돼서야 멈췄다. 이 기간에 나상욱은 어드레스 순간 수천번은 “빈스윙 안한다”고 외쳐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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