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하들과 건강한 경계를 두기 위해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고립과 다르다. 불을 멀리하면 얼어 죽듯 부하들과의 거리도 마찬가지다. 구성원들의 환호와 갈채만 이끌어 내기 위해 쇼를 하지 말라는 것이지 중세 성주처럼 성 안에만 있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부하들을 너무 가까이하는 친화적 상사도 그렇지만 부하들을 멀리하며 신비주의로 일관하는 상사도 문제다. 선은 넘지 않는 게 좋지만 벽은 허물 필요가 있다. 요즘 세상에도 부하들을 무조건 멀리하는 게 자리 보전의 ‘안전핀’이라고 착각하는 상사들이 있다. 그것이 청렴의 방법이라고까지 여기며 부하를 지나치게 멀리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정직하고 청렴한 목민관으로서 ‘일절 민원 사절’을 슬로건으로 내건 모 지자체 단체장은 저녁 7시에 퇴근해 민원은 물론 부하직원조차 만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공연히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으려는 결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유폐를 자초한 그는 집안에 틀어박혀 문고리 붙잡고 외로움에 울었다고 한다.
부하들과 건강한 경계를 두기 위해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고립과 다르다. 불을 멀리하면 얼어 죽듯 부하들과의 거리도 마찬가지다. 구성원들의 환호와 갈채만 이끌어 내기 위해 쇼를 하지 말라는 것이지 중세 성주처럼 성 안에만 있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거인의 정원」에는 담을 높이 올린 거인의 정원이 결국 황무지로 변한다는 내용이 있다. 상사와 부하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부하들이 당신에게 다가서지 못하면, 당신의 소통 마당에는 을씨년스럽게 낙엽만 흩날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본인의 외로움은 둘째치고, 구성원을 속속들이 알기가 어려워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은커녕 관리조차 힘들어진다.
부하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선 상사 스스로 적당하게 자기노출을 해야 한다. 자기노출이란 자신의 정보를 자발적·능동적으로 드러내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걸 의미한다. 그 범위는 간단한 인적사항에서부터 넓게는 자신의 감정에 자리 잡은 은밀한 모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개인의 신상을 일일이 열어젖힐 필요는 없지만 당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봉인하고 있다면 신비스럽다기보다 의뭉스럽게 보인다. 가슴을 열어라. 그들에게 마음의 벽이 아닌 따뜻한 가슴을 보여라. 부하를 무조건 멀리하는 게 상책이라며 부하와 밥도 술도 안 하는 것이 신비감을 조성하고 실수를 보여주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부하들은 친근하면서도 보면 볼수록 카리스마를 풍기는 상사를 원한다. 자산과 유사한 면이 느껴지는 친밀한 리더를 선망하지, 저만치 홀로 떨어져 대망을 품은 리더는 존경하지 않는다.
리더 스스로 자신을 오픈하면 부하와의 공감대 형성에 큰 도움을 준다. 남자들이 사우나를 함께 갔다 오면 친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친한 관계와 데면데면한 관계를 구별하는 척도가 무엇인지 아는가. 혹자는 밥먹는 횟수라고 하지만, 필자는 같이 나눌 수 있는 사적 이야기의 범위라고 생각한다.
모 기업의 사장은 직원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자신의 프로필을 모두 공개했다. 이후 이를 기업문화로 정착시켜 인사발령을 받은 모든 임원이 거치도록 했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공감대와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민증’ 꺼내 다 보여주면 뒷말이 없어지지 않겠는가. 부하와 상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지하에서 맴돌던 질문을 양지로 끌어올려야 한다. 리더는 어떤 질문에도 다 대답해주는 게 원칙이다. 껄끄러울 수 있는 질문에 솔직히 맞서고 나면, 조직의 응집력과 신뢰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다. 물론 이를 위해

강한 리더는 자신을 드러낼 때 평범한 옆집 아저씨·아줌마 같은 면을 돋보이게 하려고 노력한다. 누구나 자신과 닮은 모습에 끌리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우수한 별종보다 자신과 닮은 모습에 끌림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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