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한 홈플러스 회장. 그의 파격경영은 언제나 소비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홈플러스의 본사 영국 테스코도 이승한 회장의 ‘창조 DNA’를 인정한다. ‘해외지사는 본사의 전략을 따른다’는 오랜 룰을 깨고 이 회장에게 홈플러스 경영 전반을 맡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이 회상이 돌연 홈플러스 CEO직을 내려놓는다고 선언했다. 유통업계 안팎에서 ‘밀렸다’ ‘강제 퇴임당했다’ 말이 많다. 경기침체ㆍ정부규제로 상황이 악화되니까 은근슬쩍 꽁무니를 빼는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렇지 않다. 다소 초라하게 출발한 홈플러스를 업계 강자 자리에 올려놓은 그가 이제 와서 책임을 회피할 리 없다.
소문 진화 나선 테스코 본사
실제로 그의 퇴임결정은 갑작스러운 게 아니다. 오래전 결정된 일이다. 외부에 알리지 않았을 뿐이다. 그는 ‘아름다운 은퇴’를 꿈꾸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 회장 스스로 정한 퇴임 시기는 5월. 후계자까지 정해 놓았던 터다. 하지만 2월 중순 한 언론에 ‘퇴임소식’이 실리면서 숱한 소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 것이다.
소문 진화를 위해 영국 본사가 직접 나섰다. 필립 클락 테스코 회장은 2월 19일 이승한 회장의 대표직 퇴임과 관련 사내서한을 띄웠다. 내용은 이랬다. “지난 14년간 홈플러스의 CEO를 맡았던 SH Lee(이승한 회장 영문명)가 오는 5월 CEO직을 내려놓기로 결정했습니다. 테스코는 SH가 홈플러스와 테스코에 보여준 특별한 공로를 인정합니다. 홈플러스의 회장직과 함께 테스코 리더십 아카데미의 회장 겸 석좌교수직, 이파란 재단의 회장직과 테스코 그룹 총괄 CEO의 경영 자문역을 제안합니다.”
이 회장은 테스코의 요청을 받아들여 CEO직을 퇴임한 후 기존 회장직과 함께 경영자문역을 맡는다. 테스코로선 파격적인 대우다. 필립 클락 회장은 ‘특별한 공로’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이 회장의 업적을 높게 평가했다. 클락 회장이 언급한 ‘특별한 공로’는 무엇일까.

홈플러스의 복층구조와 무빙워크ㆍ지하주차장ㆍ골프장ㆍ와인숍ㆍ카페테리아을 그대로 본떠 만들었다. 창고형 일색의 영국식 테스코 점포에선 볼 수 없었던 거였다. 이 회장이 홈플러스에 적용한 시스템을 영국 본사가 받아들인 셈이다. 이는 테스코 역사상 이례적인 일이었다.
테스코의 경영원칙은 ‘영국 본사에서 전력을 짜고 해외법인은 그 전략에 맞춰 운영하는 것’이다. 홈플러스는 달랐다. 이 회장의 의사결정과 판단을 존중했다. 이 회장이 테스코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기 시작한 건 1997년부터다. 당시 한국은 외환위기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 회장이 유통부문 대표로 있던 삼성물산 역시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부채비율이 600%에 달할 정도였다. 대구와 부산에 2개의 대형마트를 갖고 있던 삼성물산은 테스코와의 합작으로 위기를 극복할 계획을 세웠다. 이때 삼성물산 측 협상자로 나선 이가 이 회장이었다. 이 회장은 절박했다. 테스코와 합작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면 삼성물산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물러설 수도, 포기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협상 대상자가 누구인가. 영국 최고의 유통채널 테스코다. 협상은 첫 만남 때부터 진통을 겪었다. 테스코가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계약을 체결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회장은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제시한 가격보다 낮으면 매각을 포기하겠다”며 초강수를 던졌다. 사표까지 던진 마지막 승부수였다. 이 회장의 배짱은 테스코의 마음을 흔들었다. 삼성물산은 장부가보다 200억원이나 높은 가격에 계약을 체결했다. 테스코 측은 한발 더 나아가 ‘홈플러스 CEO는 이승한에게 맡겨달라’는 조건까지 내걸었다. 이 회장이 제시한 ‘홈플러스 운영은 한국식으로 하고, 한국에서 결정한 대로 한다’는 안案까지 수용했다. 테스코의 당시 회장인 테리 리히가 홈플러스의 의사결정권을 이 회장에게 넘긴 것이다. 이 회장과 테스코의 끈끈한 파트너십은 홈플러스 성장에 ‘밀거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 회장이 내세운 첫째 전략은 ‘글로컬(GloCal) 스탠더드’다. 글로컬은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와 로컬프랙티스(Local Practice)를 합친 신조어다.
테스코 본사의 노하우를 따르되 국내 소비자의 정서에 걸맞은 현지화 전략을 펼치겠다는 포부였다.
배짱협상으로 테스코 마음 돌려놔
테스코와 합작회사를 만든 후 처음 탄생한 홈플러스 3호점 안산점이 바로 1호 글로컬스탠더드형 점포였다. 일단 매장 1층을 획기적으로 구성했다. 문화센터와 400석의 푸드코트ㆍ약국ㆍ어린이놀이터ㆍ수유실 등을 입점시켰다. 기존 대형마트 공식을 완전히 무너트린 구성이었다. 마트의 공간은 3.3㎡(약 1평)의 공간이라도 물건을 팔기 위해 활용해야 한다. 대형마트에 가면 물건이 빽빽하게 진열돼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 회장은 이곳에 여유공간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했다. 이 회장에게 신뢰를 보냈던 테스코 측에서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리수’가 아니냐는 거였다.

이 회장의 파격도전 사례는 더 있다. 이 회장은 2003년 4월 홈플러스 부산 아시아드점에 에어로빅ㆍ스쿼시ㆍ볼링ㆍ사우나가 있는 대형 스포츠센터를 들여놨다. 쇼핑과 운동이 한번에 가능한 ‘원스톱 쇼핑몰’을 구현한 것이다. 이 선택은 대형마트의 트렌드를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이 회장이 직원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아무도 가지 않는 바깥쪽 트랙을 달려라.” 힘들다는 이유로 남들이 잘 가지 않는 바깥쪽 길을 달려야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 회장은 처음부터 남들과 같아선 승부를 겨루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매장에 ‘여유개념’을 도입한 것도, 유통시설에 스포츠센터를 입점시킨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가 창고형 할인점 일색의 대형마트를 1세대로 구분하고 홈플러스를 이보다 진화한 ‘2세대 가치점’으로 탈바꿈시킨 이유 또한 같다.

이 회장의 차별화 전략은 홈플러스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홈플러스는 국내시장 진출 3년 만에 연 매출 1조원을 달성하고 업계 3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1년 후엔 연매출 2조원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홈플러스의 고속성장은 해외에서도 주목했다. 모건스탠리는 “홈플러스의 매출은 믿기 힘들 정도였다”고 평했다. 도이치방크는 “삼성테스코는 아시아에서 가장 유망한 유통기업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 회장은 2세대 가치점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2007년 홈플러스 잠실점의 1층 벽을 허물고 테라스가 있는 커피숍을 입점시켰다. 유럽생활 도중 얻은 아이디어를 스스로 구체화한 것이다. 이 회장은 소비자의 감성을 충족하지 못하면 더 이상의 발전을 이루지 못할 것으로 봤다.
요즘 시각으론 특이할 게 없는 발상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할인점 1층 벽을 부수고 테라스형 카페를 들여놓는 것 자체가 황당한 아이디어였다. 잠실점은 오픈 후 얼마 되지 않아 지역명소로 떠올랐다. 사람들은 테라스 카페를 가기 위해 홈플러스를 방문했고, 높은 구매율로 이어졌다. 잠실점은 이후 셀프 와인바 등 감성형 서비스를 추가로 도입해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2011년 8월 선보인 4세대 유통모델 ‘홈플러스 스마트 가상 스토어’에도 이 회장의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상품사진에 바코드나 QR코드를 넣어 스마트폰만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신개념 스토어다. 스마트폰 스캔을 통해 물건을 구매하면 홈플러스 오프라인 매장에서 물건을 배송해준다. 이승한 회장의 시공간을 초월한 차세대 유통서비스는 세계인의 이목을 끌어 모았다. 지난해 9월 이 회장은 이 ‘가상 스토어’로 영국 런던에서 열린 ‘월드 리테일 어워즈’에서 비즈니스 혁신 부문상을 받았다.
2세대 가치매장 인기 폭발
60세가 넘은 이 회장이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낼 수 있는 원동력은 뭘까. 이 회장의 모토는 ‘늘 새로워야 한다’는 거다. 이 회장은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계란을 남이 깨면 프라이가 되지만 자신이 깨면 병아리가 된다.” 이 회장의 ‘혁신철학’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이 회장이 승승장구한 것만은 아니다. 그에게도 시련의 시절이 있었다. 2006년 의욕적으로 추진한 까르푸 인수에 실패해 상처를 입었다. 까르푸 인수를 통해 업계 1위에 오르겠다는 꿈도 접어야 했다. 홈플러스를 이끌기 전엔 아홉 살배기 아들을 떠나보내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그는 위기의 순간 더 집중했다. 이랜드로 넘어간 까르푸(당시 홈에버)의 인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이랜드 인수ㆍ합병(M&A) 담당자와 꾸준히 친분을 쌓으면서 때를 기다렸다. 그러던 2008년 봄. 그가 기다리던 홈에버가 매물로 나왔다. 이랜드가 적자가 날로 쌓이는 홈에버를 M&A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당연히 경쟁자가 많았다. 특히 유럽 최대의 사모펀드 퍼미라가 테스코보다 높은 인수가를 제시해 홈에버를 눈앞에서 놓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테스코 측을 끈질기게 설득해 퍼미라보다 높은 인수가를 제시해 홈에버 36개 매장을 품에 안았다. 그의 뚝심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Retire의 사전적 의미는 은퇴를 뜻한다. 하지만 나는 이를 ‘Re+Tire’라고 말하고 싶다. 새롭게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것, 바로 새로운 출발이다.”
이 회장은 CEO직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보스턴대학으로 떠난다. 그곳 교수들과 동서양 경영문화의 장단점을 분석해 새로운 경영이론을 정립할 참이다. 그의 성향상 이 이론을 완성하면 홈플러스에 주입할 것이다. 그때 그는 이렇게 외칠지 모른다. “이 이론을 토대로 다시 출발하자. 1위가 목전에 있다.” 홈플러스의 성장판은 아직 열려 있다. 이 회장의 창조 DNA가 여전히 꿈틀대고 있어서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story6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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