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역사소설가 셰스쥔謝世俊은 소설 「상성商聖」을 통해 철저한 역사 고증을 토대로 범려를 추적하고, 상상력을 동원해 기막힌 허구의 세계를 그려냈다. 소설은 ‘공자가 열국을 주유하다가 초나라의 완읍宛邑을 지나게 됐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공자가 온다는 소문이 돌자 범려도 그를 꼭 만나보고 싶었다. (중략) 그날, 열여덟살의 범려는 공자를 만나기 위해 한껏 의관을 갖추고 말에 올라 가볍게 채찍을 두드리며 힘차게 저잣거리를 지나 동문을 나섰다.
-「상성商聖」, 중앙M&B
작가 상상력이 빛나는 대목이다. 열여덟 살의 범려는 접여接輿의 소개로 계연과의 인연을 맺는다. ‘그날’은 「논어」 미자편에 나온다.
초나라의 광인인 접여가 노래를 하면서 공자 옆을 지나가며 말했다. “봉황이여, 봉황이여, 어찌하여 덕행이 그렇게 쇠하였는가! 과거는 말해도 소용없고, 미래는 그래도 따를 수 없다.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오늘날 정치하는 사람은 위태로울 것이다.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 그와 말을 하려고 하였지만, 그는 재빨리 피해버려서 그와 말을 할 수 없었다.
-「논어금독」, 북로드
셰스쥔은 중국 고전 「고사전高士傳」에 나오는 ‘육통陸通’이란 인물을 접여의 본명으로 취한 것 같다. 육통의 자字가 ‘접여’이기 때문이다. 셰스쥔은 범려와 가까운 인맥으로 ‘육접여’를 자신의 소설에 등장시킨다. 소설에서 접여는 범려와 계연을 만나게 한다.
범려와 계연이 만난 것은 아주 늦은 저녁이었다. 밤새 대화를 나누면서 범려는 귀곡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는 결심을 밝히고 그에게서 어떤 학문을 전수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은사께서 교수하시는 학문은 크게 도道•교敎•병兵•유游의 네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중니 선생이 조종祖宗의 법도를 엄격히 지키면서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를 전수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지요. 가장 중요한 차이는 공자의 학문이 예를 핵심으로 하고 있는 데 비해 은사님의 학문은 도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는 겁니다. 또한 공자는 병兵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지만 은사님께서는 병법을 매우 중시하시지요.”
-「논어금독」, 북로드
예를 중시하는 공자와 병법을 가르치는 귀곡자를 대비해 자공이 걸어가는 길과 범려가 걸어갈 길이 다른 방향임을 넌지시 보여준다. 자공이 상인→학생→외교전문가→정치가의 길을 걸었다면 범려는 학생→군사전략가→상장군→상인의 길을 갔다고 정리할 수 있다. 둘의 공통점은 ‘상인과 학생’이다.
행간에서 돈이 있어도 공부해야 하고, 공부를 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읽어야 한다. 인생의 여정을 ‘사는 대로’가 아니라 ‘생각대로 살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고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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