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연습을 할 시간을 내기 힘든 주말골퍼들에게 스윙 망각증이 왔는데 “열심히 연습하면 회복된다”고 조언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생각하는 골프’에서 그 답을 찾아야한다. 쉬는 것이다. 잠시 쉬는 것도 골프기량 향상의 한 방법이다.
사춘기시절 필자는 시인 이상李箱에 심취한 때가 있었다. 문제작 ‘오감도’에서 이상 시인의 발작적으로 분열되는 감성을 체험하고 싶어 마치 지구의 멸망이 내 책임인 양 일부러 고통스러워 하려고 애를 썼다. 대학시절엔 독일의 철학자 칸트의 이성비판론에 빠져 몇 년을 헤어나오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고뇌의 고뇌에 빠져봤자 이상이나 칸트처럼 되지도, 될 수도 없음을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깨닫게 됐다. 보통사람은 극단적인 사고의 경지에 다다르고 싶어도 그럴 준비도 능력도 없는 까닭이다.

골프엔 ‘스윙 망각증’ 이란 게 있다. 스윙감을 잃어버리는 증세다. 의학용어로 망각증은 뇌의 기능에 이상이 있을 때 발병한다. 골프 10년차 쯤 된 골퍼라면 어느 날 졸지에 스윙감을 잃어버리는 황당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거의 대부분은 인도어 같은 연습장이 아닌 필드, 즉 실전에서 발생하는데 어느 순간 단 한 번의 스윙에서 시작된다. 첫 홀에서 이 증세가 나왔다면 그날 라운드는 혼수상태로 계속된다. 심지어는 18번홀 그린을 눈앞에 두고 나이스샷의 연속이었던 스윙이 갑자기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전날 피곤했거나 산만한 정신 때문에 미스샷의 연속이었다면 다행이겠지만 그 후 연습을 계속했는데도 실전에서 어이없는 스윙이 반복된다면 망각증에 걸렸다고 봐야한다. 뇌(정신)의 명령을 육체의 근육이 거부하는 모양새다.
스윙 망각 증세는 골퍼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또한 스윙 망각증은 초보자가 아닌 중급자 이상에게 찾아든다. 인도어에서 수없이 갈고닦은 스윙연습으로 스윙근육이 완전히 형성돼 있는 사람, 골프가 재미있어지고 필드가 내 집 거실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는 단계에 와 있는 골퍼에게 느닷없이 나타나는 무서운 골프 스트레스의 하나다. 또한 홍역처럼 잠깐 스쳐가는 게 아니라 최소 6개월에서 심지어는 몇 년 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 증세에 걸렸다하면 특히 화이트칼라들에게는 딱히 조만간에 회복할 방법이 없다는 데에 있다. 연습으로 극복할 수 있다? 천만의 말씀. 1980년대 후반 무려 331주 세계랭킹 1위에 군림했던 ‘백상어’ 그레그 노먼이 1990년 들어 갑자기 스윙감이 실종돼 한 해를 완전히 망친 적이 있다. 이듬해 그는 “내 스윙을 찾기 위해 지난해(1990년) 8만번 이상 스윙연습을 한 것같다”고 털어놓았다.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서도 모든 대회 우승확률 50%로 ‘대한민국 프로골프 지존’이던 최상호도 19 87년 시즌에 느닷없이 스윙감을 잃어버려 무려 2년간 프로골프계에서 잊힌 존재가 된 적이 있다.
위 두 슈퍼스타의 경우는 슬럼프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스포츠에서 슬럼프는 거의 전부가 육체적 근육의 이상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그럴 시간부터 아예 낼 수가 없는 주말골퍼들에게 “열심히 연습하면 회복된다”고 조언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생각하는 골프’에서 그 답을 찾아야한다. 쉬는 것이다. 잠시 쉬는 것도 골프기량 향상의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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