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오만한 골프는 ‘생각하지 않는 골프’다. 이른바 ‘개념이 없는 골프’다. 언더파도 가능한 ‘주말골퍼 동급 최강’이라고 으스대며 감히 최상호 프로에게 도전장을 냈던 필자는 젖먹던 힘까지 쏟아 스윙을 했지만 최악의 스코어를 기록, 자존심은 여지없이 구겨지고 말았다.
주말골퍼도 최경주가 치렀던 똑같은 코스에서 대등한 스코어를 낼 수있는 게 골프라고 언급한 바 있다. 골프는 육체적 기량 외에 ‘그 무엇’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 무엇을 ‘생각하는(같은 뜻으로 mind) 골프’라고 주장했는데 벌써 3번째 언급을 하고 있다. 앞으로는 일관되게 ‘생각하는 골프’로 전개하고자 한다.
생각하는 골프의 정수精髓는 겸손이다. 태어날 때부터 겸손한 사람은 없다. 겸손은 순전히 후천적이다. 겸손은 배움에서 나온다. 문학적•철학적 지식에서 나온다. 예부터 “못 배웠다”는 것은 기술적인 게 아니라 문학, 철학 등을 배우지 못한것을 일컫는다.
독서도 골프 훈련이다

필자는 “골프선수로서 대성하려면 무조건 책을 읽어야한다”고 단호하게 주장해왔다. ‘ 그 무엇’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 LPGA까지 석권한 박희정은 학교 리포트, 시험공부를 위해 훈련 외에 툭하면 밤새워 공부를 했다. 하루종일 스윙연습을 하고 숙소에 돌아와 곯아떨어지곤 하는 여느 골퍼들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겸손의 반댓말은 교만이다. 교만은 시쳇말로 쓴맛을 보지 못한 데에서 나온다. 골프에 매치플레이란 종목이 있다. 1 대 1 홀매치에서 패배한 이유 중 부동의 1위가 바로 교만이다. 배우면 겸손이요, 배우지 못하면 교만이다.
겸손과 교만은 차라리 인류역사 그 자체다. 교만은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도교, 유교 할 것없이 한결같이 인간이 가장 경계해야 할 1순위로 꼽고 있다. 특히 ‘사서오경은 예기의 주해註解나 다름없다’할 정도로 예기禮記는 사서오경에서 으뜸으로 치는데, 49편에 걸친 방대한 예기의 제 1편 1장 두 번째 항에 ‘오불가장敖不可長’이란 말이 있다. 敖는 ‘교만할 오’. 교만한 마음을 자라게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3000여가지나 되는 예기의 인간의 덕목 가운데 최상위에 랭크돼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Scoop 독자들 가운데 골프에 관심이 있거나, 여전히 골프를 즐기고 있는 화이트칼라에게 희망이 생긴다. 죽어라 골프연습을 한 여느 골퍼 못지않게 화이트칼라들은 죽어라 공부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골프에서 그 것은 엄청난 내공이다. 다만 실전에서 활용을 못하고, 망각하는 게 문제다.
필자는 영광스럽게도 ‘대한민국 골프의 큰 별’ 최상호 프로와 오래전부터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2001년 1월인가, 최상호프로와 우리 부부가 태국에 골프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필자는 그 시절 그렇게 스윙이 잘 될 수가 없었다. 누구도 겁나지 않았다. 최상호도 만만하게 보였다. 필자는 그동안 함께 라운드하는 것만으로 만족한 게 아니라 과감히 내기를 걸었다. “18홀에 5점!” 충분히 승산 있다고 봤다.
화이트칼라에겐 든든한 힘이 있다
첫 홀에 두사람 모두 파. 두 번째 홀에서 최상호 버디, 필자 보기. 세 번째 홀에서 필자는 젖먹던 힘까지 쏟아 스윙을 했지만, 뒤땅과 토핑으로 더블보기, 최상호는 이글을 잡아버렸다. 잘하면 언더파도 가능하리라 교만을 떨었던 그날 필자는 수년래 최악의 스코어를 기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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