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은의 Art Talk | 화가 김형준
겨울바람이 온몸을 얼어붙게 하는 날이면 필자는 어김없이 겨울바다에 간다. 참 이상한 일이다. 차가운 대기와 맞닿아 펼쳐지는 겨울바다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얼어붙게 한다. 마치 메두사의 눈을 바라보는 듯 말이다. 순간 알 수 없는 힘이 깊은 곳에서 올라온다.

김형준 작가의 작품과 처음 마주하는 순간이 꼭 그랬다. 화려한 색채로 가득 찬 작가의 작품 앞에서, 겨울바다 아래에서 만난 생명체들과 재회하는 듯한 환영을 맛봤다[그림1]. 마치 검푸른 깊은 수면 아래의 생명체를 화면에 옮겨 와 우리 앞에 펼쳐 놓은 것 같은 바닷속 풍경이다.
몸을 돌려 다른 화면 앞에 서 본다. 거기엔 보는 이를 유혹하는 신비스러운 바다 생명은 더 이상 살고 있지 않다. 상상 속 해양 괴물과 검은 물결이 고통스러운 시름을 뱉어내고 있을 뿐이다. 저주받은 바다의 모습이다[그림2].
이처럼 다른 두 화면을 접하자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졌다. 어린 시절 작가의 집 거실엔 어항 하나가 있었다고 한다. 그곳엔 자신이 매일 먹이를 주며 애지중지하던 생명체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소년은 어항에 잉크를 부었다. 어항 속 생명체에게 바다 물결이 만들어내는 검푸름을 선사하고 싶었던 것이다. 현실은 달랐다. 물빛이 검은색으로 물들면서 물고기들은 숨을 헐떡이다 수면 위로 떠올랐다. 소년은 충격을 받았지만 어린 시절의 장난으로 치부하며 잊고 지냈다.
소년은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어느날, 뉴스에서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 현장을 보며 자신이 죽인 검은 수면 위의 물고기들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의 두 화면에는 전혀 다른 바다 속 풍경이 ‘양립’하고 있다. 하나는 자신의 손길이 가져온 숨결에 율동하는 생명체, 다른 하나는 자신의 손길에 초래된 죽음의 쇠사슬에 갇힌 생명체였다. 김형준 작가의 작업은 이렇게 작가 개인의 유년기 기억과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환경오염이라는 사회적 이슈가 중첩돼 있다.

다행히 필자의 겨울바다 속 풍경은 언제나 그랬듯, 푸르고 깊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번에 접한 겨울바다에서는 김 작가의 쇠사슬로 변한 검푸른 물결이 생각났다. 인류의 악덕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뿐인 필자는, 아직은 생명력으로 가득 찬 그곳에서 외친다.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Verweile doch, du bist so schon)”
이재은 미술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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