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색하러 책다방을 찾는다
우리는 사색하러 책다방을 찾는다
  • 강서구 기자
  • 호수 29
  • 승인 2013.01.31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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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파트5] 북카페族 만나보니…
▲ 책을 읽으면서 여유를 즐기는 북카페족이 늘어나고 있다.

북카페족族이 뜬다. 갑갑하고 딱딱한 도서관을 피해 북카페에서 종이책을 읽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잠시나마 디지털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속도전戰에 젖어 있는 정신에 ‘여유’를 심기 위해서다. 그렇다. 북카페족은 그곳에 사색하러 간다.

6호선 상수역과 2호선 홍대역을 잇는 거리. 새롭게 떠오른 카페촌이다. 상수역 1번 출구 방향에서 홍대역으로 이어지는 각기 다른 골목엔 아기자기하고 이색적인 커피숍이 둥지를 틀고 있다. 일명 홍대 카페거리다. 일반 가정집을 개조한 곳도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홍대 공영 주차장에서 홍대 방향으로 100m만 걸어도 눈길을 끄는 카페가 10곳이 넘는다. 두 발자국 뗄 때마다 카페 하나가 있다는 얘기다. 그중엔 북카페도 있다. 스마트폰으로 북카페를 검색하면 홍대 카페거리엔 20여개의 크고 작은 북카페와 책다방이 나온다.

책과 함께하는 커피 한잔의 여유

북카페가 인기를 끈다는 건 책을 읽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 호기심이 발동했다. 과연 그럴까. 아메리카노 한잔 마시면서 수다를 떠는 다른 커피숍과 다를 게 없진 않을까. 1월 23일 오후, 홍대에서 꽤나 유명하다는 북카페 ‘카페콤마’에 들어갔다. 쉬어가라는 뜻 같다.

입구로 들어가자 2층 높이의 책장이 눈에 띈다. 15단짜리 책장엔 이동식 사다리가 걸쳐 있다. 카테고리별로 책이 정리돼 있어 원하는 책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언뜻 ‘작은 서재’ 쯤은 돼 보인다. 카페콤마 매니저는 “매장에 있는 책만 2500권이 넘는다”고 말했다. 카페를 둘러봤다. 복층구조인데, 2층에도 책이 있다. 테이블수는 25개 남짓. 평일 오후인데도 빈자리가 거의 없다. 특히 연인과 여성이 많이 보인다. 빈자리에 앉아 둘러봤다.
 

 

책은 많은데 책 읽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소설을 열심히 보고 있다. 뒷자리에 앉아 있는 연인은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지 자기계발서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에세이를 보면서 음악을 듣는 사람도 있다.

최으뜸 카페 콤마 대표는 “북카페에서 책을 읽기도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이들도 많다”며 “북카페는 이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생 일부는 다른 이유에서 북카페를 찾는다.

홍익대에 다닌다는 남민우씨는 “학교 도서관은 대부분 토익공부를 하거나 취업공부를 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책을 읽기가 불편하다”며 “한가하게 책을 읽기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게 있어 자유로운 분위기의 북카페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

2007년 한국사회엔 ‘인문학’ 열풍이 불었다. IT라는 전문영역에 ‘인문 DNA’를 심어 혁신에 성공한 스티브 잡스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학생은 인문서적을 읽지 않는다. 취업난 때문에 인문서적을 보면서 영감을 얻고 여유를 즐길 시간이 없다. 대학생의 팍팍한 삶이 읽힌다.

홍대에서 손꼽히는 ‘토끼의 지혜’라는 북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널찍한 카페콤마와 달리 단층구조로 아담하다. 1~2인용의 작은 테이블을 효율적으로 배치해서인지 깔끔해 보인다. 30개가 조금 넘는 각 테이블엔 콘센트가 있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충전용이다. 조명등까지 있다.

북카페 가면 1석3조 효과

 


대부분의 손님은 혼자였다. 최으뜸 대표의 말처럼 책을 읽으면서 사색하고 싶은 사람이 찾는 듯했다. 책장에는 신간서적·잡지·만화책 등 다양한 책이 진열돼 있다. 토끼의 지혜 북카페 매니저는 “혼자 와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손님이 대부분”이라며 “조용한 분위기를 제공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배치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포털사이트에서 토끼와 지혜를 검색하면 ‘공부카페’라는 말이 나온다.

스마트 시대가 열리면서 독서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손안의 PC’인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보면서 정보를 검색하느라 바쁜 탓이다. 그럼에도 북카페는 전성기를 맞고 있다.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고, 또 여유를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1석3조다. 힐링욕구가 작은 독서열풍을 부르고 있는 셈이다.
 
휴학생 곽정선씨는 “대형서점이나 학교 도서관은 답답하고 복잡하다”며 “요즘 북카페에는 다양한 책이 많아 굳이 서점이나 도서관을 찾지 않아도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어 종종 찾는다”고 말했다.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북카페도 생겼다. 서울 서교동 부근에는 유명 출판·인쇄 업체들이 밀집해 있다. 이들 출판사들이 홍대 카페거리의 인기에 힘입어 북카페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회사 건물 1층이나 회사에서 가까운 곳에 북카페를 내는 식이다.

출판사가 운영하는 북카페에는 해당 출판사가 발간한 책이 많이 진열돼 있다. 책 홍보와 동시에 수익을 올리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종이책 독서량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출판사에게 북카페는 작지만 새로운 수익원이다. 한 북카페 관계자는 “전자책 시대가 열리면서 종이책을 보는 사람이 부쩍 줄었다”며 “출판사들이 북카페의 외형은 예쁘고 고풍스럽지만 잘 보면 출판사의 애환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북카페에 살아 있는 인문학

그래서인지 북카페 역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북카페가 생긴지 길어야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후죽순으로 생겨나서다. 최근 전문·특수서적을 볼 수 있는 북카페가 생긴 것도 이런 이유다. 그래도 전문·특수서적은 보는 사람이 많지 않겠느냐는 계산에서다. 한 북카페 관계자는 “최근엔 예술·디자인 전문서적, 여행과 같은 특정 분야의 서적을 볼 수 있는 북카페가 많이 등장했다”며 “한때 블루오션으로 불렸던 북카페 역시 레드오션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카페 전성기는 금세 막을 내릴지 모른다. 책을 읽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도 문제다. 특히 북카페가 많이 생긴다고 독서인구가 늘어날 가능성도 크지 않아 보인다. 스마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은 살아남기 쉽지 않다. 하지만 다양한 방법을 통해 책을 찾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소식임에 틀림없다.

「원숭이와 개의 전쟁」을 완독하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북카페를 나서던 남성은 “북카페의 유행이 단순한 소비문화에 그치지 않고 책 읽는 문화가 다시 유행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종이책을 읽는 사람이 늘어나면 북카페의 전성기는 오래갈 거다. 그러면 감성이 살아나고, 창의적인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가 ‘종이책을 통해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듯 말이다. 북카페에 숨은 색다른 의미다.
강서구 기자 ksg@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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