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공기업 모럴 해저드

공기업의 도덕성이 끊임없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최근 감사원이 적발한 공기업 비리는 상식 이하의 수준이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지난해 7월 대규모 원자력발전 납품비리가 드러나면서 직원 22명과 납품업체 대표 등이 무더기로 구속됐다. 직원들은 친척 명의의 협력업체를 만들고 한수원의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낙찰받아 부당이득을 챙겼다. 입찰업체가 견적을 부풀리면 직원들은 돈을 받고 눈감아줬고, 뒷돈을 챙긴 감독관과 상사는 부하직원의 비리를 모른 척했다. 납품업체 주식을 거래해 시세차익을 챙기는가 하면 마약을 투여한 원전 소방대원까지 적발됐다. 공기업 비리의 종합선물세트였다. 오죽하면 한국가스공사가 2007년부터 2011년 LPG 공급가를 과다 산정해 201억원에 달하는 부당이득을 챙긴 사건이 한수원 비리에 가렸을 정도다.
수위 넘은 공기업 비리, 개혁 필요
한국관광공사의 자회사인 그랜드코리아레저(GKL•외국인 대상 카지노 사업)는 외국인에게 도박자금 32억원을 담보도 없이 빌려줬다가 떼이기도 했다. 담보규정은 물론 5800만원으로 제한된 최고 대출한도 규정을 어겼다.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비리의 온상이 된 것도 모자라 방만한 경영까지 일삼았다. 당기순이익은 갈수록 줄고 부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임직원들은 성과급과 상여금은 꼬박꼬박 챙겼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시스템 ‘알리오’에 공시된 자료에 의하면 2011년 28개 공기업 중 6곳을 제외한 21곳의 부채총계가 최대 35.7%까지 늘어났다. 반면 연도별 당기순이익이 늘어난 곳은 11곳에 불과했고, 17곳은 전년보다 줄어들었다. 하지만 28개 공기업 중 21곳에서 기관장 경영평가 성과급을 인상했다. 한수원과 한전 자회사는 기관장의 기타성과 상여금까지 인상해줬다. 18개 공기업은 직원의 경영평과 성과급을 전년보다 올렸고, 기타 성과 상여금을 챙긴 곳은 17곳에 달했다.

특히 한전은 지난해 9월 경영손실에 대한 책임을 물겠다며 같은 공기업인 전력거래소에 4조원 규모의 소송을 준비해 ‘돈만 밝히는 공기업’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한전은 또한 지난해 11월 나주•평동간 송전선로 건설사업이 지역민의 반대에 부딪혀 해결되지 않자 야밤에 개인주택에 침입해 날치기로 공사를 마무리하는 등 공기업인지조차 의심스러운 행태를 보였다.

이 교수는 ‘낙하산 문제’도 꼬집었다. 그는 “주인 없는 공기업에 낙하산 경영진이 오면 내부관리를 투명하게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전문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내부사정을 잘 모르는 임기만료형 CEO가 조직에 뿌리를 박고 있는 직원을 통제•관리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경영자와 종업원은 담합관계로 엮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낙하산 인사관행을 뿌리 뽑는 게 공기업 비리 척결의 첫걸음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공기업과 공공기관에 낙하산 인사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특히 MB정부가 들어서면서 낙하산 인사가 더 늘어났다. MB정부 임기 동안 공기업•공공기관 대표와 감사에 300여명이 넘는 낙하산 인사가 단행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례로 외국인에게 돈을 빌려줬다 떼인 GKL의 권오남 전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다. 이종상 한국토지공사 전 사장, 강경호 전 한국철도공사 사장, 허준영 전 사장, 이광균 코레일유통 대표도 낙하산 인사다.
전문성 갖춘 CEO만 임명해도 비리 줄어

이병훈 교수는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서는 ‘공기업은 주인 없는 기업이 아니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철저한 감시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전문적 소양을 갖춘 인물만 공기업 CEO에 앉혀도 비리는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시대 왕은 명망 있는 인재를 등용해 부정부패로 얼룩진 조정을 바로잡았다.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잡는 방법 역시 다르지 않다. 인사를 제대로 하면 답이 나온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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