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대한항공 전무가 막말 논란에 휩싸였다. 조 전무는 한진그룹의 인하대 사유화를 지적하는 인천지역 시민단체 관계자에게 “내가 조원태다. 개××야!!”라는 욕설을 퍼붰다. 그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남이자 차세대 리더다. 게다가 지금은 경제민주화 논의가 한창이다. 그는 철없는 황태자인가, 차세대 리더인가.

“경영에는 회사의 기본 원칙이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적정 가격에 인수하는 게 우리의 기본 원칙이다. 실사 과정을 통해 적정가를 내고, 입찰에 임할 생각이다.” 조원태 대한항공 전무는 10월 25일 대한항공 3분기 실적발표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추후 진행될 카이 입찰에 참여하겠다는 포부였다.
대한항공은 12월 17일 돌연 본입찰 불참을 선언했다. 대한항공은 보도자료를 통해 “카이를 적정 가격에 인수해 항공우주산업을 우리나라의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그러나 실사 결과 주가 수준이 적정하지 않다고 판단해 입찰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수가를 떨어뜨린 후 입찰에 나서겠다는 대한항공의 인수•합병(M&A) 전략으로 보인다. 한편에선 12월 16일 열린 대선 TV토론에서 유력 대선후보들이 카이의 민영화에 부정적인 뜻을 내비친 게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몸을 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경영인 말 한마디에 기업 운명 갈려

조 전무가 입찰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한항공은 행동을 달리 했다. 경영인의 말은 신뢰를 담보한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의미가 크다. 국내 대표 기업가이자 경영인으로 꼽히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약속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정 회장이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한번 말한 약속은 목숨보다 소중히 지켰다는 얘기는 재계에서 유명하다.
반대로 말 한마디를 잘못해 낭패를 본 경영인도 있다. 이윤재 피죤 회장은 2011년 10월 이은욱 피죤 전 사장을 청부請負 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10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깨끗한 경영인으로 정평이 나 있던 이윤재 회장이 평소 직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피죤의 기업이미지도 곤두박질쳤다.
경영인의 말 한마디가 기업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경영인의 말이 기업 성장을 이끄는 촉매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기업 쇠퇴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때문에 경영인은 항상 말을 조심하고,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질줄 알아야 한다.
한진그룹 차세대 리더로 꼽히는 조원태 전무는 언행관리에 아직은 미숙하고, 부족하다는 평을 받는다. 최근 조 전무는 말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12월 14일, 나올 엘 무타와켈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에 대한 학위 수여식과 사단법인 인하학원 이사회가 인하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열렸다.
이날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 3명은 피켓시위를 벌였다. 학교법인 한진학원 이사회에 참석하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한진학원 이사장), 조원태 전무(한진학원 이사)에게 인하학원과 한진정보통신간 거래내역과 인하대병원 내 조현민 대한항공 상무의 커피전문점 계약과 관련된 정보공개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조원태 전무와 연대와의 말다툼이 벌어졌다.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의 시위는 10시에 시작됐다. 조 회장은 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해 11시경에 인하대에 등장했고, 조 전무는 오후 2시 이사회에 맞춰 모습을 나타냈다. 연대는 조 전무가 등장하자 “조원태다! 인하학원과 한진정보통신 간 거래내역을 공개하라”고 외쳤다.
조 전무는 “내가 조원태다. 어쩔래? X새끼야!!”라고 소리쳤다. 조 전무는 이미 화가 나 흥분한 상태였다. 해외 인사를 초대한 상황에서 단 3명뿐이지만 시위를 피해 도서관 뒷문으로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한진그룹의 인하대 사유화와 불공정거래를 지적•비판하는 인천지역 시민단체와 인하대와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주변 대한항공 관계자들이 조 전무를 말리는 분위기가 연출됐고, 조 전무는 이사회에 참여하지 못하고 자신의 승용차로 되돌아갔다. 조 전무는 현장에 있는 기자가 말을 걸자 “할 말 없어. 새끼야”라며 승용차에 올라탔고, 인하대를 나섰다.
조양호 회장과 연대와의 언쟁도 있었다.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는 “왜 정보공개를 거부하느냐”며 “학교의 주인은 학생인데 왜 도서관 출입을 막냐”고 따졌다. 조 회장은 “학교의 주인은 이사장이다”며 “여기는 사립학교이고 사유지”라고 말했다.
그동안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는 “조원태 전무가 인하학원의 이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인하대가 자체 개발해 사용하던 인터넷행정망 시스템을 한진정보통신에게 넘겨 매월 거액의 이용료를 챙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조현민 상무 역시 인하대병원 1층에 커피숍을 운영, 임대료 등의 특혜를 받으며 병원에 손해를 끼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인하학원과 인천지역 시민단체가 서로 감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조원태 전무가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며 “하지만 시민단체가 먼저 감정을 상하게 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 조 전무가 폭언을 했을 리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는 “우리는 단 3명이서 피켓시위를 했을 뿐, 그 외에 어떤 것도 한 게 없다”며 “조원태 전무의 개인감정을 상하게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사장 승진 예상… 취임 후 그의 말은?

말은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말이 잘못되면 행동도 그렇다. 물론 말다툼을 하는 상황에서 폭언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선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특히 조원태 전무가 조양호 회장을 이어 미래 한진그룹을 이끌 것이라는 데에 이견을 달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의 말 한마디에 그룹의 미래가 좌우될 수 있는 상황이 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 전무는 번번이 사고를 쳤다. 70대 노인을 폭행해 구설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교통경찰을 치고 뺑소니치는 사건까지 일으켰다.
조 전무는 대한항공의 그룹 컨트롤타워 경영전략본부를 이끌고 있다. 회사 전반에 대한 기획과 투자 계획을 세우고, 주요 사업에 대한 방향을 결정하는 등 핵심역할을 하고 있다. 조 전무가 경영에 참여하는 계열사도 한진•한진정보통신•유니컨버스•한진드림익스프레스 등 여러 개다. 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인 정석기업의 지분 1.28%를 보유하고 있다.
조 전무는 2013년 초 임원인사에서 사장 승진이 예상되고 있다. 대한항공은 글로벌 불황을 보란듯이 뚫고 건실한 실적을 올렸다. 조 전무가 승진할 가능성은 그래서 크다. 조 전무는 한진그룹의 차세대 리더다. 하지만 사소한 것에 화를 내고, 자신조차 다스리지 못하는 그가 자산총액 37조4940억원, 계열사 45개의 재계 8위 한진그룹을 이끌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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