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의 지배체제는 독점자본주의체제다. 이것을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용어로 바꾸면 재벌체제다. 우리나라 재벌체제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수출재벌체제라고 말할 수 있다. 수출재벌이 정치ㆍ경제를 주도한다.
우리나라가 이런 체제가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자. 역대의 정치권력이 이 체제의 확대 재생산에 기여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달러시세를 떠받치기 위해 통화당국이 외환시장에 부단히 개입하는 것이다. 이른바 고환율정책이다. 수출재벌체제의 유지ㆍ확대를 위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천문학적인 양적완화(QE)로 가치가 절하된 달러의 원화시세를 떠받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수출재벌체제의 유지ㆍ발전을 위한 조치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연합(EU) 등 선진제국이 자국경제의 모순 해소를 위해 자국화폐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식의 경기부양책을 사용했다. 그러자 국내의 수출재벌체제의 확대 재생산에 위기가 왔다.
그러나 이는 국민경제 전체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통화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다. 지배체제인 수출재벌체제의 위기를 막아주기 위해 서민경제를 희생시키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환율 정책을 사용하는 나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 환율전쟁이다. 가치가 떨어진 달러의 원화시세를 통화당국이 떠받쳐 준다는 것은 수입물가 상승을 유도해서 내수시장을 위축시키거나 침체에 빠뜨린다.
물론 달러의 원화시세를 그 가치보다 높게 유지함으로써 수출재벌기업을 지원한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매달 400억 달러씩 무기한ㆍ무제한적 달러를 푸는 제3차양적완화(QE3)에 이어 내년 1월부터는 매월 450억 달러씩 돈을 더 풀기로 결정했다. 또 일본과 영국, 그리고 EU 등 기준금리가 사실상 제로(0)인 국가들도 다투어 종래의 Q E기조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각국의 이런 움직임은 QE가 자국의 경기부양을 위한 유일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세계경제의 대공황적 위기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지난 2008년 미국 FRB로부터 시작된 QE정책은 1, 2차까지 모두 2조3500억 달러의 천문학적인 돈을 미국 내에 풀었지만 지금까지는 금융시장의 버블만 잔뜩 키운 것으로 판명됐다.
실물경기의 부양에는 실패하고 있는 것이 명백한데도 또다시 경기부양이 정책수단으로 등장하고 있다. 다른 어떤 대안도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번 QE3 확대 조치는 현 8%대인 실업률이 6.5% 이상이고 물가상승률이 2.5%를 밑도는 한 무기한ㆍ무제한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히고 있다. 선진제국의 이런 QE가 우리나라의 국민경제와 무관하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달러 종속경제의 심각성
그러나 해외의존도가 100%를 넘는 통상국가로 변한 달러 종속경제에서는 결코 무관할 수 없다. 당장 환율부터 문제가 생기고 있다. 원화로 표시한 달러시세는 계속 내려오다 최근에는 드디어 1070원 선을 위협하게 됐다. 이 선을 뚫고 더 내려갈 조짐을 보이자 통화당국은 몇 차례 경고성 발언에 이어 최근 시장개입에 나서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QE정책이 갖고 있는 본질은 자국화폐의 가치절하를 통해 수출업체가 벌어들이는 외환의 시세를 높여 수출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자국의 수출 대기업에게는 유리하지만 내수업체와 서민경제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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