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라인 그룹지배 의혹 獨 쉰들러는 소송제기
비선라인 그룹지배 의혹 獨 쉰들러는 소송제기
  • 박용선 기자
  • 호수 22
  • 승인 2012.12.10 1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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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우외환 시달리는 현정은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내부에선 외부인물이 그룹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외부에선 독일 쉰들러그룹이 현대그룹 경영권을 노리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 2008년 중단된 금강산 관광은 재개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현 회장의 은둔은 길어지고 있다.

 
“그룹 전체를 컨트롤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취임 이후 그룹 안팎에서 끊임없이 제기된 문제다. 최근 이 문제가 더욱 불거지고 있다. 내부적으론 비선라인이 그룹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는 의혹이 일고, 외부적으론 독일 쉰들러그룹과의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현정은 회장은 2003년 현대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남편인 정몽헌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직후다. 평범한 주부에서 그룹 경영에 뛰어든 현 회장은 경영능력이 부족한 것은 물론 계열사 임원들을 통제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그를 지탱해준 힘의 원천은 친정. 특히 모친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다.

현대그룹 사실상 지배자는 외부인

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현 회장은 경험을 쌓으며 그룹을 키웠다. 현 회장 취임 1년 후인 2004년 그룹 매출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6조8400억원, 3300억원을 기록했다. 2007년엔 매출 8조3700억원, 당기순이익 4800억원으로 늘었다. 현 회장이 제시한 그룹의 새로운 4T 문화, 이른바 신뢰(Trust)•인재(Talent)•혼연일체(Togetherness)•불굴의 의지(Tenacity)도 서서히 녹아들었다.

이런 현 회장의 발목을 잡은 건 금강산 관광 중단(2008년 7월) 결정이었다. 현대아산이 진행하는 금강산 관광은 현 회장에게 사업 이상의 의미가 있다. 비중이 그룹 매출의 4~5% 밖에 되지 않지만 현 회장의 시아버지 정주영 창업회장과 남편 정몽헌 회장의 유지가 담겨있다.

▲ 지난해 방북길에 오른 현정은 회장(가운데). 그는 그룹 전체를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 회장은 2009년 방북,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는 등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재계에선 현 회장이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사업이 금강산 관광 등 대북사업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4년이 흐른 올해 현재 금강산 관광길은 여전히 막혀 있다.

또 다른 시련이 다가왔다. 2009년 벌어진 현대차와의 현대건설 인수전이었다. 현 회장의 시아주버니인 정몽구 회장은 정몽헌 회장의 친형이다. 현대건설 인수는 현 회장에겐 그룹 경영권과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였다. 현대건설이 현대그룹의 핵심 계열사 현대상선의 지분 8.3%를 보유하고 있어서다. 현대그룹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인수자금 출처 의혹이 터지면서 지위를 박탈당했다. 그 결과 현대건설은 현대차가 거머쥐었다.

현 회장은 이후 외부에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올 11월 현대아산 임직원들이 금강산 관광 14주년 행사를 위해 금강산을 방문할 때도 동행하지 않았다. 이때 황두연 ISMG코리아 대표가 등장한다. 그는 현대그룹 비선라인의 우두머리로 불린다. 현대증권 노조는 황 대표를 “현대그룹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라고 불렀다.

황 대표가 현대그룹에 등장한 시점은 2008년 초중반이다. 현 회장은 절친한 선후배 관계인 윤세영 SBS그룹 명예회장의 장녀 수연씨를 통해 황 대표를 만났다. 황 대표는 수연씨의 남편이다. 현대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현 회장이 경영상 어려움을 겪을 때 황 대표가 도와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후 사이가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 회장은 2009년 현대글로벌을 통해 황 대표의 회사인 ISMG코리아에 투자(지분 40%)까지 했다.

현 회장이 2003년 그룹 회장 취임 당시 경영진 대부분은 정몽헌 회장 라인이었다. 자신이 믿고 일을 맡길 사람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현 회장은 취임 이후 정몽헌 라인을 서서히 정리했고, 비선라인을 구축했다. 취임 초기에는 현 회장의 친인척 중 한 명이 경영에 상당 부분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외부인물인 황 대표도 이와 비슷한 경우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증권 노조 관계자는 “현대그룹 고위 임원 중 일부는 현정은 회장 취임 이후 비선라인이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경윤 현대증권 노조위원장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현대그룹은 현 회장이 직접 경영하는 체제가 아니라 현대그룹의 이사회 등 그룹과 관련이 없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실상 운영됐다”고 말했다. 그는 “황 대표를 비롯한 외부세력은 임직원의 인사권과 경영의사 결정권을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부분 재벌기업이 ‘오너-전문경영인’ 체제로 돌아가는 데 반해 현대그룹의 시스템은 ‘오너-외부인물-전문경영인’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11월 7일 노조가 밝힌 현대그룹 사장단 회의 내용을 보면 황 대표가 그룹 경영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이백훈 전무(현대그룹 전략기획 1본부장), 이남용 전무(현대그룹 전략기획 2본부장), 김현겸 상무(현대그룹 CFO), 윤경은 현대증권 사장(당시 부사장), 이계천 현대저축은행 사장, 강승태 현대자산운용 사장, 장폴혁 변호사(현대그룹 국제금융실장) 등이 참석했다.

이백훈 전무와 이남용 전무, 김현겸 상무는 현대그룹의 유상증자 계획과 자금운용 등에 관한 기밀사항을 황 대표에게 보고하고 업무지시를 받았다. 이계천 사장은 현대저축은행의 유상증자 입장을 황 대표에게 상세하게 보고했다. 황 대표는 현대상선의 선박펀드 참여 사업자를 최종 결정하고, 현대증권 노사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외부의 공격도 현 회장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독일 엘리베이터 제조업체 쉰들러그룹은 올 11월 13일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해 ‘위법행위유지 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 35.3%를 보유한 2대주주다. 지분 47.2%를 가진 현 회장측이 최대주주다. 쉰들러그룹이 소를 제기한 것은 2대주주로서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쉰들러 승소하면 현 회장 경영권 위험

▲ 2003년 취임 후 많은 시련을 겪었던 현정은 회장이 이번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소의 내용은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 보통주식에 관해 넥스젠 캐피탈•NH농협증권•대신증권•케이프 포춘 등 금융회사와 체결한 파생금융계약의 만기(2015년)를 연장하는 갱신계약을 체결 또는 유사한 내용의 파생금융계약 체결 금지 요청이다. 파생금융계약으로 현대엘리베이터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파생금융계약은 현 회장에겐 중요한 경영권 유지 수단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그룹 핵심 계열사(그룹 매출 70% 이상 차지)인 현대상선의 지분 27.7%(특수관계인 포함)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경영권을 노렸던 현대중공업 등 범현대가의 지분이 36.9%로 더 높다.

이 때문에 현대엘리베이터는 넥스젠 캐피탈•NH농협증권 등 5개 금융사와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상선 지분(17.1%)에 대한 파생금융계약을 맺고 우호지분을 확보했다. 그 대가로 현대엘리베이터는 5개 금융사에 현대상선 투자금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고, 현대상선 주가 변동에 따른 원금손실을 보전해주고 있다.

강성진 동양증권 연구원은 “쉰들러가 승소해 파생상품계약의 갱신이나 신규체결이 불가능해지면 현대엘리베이터와 우호주주의 관계가 약화될 것”이라며 “현대엘리베이터가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이 순차적으로 줄어들고, 장기적으로 현대상선은 인수•합병(M&A)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쉰들러그룹이 승소하면 현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방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 회장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은둔에 들어간 현 회장은 위기를 돌파할 카드가 있을까.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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