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치9단’은 생존력이 강하다. 그들은 어떤 아부가 먹히는지, 상사에게 ‘입안의 혀’가 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본능과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있다. 여기에 상사의 취향에 따라 팔색조처럼 시시각각 변신할 줄 안다. 다윈의 진화론에도 나오지 않는가. 강하거나 빠르지 않으면서도 다른 동물보다 오래 살아남은 종은 바로 환경에 적응한 동물이라고.
눈치9단 부하들이 밟는 한결같은 정례코스가 있다. 무엇보다 상사의 마음을 읽고 행보를 주시한다. 그리고 그의 결단에 영합해 상사의 마음에 성공적으로 진입한다. 이들은 “벌써 분부대로 해놨습니다”를 입에 달고 다닌다. 상사와 연결되는 모든 길도 자기가 통제해 정보를 독점배급한다. 그리고 물수제비를 뜨듯 상사에 관한 정보를 하나둘 퍼뜨리며 자신의 위세를 자랑한다. 상사를 ‘핫바지’로 만드는 것이다.
모 호텔의 K사장은 30대에 2대 사장에 올랐다. 나이 많은 부하와 어울리다가는 우습게 보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철저히 담을 쌓고 살았다. 얼굴을 보기 어려웠고 지시사항을 직접 내리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 부하들은 그의 생각이 어떤지 알 수 없어 항상 쩔쩔매고 어려워했다.
그가 유일하게 신임하는 사람은 J전무였다. 하루는 K사장이 호텔 로비의 그림을 바꿔 달겠다며 담당 직원에게 화랑에서 그림 한 점을 구입해 오라고 지시했다. 담당자는 야단이 났다. 어디서 사오라고만 했지, 어떤 작품을 사오라고 콕 찍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J전무가 지원을 자청하며 그림을 구입해왔다. 역시나 사장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의 작전은 이랬다. 화랑에 가서 “저희 사장님이 어느 그림 앞에 가장 오래 머물렀습니까”라고 물어본 것. 직원들은 “역시 전무님은 사장님의 복심을 읽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감탄하며 사장에게 밉보이지 않으려면 J전무를 통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조직의 완충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세심한 관찰력과 뛰어난 통찰력으로 상사의 모호한 지시사항에 대해 적절히 통역하면 상사도 좋고 부하도 좋다. 하지만 빛에는 그늘이 있는 법. 어느 순간 상사의 통제를 벗어나 역할 이상의 권력을 휘두르려 한다. 그들은 상사의 신임을 활용해 널리 이롭게 하기보다는 상사로 향하는 모든 길목을 가로막고 문지기 역할을 한다.
J전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K사장의 자천타천 문지기였다. “사장이라고 그걸 몰라서 안 하겠나. 순진하긴. 인간은 마흔이 넘으면 고치기 힘들어. 괜히 말해봤자 자네만 찍혀. 정 애매하면 일단 먼저 내게 이야기해 봐”라며 아랫선의 보고사항에 대한 사전검열도 서슴지 않았다. K사장의 귀에 나쁜 뉴스나 건의사항이 올라갈 리 없었다. K사장에게는 조직의 모든 게 술술 풀리는 것으로 보였다.
이처럼 입안의 혀 같은 부하는 편안하다. 하지만 이들이 조직에서 활개를 친다면 그것은 그들을 방임하고 수용한 상사의 책임이다. 눈치9단 아부 부하를 멀리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우선 상사인 당신부터 바로 서는 것이다. 축축한 습지에서 이끼가 자라듯 간신은 폐쇄적이고 말이나 태도가 모호한 상사 주변에 창궐한다. 병풍 뒤에 숨어 부하들을 리모컨으로 원격조종하려 하지 마라. ‘입안의 혀’를 ‘입안의 가시’로 여기고 아첨에 헤벌쭉 정신 놓지 마라.
아울러 명확하고 개방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공개적인 의사결정은 추후 누가 판단하든 어떤 상황에서든 일관된 결정을 내리게끔 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메시지를 분명하게 하라. 암호만 던져놓고는 알아서 해석하게 하지 말라는 얘기다. 모호하게 말하지 마라. 대충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라는 무리한 주문으로 부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라. 찰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까 말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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