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제漢武帝 유철劉徹은 인재를 구하고자 천하에 포고령을 내린다. ‘나朕와 함께할 현량賢良을 천거하라.’ 그러자 시골에도 황제로부터 칙서가 당도했다. 무제 원년(B.C 104년)에 공손홍이 있던 제나라 땅에도 황제가 보낸 파발이 도착했다.
공손홍은 많은 나이에도 ‘학문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추천을 받는다. 공손홍은 황제가 있는 장안의 조정으로 입궐했다. 생애 처음, ‘박사博士’에 임명됐다. ‘박사’란 황제를 모시는 학술 연구역이나 정책 자문역을 담당하는 벼슬이다. 바닷가에서 돼지를 키우고 소일하던 공손홍으로서는 엄청난 행운이 찾아온 셈이다. 출세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바람으로 끝났다. 아직 ‘최고의 때’가 다가오지 않아서다. 이를 어쩌랴. 이미 예순의 나이인데 어쩌란 말인가. 사연은 이렇다. 공손홍이 첫 임무를 받는다. 흉노족에게 사자로 다녀온 내용을 정리해 황제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무제가 공손홍의 보고서를 탐탁지 않게 여긴 것이다. 졸지에 공손홍은 ‘무능한 관리’로 분류돼 조정에 찍히고 만다.
황제 부름 다시 받은 준비된 인재
첫인상이 이렇게 되면 제 아무리 나중에 잘 하더라도 차후에 인사 평가는 뻔하다. 뭐든 불이익이 돼 감점으로 작용하게 마련이다. 공손홍은 아쉽지만 사표를 쓰기로 결정한다. 마음이 편치 않아서다. 이 상태로 장기근속을 바라는 것 보다는 차라리 속 편하게 돼지를 키우는 게 낫다는 계산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학문과 수양이 많이 부족함을 인정한 계기가 됐다. 결국 그는 병을 핑계로 사표를 쓰고 다시 고향이 있는 바닷가로 돌아갔다. 사마천은 이렇게 적고 있다.
건원建元 원년에 천자(효무제)가 막 즉위해 현량賢良의 선비와 문학文學의 선비를 불러들였다. 이때 공손홍의 나이가 예순이었으나 초빙되어 현량으로 박사博士에 임명됐다.
그러나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 돌아와 보고한 것이 천자의 마음에 들지 않았으므로 천자는 그를 무능하다며 노여워했다. 그래서 그는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 「사기열전2」 민음사
현량과 문학이란 한나라 때 관리를 선발하는 과목의 하나다. 당시 유생들은 이 제도를 통해 벼슬길에 올랐다고 전한다. 세월은 유수와 같아서, 다시 10년이 흘렀다. 이번에도 지방 장관에게 인재를 천거하라는 파발마가 도착한다. 어쩐지 제齊에는 ‘준비가 된 인재’가 그리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칠십이 된 다 늙은 공손홍이 다시 추천을 받았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황제가 명령한 대로 무조건 머릿수를 맞춰 놔야 했다.
공손홍은 다시 행장을 꾸려 고향을 떠났다. 처음과는 약간 달랐다. 이번에는 욕심이 가득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발걸음도 가벼웠다. 잘못되면 다시 돌아와 돼지 치고, 공부하면 된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다음호에 계속>
심상훈 ylmfa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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