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주 비웃는 꼼수 은행권은 나 몰라라
예금주 비웃는 꼼수 은행권은 나 몰라라
  • 심하용 기자
  • 호수 19
  • 승인 2012.11.20 09: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이스피싱, 은행 면책 “왜”

▲ 금융감독원은 11월 12일 보이스피싱 피해와 관련된 보상 기준을 은행이 마련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률 검토에 착수했다. 사진은 올해 3월 검거된 보이스피싱 조직 검거 당시 압수한 증거물.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법망을 비웃듯 수법까지 교묘해지고 있어, 피해사례는 더욱 많아질 전망이다. 하지만 은행권은 피해책임을 전적으로 고객에게 전가하고 있다. 자신들이 잘못한 게 아니라는 거다. 이런 은행에 대한 민원이 빗발치자 금융당국이 칼을 빼들었다.

직장인 김태형(30 ·가명)씨는 올해 7월 거래은행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개인정보가 유출됐으니 홈페이지에 접속해 확인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문자에 링크된 URL로 접속해 개인정보와 계좌번호, 보안카드 일련번호 등을 모두 입력했다. 30분 후 김씨의 통장은 잔고가 텅 비었다. 김씨가 접속한 홈페이지는 은행의 실제 공식 홈페이지와 똑같이 제작된 가짜였다. 은행의 본인확인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그는 즉각 은행 측에 항의했지만 돌아온 것은 빈 통장과 공허한 메아리뿐이었다.

 
‘보이스피싱 피해에 대해 은행권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민원이 속출하자 금융당국이 대책마련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11월 12일 보이스피싱 피해와 관련한 보상기준을 은행이 마련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률검토에 착수했다. 피해자의 과실 정도와 은행의 책임 소재를 따져 은행이 피해금을 보상할 수 있는 사례를 구분해 은행권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아직 법률적 검토단계인데다 피해사례가 워낙 다양해 일반적인 기준을 만들기 쉽지 않아서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수법이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다양해지다 보니 검토만으로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며 “최대한 피해자 입장에서 합리적인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감원이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는 건당 수천만원에 이르는 보이스피싱 피해가 잇따르고 있음에도 정작 은행권은 모른 척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카드론 보이스피싱’이 극성을 부리자 카드사들은 본인확인 의무를 강화하고 피해금의 40~50%를 보상했다. 반면 은행은 카드사와 달리 자율적인 보상 움직임이 전혀 없다. 카드사와 은행의 보이스피싱 수법이 거의 비슷한데도 은행 고객들만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들은 사기범에 속은 피해자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부분을 은행에게 전가해선 안 된다며 맞서고 있다. 은행권 공동으로 적용하는 ‘전자금융거래 기본약관’의 면책조항에 따라 피해자의 과실로 입증되면 보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들도 개별적 사안에 따라 피해를 보상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하지만 일률적인 보상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전자금융거래 기본약관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약관 자체가 은행에 유리하다고 반박한다. 면책조항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은행이 책임을 피하기 쉽다는 얘기다. 백성진 금융소비자협회 사무국장은 “범죄자의 기망으로 개인정보를 유출한 것을 전적으로 피해자 과실이라고 못박고 있는 현행 약관이 문제”라며 “상위법인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을 하지 않고 약관을 고치는 것만으로도 많은 피해자가 구제받을 수 있는 만큼 서둘러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권과 피해자의 주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만큼 금융당국의 합리적인 기준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심하용 기자 stone@thescoop.co.kr | @itvfm.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경인로 775 에이스하이테크시티 1동 12층 1202호
  • 대표전화 : 02-2285-6101
  • 팩스 : 02-2285-6102
  • 법인명 : 주식회사 더스쿠프
  • 제호 : 더스쿠프
  • 장기간행물·등록번호 : 서울 아 02110 / 서울 다 10587
  • 등록일 : 2012-05-09 / 2012-05-08
  • 발행일 : 2012-07-06
  • 발행인·대표이사 : 이남석
  • 편집인 : 양재찬
  • 편집장 : 이윤찬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병중
  • Copyright © 2025 더스쿠프.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thescoop.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