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대희 性 칼럼]

사학자들은 남자는 전부 죽이고, 그들의 배필이며 자식인 여자들을 빼앗는 야만적 행위의 배경에는 빈곤이라는 문제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 빈곤과 기아가 극심해지면 인구가 자연히 감소한다. 줄어드는 인구를 늘려 더 큰 국가로 성장하기 위해선 전쟁만큼 좋은 전략이 없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인접국가의 여자를 노략질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인구를 늘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은 국가 성장책
이런 군사적 방법으로 국력을 키운 국가는 독일이었다. 독일처럼 추운 지방에선 곡식이 제대로 자라지 않으면 기근이 도래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국가가 조달해야 할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진다.
독일은 북방의 이교도異敎徒들에게 기독교를 포교한다는 명분을 세우고, 군사를 파견했으나 사실은 번식용 여자 사냥이 목적이었다. 그들이 전리품으로 약탈한 것은 점령지의 여자와 소아들이었다. 여자는 종족 번식을 위해서, 그리고 소년들은 노동력 조달에 혹사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중국을 참고로 하면 이해가 한결 쉬워진다. 중국은 전쟁으로 적군을 죽이고 빼앗는 것은 식량과 기타 전략물자, 다음 순서가 여자였다. 예를 들면 12세기 금金 왕조의 황제 완안량完顔亮은 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 이른바 그의 인생목표라는 것인데,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천하에 있는 모든 국가의 일은 전부 내가 결정한다. 둘째 군대를 이끌고 적국에 쳐들어가서 그 군주를 사로잡는 것이다. 셋째는 절세의 미녀를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실제로 완안량은 쿠데타를 통해서 일국의 황제가 된 후 황족의 남자를 모두 살해하고 그들의 여자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요즘의 미스코리아 를 선발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민간에서 1차 선발한 미녀들을 카펫 위에 눕혀두고 여기저기 툭툭 건드릴 때 생기는 고통으로 버둥거리는 것을 즐기면서 여인의 치부를 들여다봤다. 이런 방식으로 가학적 쾌감을 즐겼던 변태성욕의 황제들이 중국의 역사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자기가 연모하는 여성을 품으로 데려오기 위해 전쟁이란 수단을 이용했던 위인도 있었다. 명明나라 장수 오삼규吳三桂는 자기가 반한 명기名妓 진원원陳圓原이, 베이징으로 잠입한 만주족의 이자성李自成 반란군에게 잡혀갔다는 소문을 듣고 분개해 만주족의 통치구역으로 진격했다. 이 사소한 일이 다음에 중국대륙을 청淸나라에 내주는 결정적 패착이 됐다. 다시 말하면 이 하찮은 사건이 만주족滿洲族이 중국을 지배하는 시초가 됐다는 뜻이다.
여자 얻으려 대군 일으켜
프랑스에서는 왕비 마르고의 남편으로, 후에 프랑스 왕이 된 앙리 4세가 역시 한 사람의 여성 때문에 전쟁을 일으켰다. 욕심나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심통이 터지는 성격의 그는 부하인 왕족의 부인을 품었으면 하는 과욕을 부렸다. 왕이 원하면 부하는 자기 아내라도 진상하는 것이 사회의 율법이었는데 그 부하는 왕명을 거역하고 인접 국가로 도망쳤다.
“남의 아내를 탐하다니 절대로 안 될 말이다. 부부가 함께 도망치자”고 말하고, 벨기에를 향해서 야반도주를 감행했다. 진노한 앙리 4세가 전쟁을 선포하고 벨기에로 대군을 몰고 간 것은 물론이다.
곽대희 곽대희비뇨기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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