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구두명가 핸드백을 메다
전통의 구두명가 핸드백을 메다
  • 김건희 기자
  • 호수 18
  • 승인 2012.11.15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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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ㆍ에스콰이아의 팔색조 변신

▲ 구두 명가 금강과 에스콰이아가 핸드백을 들었다. 살롱화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던 위기를 탈피하기 위해서다. 핸드백 사업으로 부활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을지 패션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살롱화(디자이너가 맞춤 제작한 신발)’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금강제화(현 금강)와 에스콰이아가 ‘핸드백’을 들었다. 위기를 ‘핸드백 사업’으로 탈출하겠다는 전략이다. 시장 반응은 엇갈린다. 핸드백으로 부활의 초석을 마련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 반면 낯선 핸드백으로 승부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도 나온다.

구두 명가名家 금강(옛 금강제화)의 스펙은 화려하다. 국내 최초로 제화시장을 개척한 기업이다. 동시에 구두의 기성화를 선도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제화製靴품목의 절대강자로 군림했다.

부동의 1위 비결은 단순했다. 제품디자인이 좋고 기술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오래 신어도 형태가 변하지 않는 ‘원형 유지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편한 신발’ 금강제화는 소비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제화시장 2위는 이에프씨의 에스콰이아 자리였다. [※ 독자 편의를 위해 이에프씨의 에스콰이아는 에스콰이아로 통일한다.] 에스콰이아는 착화감에 승부를 걸었다. 초경량 소재를 사용해 구두의 무게를 줄였다. 하부에 충격이 덜 가도록 쿠션을 깔았다. 발이 편한 신발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에스콰이아가 금강에 이어 업계 2위 자리를 고수할 수 있었던 이유다.

두 업체의 위상이 흔들린 건 2009년부터다. 금강은 ‘롯데백화점 2009년 상반기 구두 브랜드 매출 순위’에서 살롱화(디자이너가 맞춤 제작한 신발)를 만든 제화업체 탠디의 ‘탠디’에 1위를 내줬다. 2위를 굳건히 지켜왔던 에스콰이아는 4위로 하락했다. 대신 패션그룹 DFD의 ‘소다’가 3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해 상반기 탠디는 신세계백화점에서도 금강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한때 제화시장을 장악했던 브랜드의 침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금강은 거듭된 매출 부진으로 2009년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서 퇴출당했다. 에스콰이아는 2009년 6월 ‘제화의 거리’ 명동에서 매장을 철수했다. 실적부진으로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탓이었다. 실제로 에스콰이아의 매출은 2004년 1743억원에서 2009년 1200억원으로 25%가량 떨어졌다. 경영난을 견디지 못한 에스콰이아의 경영권은 2010년 외국계 사모펀드인 H&Q 아시아퍼시픽코리아로 넘어갔다.

 
제화시장의 지각변동은 살롱화의 약진 때문이다. 탠디와 소다는 소비자의 니즈를 고려한 다양한 상품구성으로 승부를 걸었고, 시장에서 통했다. 이런 살롱화 브랜드가 인기를 끈 이유는 간단하다.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에서 탈피해 최신 트렌드를 반영했다. 과감한 컬러와 장식을 구두에 접목해 20~30대 소비자를 끌어들였다. 맞춤 서비스와 무상 AS 등 소비자 지향적인 전략도 인기를 끄는 데 한몫했다.

반면 기존 기성화 브랜드는 트렌드와 소비자의 니즈를 읽지 못했다. 살롱화가 고객의 요구조건을 수용한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여기에 수입브랜드의 역공이 시작되면서 기성화 브랜드의 입지가 좁아졌다. 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시장에 본격적으로 침투한 수입브랜드는 롯데ㆍ현대ㆍ신세계백화점에서 구두 매출 60~70%를 차지했다.

기성화 브랜드가 침체한 이유는 또 있었다. 상품권 중심의 영업방식이었다. 기성화 브랜드는 사실 상품권이라는 무기에 기대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상품권이 남발되면서 기성화 제조업체의 현금유동성이 악화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품권 할인율은 기성화 브랜드의 발목을 잡았다. 백화점이나 대형 유통업체 상품권은 5% 미만의 할인율에 판매되지만 출혈경쟁이 심한 제화상품권은 30%나 할인됐다.

핸드백 들고 돌파구 찾아
상황이 심상치 않자 기성화 브랜드는 체질개선에 나섰다. 시장에서 더 이상 밀려서는 안 된다는 우려감의 발로였다. 금강은 팀버랜드ㆍ쳐치스ㆍ클락스ㆍ브루노말리 등 해외 브랜드를 들여왔다. 젊은이가 좋아할 만한 운동화를 모아 판매하는 멀티숍 ‘스프리스’와 ‘레스모아’를 개장했다.

2010년 2월에는 이탈리아 브루노말리 핸드백 사업에도 진출했다. 컬렉션(수집) 형태로 진화하는 패션계 흐름을 반영한 조치다. 백화점 입점 매장보다 가두점이 많은 금강은 상권과 시장반응을 분석하면서 점진적으로 핸드백을 숍인숍 형태로 납품했다. 금강의 신사업 ‘운동화 부문’은 다행히 성과를 냈다. 레스모아는 2008년 매출 450억원에서 2010년 56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에스콰이아도 변신을 꾀했다. 먼저 몸집을 줄였다. 2010년 13개에 달했던 브랜드를 8개로 줄였다. 그 결과 2009년 1200억원으로 줄었던 매출이 2010년 1516억원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두 업체의 변신은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소비자가 지갑을 열지 않으면서 구두 관련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화시장은 갈수록 위축됐고, 두 업체의 부활 프로젝트는 진통을 겪었다.

금강과 에스콰이아는 고심을 거듭했다.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서였다. 오랜 고심 끝에 그들은 돌파구를 찾았다. 핸드백 사업이었다.

▲ 금강은 패션성을 강조하기 위해 브랜드명을 '금강핸드백'에서 '브루노말리'로 변경했다.
금강은 ‘금강핸드백’에서 ‘브루노말리로’ 브랜드명을 변경했다. 패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핸드백 사업을 이끌 담당부서도 신설했다. 디자인ㆍ상권기획ㆍ유통담당자를 영입했다. 아울러 LG패션 출신의 남기흥 전무를 사업본부장으로 세워 패션사업을 맡겼다. 김윤오 금강 과장은 “핸드백 사업은 가두점 단독매장에 숍인숍을 마련해서 브루노말리를 납품할 것”이라면서도 “서두르지 않고 점진적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에스콰이아는 금강보다 적극적이다. 이미지 변신을 위해서였다. 올해부터 핸드백 사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8월 스타일 사업본부를 신설한 것이 핸드백 사업의 첫 걸음이다. 제화사업본부에 소속됐던 컬렉션 사업부를 분리해서 스타일 사업본부로 만들었다.

금강과 마찬가지로 외부 인사 영입에도 공을 들였다. 패션기업 성창인터패션 출신의 오미순 부장을 끌어들였다. 오 부장은 에스콰이아 핸드백 브랜드 소노비•에스콰이아•에이드레스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구두 명가의 변신 성공할까
업계 사람들은 구두업체의 핸드백 사업 진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생각보다 품질과 콘셉트가 괜찮다는 이유에서다. 금강의 브루노말리 가죽은 색상과 질감이 다양하다.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제품의 범위가 그만큼 넓다. 가격 경쟁력도 있다. 금강은 브루노말리 가격을 60만원대로 산정했다. 품질이 비슷한 코오롱의 핸드백 브랜드 ‘쿠론’ 보다 25%가량 싸다. 쿠론의 가격은 80만원대다.

 
에스콰이아는 유통구조를 바꿔 시장에 진입할 계획이다. 컬렉션 형태의 가두점 단독매장이 승부 포인트다. 백화점 입점보다 길거리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이다. 상품권도 이젠 받지 않기로 했다. 상품권에 의존했다가 현금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한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다.

긍정적인 반응만큼이나 우려 섞인 시각도 많다. 50여년 넘게 구두를 만든 제화업체가 가방을 만드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구두와 핸드백의 제작 시스템은 완전히 다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낯선 핸드백 사업에 주력하다보면 되레 구두사업이 정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자칫 전체사업에 과부하가 걸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명가 기성화 브랜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옛 명성을 회복하고자 핸드백을 든 구두명가의 변신은 성공할 수 있을까.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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