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가 기업을 분할할 땐 다 계획이 있다
오너가 기업을 분할할 땐 다 계획이 있다
  • 김정덕 기자
  • 호수 431
  • 승인 2021.03.08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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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위해 탄생했지만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악용
1998년의 우려가 현실로…

기업이 분할을 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논란이 있다. 누굴 위한 분할이냐는 거다. 해당 기업의 경영진은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쉽게 말해 일반주주들을 위한 분할이란 얘기다. 하지만 분할을 통해 가장 득을 보는 세력은 늘 최대주주(오너 일가)란 반론도 만만찮다. 왜 이런 논란이 끊이질 않을까. 기업분할 방식을 이대로 둬도 괜찮은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기업분할에 숨은 전략과 속셈을 취재했다. 

기업분할은 최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2월 결정된 대림산업의 기업분할도 최대주주의 지배력 강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분석이 많다.[사진=뉴시스]
기업분할은 최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2월 결정된 대림산업의 기업분할도 최대주주의 지배력 강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분석이 많다.[사진=뉴시스]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다.” 상장기업의 경영진이 인적분할이든 물적분할이든 기업의 분할을 결정할 때면 빠지지 않고 내놓는 명분이다. 최근 배터리 사업을 물적분할한 LG화학도, 지난해 물적분할과 인적분할을 동시다발로 진행한 DL(옛 대림산업)도 분할의 명분은 ‘기업가치 제고’였다. 

기업 경영진이 이런 명분을 내거는 이유는 분명하다. 주식회사의 주인이 주주이기 때문이다. 경영진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면서 주주들에게 “당신들을 위한 결정”이라고 말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기업분할이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다. 

애초부터 기업분할제도는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했다. 국내에 기업분할제도가 도입된 건 외환위기가 터진 이듬해인 1998년 12월 상법이 개정되면서다.[※참고 : 기업분할제도가 도입되기 전의 ‘분사分社’는 기존 기업이 자본을 출연해서 사업체를 떼어내는 방식이었다. 상법 개정과 동시에 지주회사 설립 요건을 완화하는 공정거래법도 개정됐는데, 이로 인해 기업분할제도는 애초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 그 과정은 뒤에서 설명한다.] 

당시 기업들의 가장 큰 숙제는 부실사업을 떼어내는 구조조정이었다. 하지만 법적 근거가 없었다. 그래서 재계는 기업분할제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1998년 3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30대 그룹 구조조정 담당 실무자를 대상으로 ‘구조조정 애로요인’을 조사해 발표한 내용을 보자. “30대 그룹의 구조조정 핵심과제는 한계사업 정리였다. 하지만 제도적 장치의 미비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주회사 설립 허용, 기업분할제도 도입 등이 필요하다.” 

상장기업의 권익을 대변하는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2011년 발표한 기업의 합병·분할 관련 보고서에도 비슷한 설명이 등장한다. “1997년 IMF 체제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은 부실요인을 제거하고,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구조조정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기업의 구조조정을 돕기 위해 상법을 개정, 기업분할제도를 도입했다.” 부실사업 정리를 위한 법적 근거가 바로 기업분할제도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업분할은 모든 주주에게 호재로 작용하지 않았다. 기업분할을 통해 이득을 얻는 주체가 ‘특정한 주주(최대주주)’라는 문제점도 대두됐다.[※참고: 상장기업의 최대주주는 오너 일가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반투자자들의 지분율을 모두 합치면 최대주주의 지분율을 훌쩍 뛰어넘는 게 일반적이다. 이를 감안할 때 분할을 통해 최대주주만 득을 본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부실사업을 정리하기 위해 도입한 기업분할제도가 원래의 취지와는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어서다. 바로 최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다. 정우철 바른투자자문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기업이 분할하는 첫째 이유는 최대주주의 지배력 강화에 있다. 분할을 통해 최대주주의 지배력이 낮아진 곳이 단 한군데도 없다는 게 그 증거다.”

구조조정이 아닌 지배력 강화 수단

오너 일가가 기업 분할을 통해 부실사업을 정리하기보단 알짜사업에서의 지배력을 높였고, 그 결과 주주가치가 훼손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졌다는 거다.[※참고 : 아래 나오는 분할의 방법은 이해하는 게 쉽지 않다. 용어설명에서 간단하게 설명했다.] 

최근 배터리 사업을 물적분할한 LG화학의 예를 들어보자. LG화학은 부실사업이 아닌 알짜사업을 분할했다. 알짜사업을 받은(분할) LG에너지솔루션은 LG화학이 100%의 지분을 갖고 있지만, 배터리 사업부문에 대한 일반주주들의 지배력이 확실히 줄었다. 

인적분할과 물적분할을 동시에 단행한 DL그룹은 어떨까. 여기선 대림산업을 건설과 화학으로 쪼갠 게 핵심인데, 이 역시 부실사업 정리는 아니다. 또한 DL그룹은 건설부문을 중간지주사(DL)와 사업회사(DL이앤씨)로 인적분할했는데, 지난해 하반기 기업분할을 결정하면서 내놓은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DL의 주식을 DL이앤씨와 교환해 궁극적으로 DL이앤씨의 지배력을 높일 계획을 갖고 추진 중이다. 

최근 분할 얘기가 솔솔 나오는 SK텔레콤 역시 다르지 않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실제로 분할 작업이 진행된다면 알짜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런 일이 대기업에서만 발생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난 2014년 한 중견기업의 창업주는 소액주주와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패소한 후, 자신의 지분을 외국계 기업에 전량 매각했다. 그러자 1%의 지분도 없던 전문경영인이 기업분할과 합병을 통해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 회사의 현재 시가총액은 수조원에 달한다. 분할과 합병을 통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얘기다. 

이처럼 분할의 목적이 다른 데 있다면 기업의 내부 사정을 모르는 일반주주의 이해는 철저히 배제될 수밖에 없다. 분할의 비율부터 최대주주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해질 게 뻔해서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이 논란이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점은 기업분할제도가 그 자체만으로 최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해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한가지 장치가 더 필요하다. 지주회사 설립이다. 지주회사 설립은 1998년 상법 개정과 동시에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허용됐다. 

IMF 외환위기 이후 상법 개정으로 기업분할제도가 도입되고,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지주회사 설립이 허용될 때 시민단체들은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사진=연합뉴스]
IMF 외환위기 이후 상법 개정으로 기업분할제도가 도입되고,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지주회사 설립이 허용될 때 시민단체들은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사진=연합뉴스]

인적분할로 최대주주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과정을 간단하게 예로 들어보자. 먼저 오너의 지분이 많은 기업을 지주사로 만든다. 사업회사를 다시 중간지주사와 사업회사로 나눈다. 중간지주사의 주식을 사업회사와 교환해 사업회사에 대한 중간지주사의 지분율을 높인다. 중간지주사를 원래의 지주사와 합친다. 그러면 최대주주는 원래 지주사를 통해 사업회사의 지분율을 높이게 된다.

1998년의 우려, 현실로…

결국 지금의 기업분할제도는 지주회사 설립 허용과 함께 방향성을 잃은 셈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정부나 정치권이 과연 예상하지 못했을까. 그렇지 않다. 경제개혁연대와 경실련 등은 상법과 공정거래법이 개정을 앞둔 1998년 8월 이렇게 주장했다.

“재벌기업의 구조조정은 순환출자, 상호지급보증, 계열사간 내부거래로 한덩어리가 된 재벌기업들을 분리해 비효율적인 계열사는 퇴출하고, 남은 기업은 경쟁력 있는 독립된 대기업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순수지주회사가 허용되면 비효율적인 재벌기업의 퇴출이나 독립경영체제의 도입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재벌총수의 경영권 세습을 손쉽게 해서 족벌경영체제를 영구화할 수 있게 된다.” 

우려가 현실이 된 지금, 기업분할제도와 지주회사 설립 허용(설립 요건은 강화될 예정이지만)을 이대로 둬도 괜찮을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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