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키트 덕에 수출액 껑충
R&D는 글로벌 평균의 절반
자! 난해한 질문 하나. ‘의약품 시장이 클까 반도체 시장이 클까’. 답은 흥미롭다. 의약품 시장이 3배가량 크다. 정부든 민간이든 바이오산업을 육성하는 데 ‘큰돈’을 베팅하는 이유다. 문제는 바이오산업의 성과가 해마다 기대치를 밑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올해 또다시 ‘바이오원년’이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올해는 기대해봐도 좋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바이오원년에 숨겨진 문제점을 냉정하게 취재했다.
![바이오는 비메모리 반도체, 미래차와 함께 정부의 3대 중점 육성산업으로 꼽힌다.[사진=뉴시스]](/news/photo/202103/42720_61492_490.jpg)
“바이오산업이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는 빅3(바이오ㆍ비메모리 반도체ㆍ미래차) 산업으로서의 위상을 다졌다. 2021년을 바이오산업이 한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로 만들겠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1월 29일 열린 ‘2021 바이오업계 신년 인사회’에 전달한 메시지다.
그보다 조금 앞선 8일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바이오산업 육성 의지를 불태웠다. “올해는 빅3의 세계 경쟁력 확보를 위한 원년이 될 것이다. 모든 정책적 역량을 집중해 빅3를 적극 육성하겠다.”
바이오강국은 문재인 정부의 오랜 과제다. 2017년 100대 국정과제의 미래형 신산업에 제약바이오산업을 포함했고, 2018년엔 혁신성장을 이끌 8대 선도산업 중 하나로 선정했다. 이듬해엔 3대 중점 육성산업으로 비메모리 반도체, 미래차와 함께 바이오를 꼽았다. 정부가 바이오산업을 향한 기대와 육성 의지를 내비친 것 역시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바이오원년이라는 수식어도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바이오붐이 몰아쳤던 2000년대 초부터 기술수출 신화가 시작된 2010년대 중반까지 정부나 공공기관 관계자들은 툭하면 바이오원년을 선언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2005년을 바이오신약 개발 원년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8년을 바이오경제 혁신의 원년으로 삼았다.
“이제 막 태동기를 지나고 있는 국내 바이오산업에 성급한 성과를 기대하는 건 금물”이라는 전문가들의 냉정한 평가가 쏟아졌지만 정부는 여전히 바이오산업을 향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사실 그럴 만한 이유도 있다. 최근 바이오산업이 맺은 알찬 열매 때문이다. 지난해 바이오산업은 코로나19 국면에서도 141억 달러의 수출실적을 거뒀다(산업통상자원부 바이오헬스 품목 기준). 전년 대비 무려 54.9% 증가한 액수다. 바이오헬스 품목의 수출액이 100억 달러를 넘어선 것도 사상 최초다. 그와 동시에 수출 실적 순위가 12위에서 10위로 뛰어오르며 10대 수출 품목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참고 : 바이오헬스 품목엔 의약품ㆍ의료기기ㆍ헬스케어 등 품목이 포함돼 있다.]

그 때문인지 시장에서도 “올해는 뭔가 다르다”는 기대가 흘러나오고 있다. 헛물만 켰던 이전과 달리 올해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을 거란 장밋빛 전망에서다. 정말 그럴까. 바이오산업이 거둔 알찬 실적을 좀 더 냉정하게 따져보자.
먼저 지난해 바이오헬스가 기대 이상의 수출 실적을 거둘 수 있었던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코로나19라는 변수다. 바이오헬스 수출액 141억 달러 중 31억 달러는 코로나19 진단키트로 벌어들인 돈이다. 이를 제외해도 수출 실적이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바이오헬스의 수출 실적 순위는 10위에서 14위로 떨어진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진단키트 수출 실적도 의미 있는 성과가 분명하다”면서도 “하지만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없었다면 이 정도 수준의 수출 증가폭을 기록하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오의약품 실적이 안정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줄곧 증가세를 그리던 바이오의약품 수출 실적은 2019년 감소세로 돌아섰다. 생산실적도 2015~2018년 평균 15.6%의 증가율을 보였지만 2019년엔 2.8% 감소했다.
수출ㆍ생산실적이 일부 기업에 치우쳐 있다는 점도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 전체 바이오의약품 수출액(2019년) 중 바이오시밀러(바이오신약 복제약)가 68.2%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중 대부분은 셀트리온 제품이다. 생산실적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하는 곳은 59곳에 이르지만 전체의 23%가량을 셀트리온이 생산한다. 일부 기업의 성과가 바이오산업의 성장으로 오인될 수 있다는 거다.
아쉬운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바이오산업의 경쟁력을 가늠할 바로미터인 신약 개발은 여전히 성과가 미미하다. 신약 기술이전 금액이 2018년 4조8000억원에서 지난해 9조3000억원으로 부쩍 늘어난 건 긍정적이지만, 이전된 기술이 최종 개발까지 이어진 사례는 아직 없다.
국내에서도 신약을 등재하는 데 성공한 국내 기업은 2018년 이후 제로다.[※참고 : 지난해 유영제약의 골관절염 치료제 ‘레시노원주’가 신약으로 품목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기존 의약품의 성분을 개량해 만든 것으로 온전한 국산 신약이라고 보기엔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이런 문제점은 임상시험 현황에서도 드러난다. 2019년 기준 식약처가 승인한 임상시험 현황을 보자. 국내 기업이 진행 중인 임상1상은 168건, 임상2상과 임상3상은 각각 28건, 50건에 그쳤다. 반면 다국적 기업이 진행하고 있는 임상시험은 1~3상이 각각 46건, 80건, 159건에 달했다. 이는 국내 기업들의 새 의약품 출시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 늦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는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중요한 건 결국 투자인데 일부 기업들을 제외하곤 투자 여건이 좋지 않다”며 성과가 빨리 나지 않는 이유로 연구ㆍ개발(R&D) 실적을 들었다. 실제로 2019년 기준 세계 제약바이오 시장의 평균 매출액 대비 R&D 비율은 21.3%였지만 국내 기업들의 평균치는 6.6%에 그쳤다. 매출액 대비 R&D 비율이 높은 혁신형 제약사들의 평균치도 12.3%로, 세계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이런 밑단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산자부는 “신약 개발 리스크 완화, 생산ㆍ유통구조 고도화, 민간 투자 유치 등 주요 과제를 담은 ‘바이오산업 혁신전략’을 빠르게 이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산자부의 희망대로 올해를 바이오산업이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해로 만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과도한 기대와 섣부른 정책이 시장을 왜곡할지도 모른다.
익명을 원한 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오산업은 정부 정책과 작은 이슈에도 쉽게 흔들린다”면서 “이는 바이오산업에 왜곡과 버블을 부를 뿐만 아니라 국민 보건을 해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 도약의 원년, 올해는 가능할까.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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