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태블릿 대전 시티폰-PCS 데자뷰
전자책-태블릿 대전 시티폰-PCS 데자뷰
  • 정다운 기자
  • 호수 15
  • 승인 2012.10.28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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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의 암울한 미래

▲ 삐삐를 대신할 혁신제품으로 기대를 모았던 시티폰은 출시된 지 채 3년도 지나지 않아 박물관에 전시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시티폰 실패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전자책 단말기 역시 박물관 입성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사진: 지정훈 기자>
1997년 출시된 ‘발신기능’만 있는 시티폰은 멀티기능으로 무장한 PCS(개인통신서비스) 앞에 무릎을 꿇었다. 15년이 흐른 지금, ‘독서기능’만 있는 전자책이 멀티의 대명사 태블릿PC와 생존경쟁을 펼치고 있다. 시장에선 전자책이 시티폰 실패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시티폰 ‘데자뷰’ 현상을 취재했다.

세상에 나온 지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유물이 된 제품이 있다. 바로 시티폰이다. 무선호출기(일명 삐삐)로 연락이 오면 공중전화로 달려갈 수밖에 없던 시절, 발신이 가능했던 시티폰은 혁신이었다.

공중전화 주변에서만 사용가능했지만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는 편리성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 가격 경쟁력도 있었다. 당시에도 수•발신이 가능한 모토로라의 셀룰러폰이 있었지만 가격이 몇백만원에 달했다. 시티폰의 경쟁력을 확신한 정부까지 나서 시티폰 사업을 키웠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시티폰 사업자였던 한국통신은 6000여억원, 정부 총계 약 1조원의 손해가 발생했다.
시티폰의 실패 원인은 ‘016’ 개인통신서비스(PCS)의 시작이었다. PCS는 모토로라의 셀룰러폰보다 저렴한 가격에 통화(수•발신)는 물론 문자 등 부가서비스까지 제공했다. PCS폰은 서비스 시작 3개월 만에 가입자 수 100만명을 넘겼다.

‘수신은 삐삐로, 발신은 시티폰으로’라는 표어가 먹히던 시대는 가고 본격적 이동통신 대중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전자책 단말기(이하 전자책) 사업자는 시티폰의 실패 사례에 숨이 막힐 것이다. 전자책이 시티폰의 전철을 답습하고 있어서다.

시티폰과 전자책의 공통점은 한 가지 기능에 특화된 기기라는 것이다. 시티폰은 발신만, 전자책으로는 독서만 가능하다. 한 기능에만 주력했던 사업은 리스크가 크게 마련이다. 이른바 ‘원 소스’ 제품은 멀티 디바이스가 출시되면 사장돼 왔다. 사례는 무수히 많다.

 
팜파일럿 PDA는 데스크톱 PC의 무게가 11㎏에 육박하던 시절 등장했다. 저렴한 가격에 연락처•일정관리 기능을 제공하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인기는 금세 식었다. 팜파일럿 기능이 포함된 휴대전화가 PDA 출시 직후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주소록 기능을 두고 따로 팜파일럿을 구매해 연락처를 관리하는 소비자는 없었다.

닌텐도는 스마트폰 게임 시장이 커지면서 도태됐다. 닌텐도는 게임기능을 옵션으로 갖춘 스마트폰과 ‘게임’이 되지 않았다. 재기를 꾀하려 무안경식 3D 디스플레이 게임기까지 출시했지만 허사였다. LG의 스릴과 HTC의 에보와 같은 3D 게임용 스마트폰과는 아예 승부를 겨루기도 힘들었다. 닌텐도의 시대는 허무하게 저물고 있다.
이처럼 시티폰•PDA•닌텐도는 멀티 디바이스에 완벽하게 제압당했다.

그렇다면 전자책은 독서가 가능한 멀티 디바이스, 태블릿PC를 당해낼 수 있을까. 전자책 업계는 일단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분석한다. 태블릿PC가 전자책만의 ‘눈이 편안한 독서 경험’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시티폰 실패 답습하는 전자책

전자책 전문 기업 한국 이퍼브의 성대훈 총괄이사는 “LCD 디스플레이를 차용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 장시간 독서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디스플레이 뒤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눈이 쉽게 피로해져 가독성이 떨어지고 눈 건강에 좋지 않다”고 말했다.

전자책에 장착된 전자잉크(e-ink)용 패드는 기기에서 발산되는 빛이 없어 마치 종이책을 읽듯 편안하다. 성 이사는 “전자책에 사용된 패드는 반사형 디스플레이로 전적으로 외부의 빛에 의존한다”며 “외부 광원이 없으면 독서를 할 수 없는 단점이 있지만 기기자체에서 나오는 빛이 없으니 눈에 피로가 없고 실제 종이책을 읽듯 편안하다”고 설명했다.

성 이사는 전자책 기능을 가진 멀티 디바이스가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스마트폰 게임이 붐이지만 여전히 몸으로 즐기는 게임에 빠진 소비자가 있다”며 “독서를 태블릿PC가 아닌 최적화된 기기, ‘전자책’으로 하려는 니즈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자책 사업자인 아이리버의 이상원 사업부장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 부장은 “태블릿PC에도 전자책 콘텐트 다운로드 수가 많지만 대부분 잡지•만화 등의 가벼운 읽을거리”라며 “눈의 피로 때문에 일반 도서를 태블릿PC에서 읽으려는 소비자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론도 많다. 전자출판협회는 전자책 단말기는 물론이고 태블릿PC•스마트폰 등으로 유입되는 모든 전자책 콘텐트를 관리한다. 장기영 전자출판협회 사무국장은 “단기간 전자책 시장이 죽지는 않겠지만 전자업계 기술발전이 워낙 빨라 경쟁력이 얼마나 유지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전자잉크 패드와 LCD 패드를 한 태블릿PC 기기에서 동시에 구현하는 기술이 시험 단계에 있다”며 “그 기술이 상용화 될 경우 전자책 단말기는 구시대 유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원한 전자책 판매사업자 역시 “눈이 편하다는 장점은 인정하지만 전자잉크 패드 특유의 깜박임, 흑백 화면, 느린 와이파이 접속시간 등으로 소비자의 불만이 높다”며 “멀티 기능을 갖추고도 빠른 속도로 구현되는 최신 기기들과 붙어 경쟁이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자책 ‘크레마 터치’를 판매하는 알라딘 서점의 김성동 팀장은 “제품 출시 후 보름 동안 3000대의 단말기가 팔렸다”며 “아직 사업이 도입기임을 감안하더라도 판매량이 낮은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서점인 Yes24에서도 전자책 판매가 부진하다. Yes24의 김병희 팀장은 “크레마가 40일 동안 6000대 팔렸는데 객관적으로 많은 양이 팔렸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특히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볼 때 전자책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상원 아이리버 부장은 “전 세계 전자책에 공급되는 패드를 대만의 PVI라는 업체에서 독점하고 있어 가격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며 “유일하게 태블릿PC와 경쟁해야 하는 가격 경쟁력도 확보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30만원 이상의 가격대를 형성하며 고가 제품 이미지를 갖고 있던 태블릿PC의 가격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전자책만의 승부수 통할까

▲ 전자책 단말기의 기능을 기본적으로 탑재한 멀티 디바이스는 전자책 시장을 위협한다. 하지만 전자책 업계는 어떤 기기도 전자책만큼 눈이 편한 독서 경험을 제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사진:한국이퍼브>
인터넷 쇼핑몰 11번가의 한슬기 매니저는 “최근 보급형 태블릿이 온라인 마켓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제조사 MPGIO에서 만든 태블릿PC인 노트K는 가격을 79000원대까지 떨어뜨려 태블릿PC 판매 중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위기에 몰린 전자책의 최후의 보루였던 ‘저렴한 가격대’마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보급형 태블릿PC 사업자인 KIRD의 권혁 본부장은 “10만~20만원대 저가 태블릿PC의 스팩은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아이패드와 같은 고사양 태블릿PC에서 할 수 있는 기능이 모두 구현이 돼 실속형 구매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10만원대의 제품은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글자를 읽는데 눈이 피로하기는 하지만 동영상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인터넷 검색까지 된다. 시티폰과 전자책. 운명의 수레바퀴를 함께 할지 궁금하다. 확실한 건 전자책의 활로가 이전 시티폰처럼 막히고 있다는 것이다.

정다운 기자 justonegoal@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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