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축배냐 독배냐 한끝 차이로 판가름
M&A 축배냐 독배냐 한끝 차이로 판가름
  • 박용선 기자
  • 호수 14
  • 승인 2012.10.17 11: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웅진 사태로 본‘승자의 저주’

고속성장하던 웅진그룹이 10월 5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2007년 극동건설 인수와 태양광사업 진출 후 5년 만에 성장을 멈춘 것이다. 과도한 인수•합병(M&A)가 재앙을 자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M&A는 기업 성장의 최고 수단이지만 기업 패망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2012년 10월 5일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기자회견 현장. 윤 회장은 이렇게 실토했다. “무리한 확장의 결과로 법정관리까지 왔다. 태양광과 건설사업 등은 포기했어야 했다.” 재계 순위 25위(공기업 제외) 웅진그룹의 오너가 “더 이상의 성장은 무리”라며 고개를 떨어뜨리는 순간이었다.

웅진그룹은 정수기 렌탈업체 웅진코웨이와 학습지•출판업체 웅진씽크빅을 중심축으로 성장했다. 이후 음료(웅진식품), 교육(웅진패스원) 분야로 사업분야를 넓혔다. 그룹은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사업확장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인물은 윤 회장이었다. 한국브리태니커 세일즈맨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윤 회장은 웅진을 일으키며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렸다.

‘샐러리맨의 신화’ 윤석금 여기서 멈추나

▲ 샐러리맨 산화를 연출하던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과도한 M&A의 후유증으로 ‘패장’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사진은 윤 회장이 10월 5일 서울 충무로 극동빌딩에서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에 따른 기자회견을 갖는 모습.
하지만 무리한 사업 다각화가 윤 회장의 질주에 제동을 걸었다. 웅진그룹은 2007년 극동건설, 2010년 서울저축은행을 잇따라 인수했다. 2008년에는 새한(현 웅진케미칼)을 인수하며 그룹 신성장동력으로 태양광 분야(웅진에너지•웅진폴리실리콘)에 뛰어들었다.

극동건설 인수 후 5년여가 흐른 2012년 현재. 웅진은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처지에 몰렸다. 무리한 인수•합병(M&A)로 자금난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설상가상 경기불황이 닥친 탓이었다. 윤 회장과 웅진은 더 이상 불어난 채무를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

웅진그룹의 전체 부채 규모는 10조원으로 추정된다. 그룹 지주사인 웅진홀딩스의 부채는 올해 6월 기준 3조315억원이고, 극동건설은 1조758억원에 달한다. 특히 웅진그룹을 승자의 저주에 빠뜨린 원인인 극동건설은 지난해 영업손실 2162억원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에도 68억원의 적자를 보였다. 그룹 태양광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웅진에너지는 올 상반기 39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웅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무리한 M&A를 통한 사업 확장은 종종 ‘저주’를 부른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다.’ 승자의 저주는 한 기업이 인수경쟁에서 이겼지만 과도한 비용을 치름으로써 되레 위험에 빠지게 되거나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뜻한다.

재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재계에서 승자의 저주에 빠진 예를 들 때 항상 금호아시아나그룹을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웅진이 이를 대신할 것이다.”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대한통운을 인수한 후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그룹 계열 분리 과정과 워크아웃 절차를 밟고 있다.

웅진그룹은 비록 승자의 저주에 빠져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성공한 M&A와 승자의 저주는 한끝 차이다. 만약 윤 회장이 건설•태양광 부문을 끌어안은 후 그룹이 승승장구했다면 또 다른 성공 신화를 연출했을 수도 있다. 그만큼 M&A는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기업이 리스크가 큰 것을 알면서도 M&A를 추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영진 김영진M&A 연구소장은 “M&A는 자체 기술 개발이 부족하거나 사업다각화를 꾀해야 하는 기업이 성장한 업체를 인수해 그 기업의 모든 것을 한 번에 끌어 담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M&A는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장점 때문에 기업 M&A를 추진하는 대기업도 최근 들어 증가하고 있다. 2008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글로벌 불황을 ‘M&A’를 발판으로 돌파하겠다는 전략에서다.

실제로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기업은 M&A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모든 기업이 M&A가 그룹 성장을 위한 필수요소라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자본력이 풍부한 대기업은 상시 또는 일시적으로 M&A 부서를 만들어 세계 시장에서 좋은 매물이 나오길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 7월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CSR 모바일 부문을 인수했다. 삼성그룹의 광고 계열사 제일기획은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해 광고 회사 맥키니(미국), 브라보(중국)를 품에 안았다. 그룹 신수종 사업인 의료•헬스케어 분야에서도 M&A가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M&A의 M자도 꺼내지 못했던 과거 삼성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삼성뿐만이 아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현대건설을 인수했다. SK그룹은 SK하이닉스(2012년), 롯데그룹은 하이마트(2012년), 포스코는 대우인터내셔널(2010년), 한화그룹은 큐셀(2012년), CJ그룹은 대한통운(2011년)을 M&A했다. 현대차의 자동차-철강-건설 3대 핵심 성장축 구축, SK의 통신과 IT의 융복합, 한화의 미래 태양광그룹 도약 등 그룹 차원에서 구상하고 있는 미래 성장사업을 위한 M&A였다.

한 그룹 관계자는 “그룹 안에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M&A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며 “M&A 시장에서 우리 업종에 맞는, 미래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일치하는 매물이 있는지 항상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와 같은 경기침체 상황에서 M&A는 더욱 매력적일 수 있다. 기업 인수 가격이 비교적 저렴해서다. 물론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자금력이 풍부한 기업이나 경영능력이 뛰어난 기업에 한해서다.

M&A 매력적이지만 치명적인 함정

▲ 성장한 기업을 인수해 그 기업의 모든 것을 한 번에 끌어 담을 수 있는 점은 M&A의 최대 장점이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기업정책실장은 “불황 속 M&A가 증가하는 이유는 시장에 나온 피인수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라며 "과거 수천억원의 시장가치를 지닌 회사가 불황으로 인한 가치하락으로 인수가격이 수백억원으로 떨어진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가치가 낮은 알짜 기업을 인수해 시장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 버틴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M&A”라고 덧붙였다.

M&A는 최고의 성장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웅진과 같이 M&A는 기업 쇠퇴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전문가는 M&A를 추진할 때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영진 소장은 “비교적 안정적인 동종 사업에 종사하는 기업 인수인지, 위험부담이 큰 신규 사업 진출인지 정확한 M&A 목적과 대상을 선정해야 한다”며 “이후 철저한 정밀실사, 거품이 끼지 않은 적절한 가격 책정과 인수 후 관리가 조화롭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삼성이 밀가루 사업만 파고들었다면 오늘날 삼성은 없었을 것이다”며 “M &A는 기업 패망이라는 엄청난 리스크가 있지만 빠른 성장의 보증수표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
한 기업이 인수경쟁에서 이겼지만 과도한 비용을 치름으로써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되거나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뜻한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itvfm.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경인로 775 에이스하이테크시티 1동 12층 1202호
  • 대표전화 : 02-2285-6101
  • 팩스 : 02-2285-6102
  • 법인명 : 주식회사 더스쿠프
  • 제호 : 더스쿠프
  • 장기간행물·등록번호 : 서울 아 02110 / 서울 다 10587
  • 등록일 : 2012-05-09 / 2012-05-08
  • 발행일 : 2012-07-06
  • 발행인·대표이사 : 이남석
  • 편집인 : 양재찬
  • 편집장 : 이윤찬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병중
  • Copyright © 2025 더스쿠프.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thescoop.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