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한번에 능하다고 하면 백 번을 하라!
남이 열번에 능하다고 하면 천번을 하라!
인일능지기백지人一能之己百之,
인십능지기천지人十能之己千之.
어려서부터 내 좌우명이었다. 나는 형제들에게서 항상 ‘돌대가리’라는 소리를 들었다.
공부 잘하는 조카들에 비교해 봐도 확실히 돌대가리였다. 그러나 노력했다. 주변의 사람들에 비해 천배의 노력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호가 ‘돌대가리’를 뜻하는 ‘도올=돌’이 된 것이다.
- 「중용 인간의 맛」 통나무

참! 나, 어이없어. 뭐 이런! 30초 정도는 이렇듯, 허무했다. 그랬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그의 좌우명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선입견과 편견에 빠져 오해했던 탓이리라. 중용의 말처럼 몸소 그가 천배의 노력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니….
책을 읽은 이후에 나는 다시금 존경으로 그 가닥을 다잡는다. 그리곤 김용옥을 새롭게 바라보고자 한다. 이를 고백한다. 나의 치졸함과 불손함을 선생이여, 너그럽게 용서하시라.
人一能之己百之 人十能之己千之.
김용옥이 어려서부터 좌우명이라고 한 이 글귀를 「중용」에서 처음 접하고서 너무 좋아 메모를 한 적 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그 덕분일까. 내 머릿속에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또 한 사람이 있다. 1604년(선조 37년)에 그가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 성姓은 김金이요, 이름은 득신得臣이다. 득신의 어릴 적 좌우명 또한 김용옥과 많이 닮았다. 다음 ‘묘갈명墓碣銘(죽은 사람의 묘비墓碑에 새겨진 주요 행적과 인적 사항이 담긴 글)’을 보면 그렇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해서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노둔한 사람도 없겠지마는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그러니 힘쓰는 데 달려 있을 따름이다.
만약 재주가 넓지 않거든 마땅히 한가지에만 정성을 다해야할 것이니 차라리 이것저것 해서 이룸이 없는 것보다는 낫느리라.
- 「국역 백곡집國譯 柏谷集」 파미르
태어나자 큰 병을 앓고 난 이후, 득신은 열 살에 아버지 김치金緻(1577~1625)로부터 정훈庭訓(뜰에서 가르친다는 뜻•가정교육)을 받는다. 이 시절의 수업 교재가 있었으니 「사략史略」이다.
사략이 정확히 무슨 책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추측컨대 원나라의 증선지曾先之가 지었다는 「십팔사략十八史略」일 듯하다. 아동용 교재로 사용하고자 간략히 묶은 책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득신은 배운지 3일이 지나서도 책 한 줄을 ‘제대로 읽지도 못하였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소성素性이 노둔魯鈍한 탓이다. 김용옥 식으로 말하자면 ‘타고나길 돌대가리’라고 풀어서 적을 수 있다. 다르게는 ‘천치天痴’ ‘바보’인 셈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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