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찬물에 음식을 말아 놓은 고수레 그릇을 어두컴컴한 문 밖으로 가져가는 순간, 먼저 간 분들을 귀신이라 호칭하든 조상으로 호칭하든 상관없이 ‘산 자와 죽은 자의 나눔’이 있어 그다지 싫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보름달에 오버랩된,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분들과의 무언의 대화가 가능한 것도 ‘나눔의 미학’이 있는 고수레 덕분이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한가위에 볼 수 있는 살아있는 자들의 ‘나눔의 풍경’ 또한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할머니의 아들 또는 며느리는 다른 식구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슬그머니 할머니에게 다가가 하얀 종이봉투를 내밀곤 종종걸음으로 사라집니다.
할머니는 당일치기가 됐든, 연휴 내내 머물었든 손주들이 제 집으로 돌아갈라 치면 슬쩍 손을 만져주는 척 하면서 주름진 손 안에 꼬깃꼬깃 감춘 것을 전달합니다. 행여 손주들의 엄마, 아빠가 볼세라 아주 민첩하게 이뤄집니다. 청소년 시절의 한가위는 이처럼 선하고, 진실하고, 화합된 모습의 ‘선진화善眞和’가 담겨 있어 좋았던 것이죠.
어른이 된 이후엔 어찌된 탓인지 추석때 마다 ‘금의환향 스트레스’가 화두로 떠오릅니다. 특히 이번 추석연휴를 맞이하는 많은 사람들의 어색하고 괴로운 표정은 그 어느 때 보다 더한 것 같습니다. 베이비부머들의 경우, 대규모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다 이미 은퇴한 베이머부머는 인생2막을 위한 새로운 직장 찾기는 마치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격이고, 청년들의 일자리 찾기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이들의 돈줄이 마르니 당연히 즐겁고 풍성한 한가위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온가족이 추석을 미워하게 됩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다가오는 경제위기에 대한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재벌들은 적정한 부의 분배를 외면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입니다. 오직하면 정부가 나서 투자를 재촉하고 있겠습니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시장을 잃고 아우성치고 있는데 나라를 운영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분들은 상대방 약점 찾기와 대선 역학구도에만 신경을 쏟고 있는 모습만 보이고 있습니다.
경제민주화나 단일화 따위 보다는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해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 결국 국부國富를 이뤄내겠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한가위 시즌에 듣고 싶었던 많은 사람들의 바람은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진정한 선진화先進化를 이끌어갈 선진화善眞和 자질을 갖춘 위인은 과연 누구일까 점쳐보면서 금의환향 스트레스를 풀어보면 어떨까요.
더스쿠프 대표 이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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