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에 승리깃발 꽂는 보병 육성해야 “산다”
고지에 승리깃발 꽂는 보병 육성해야 “산다”
  • 유두진 기자
  • 호수 12
  • 승인 2012.09.25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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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중소기업연구원장의 ‘풀뿌리 경제학’

기업경쟁은 전쟁으로 비약되기 일쑤다. 그만큼 기업들의 생존경쟁은 피가 튀긴다. 국가간 경제전쟁을 가정해보자. 중소기업의 포지션은 무엇일까. 아마 ‘일반보병’쯤 되지 않을까. 얼핏 하찮은 군인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이 있다. 고지에 ‘승기’를 꽂는 이는 국가원수도, 장교도 아닌 일반보병이라는 점이다.

▲ 김동선 중소기업연구원장이 중소기업의 경쟁력 확보방안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국가 경제가 산다.’ 초등학생도 들어봤음직한 상투적이고 구태의연한 문구다. 그럼에도 경제단체장들의 연설문이나 각종 매체의 칼럼에서 좀처럼 빠지지 않는 문장이다. 중요한 내용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렇게 부르짖고 있는데도 중소기업이 ‘살지 못하는’ 환경이 지속되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청년들의 중소업체 회피도 여전하다. 사회분위기와 CEO의 자질 탓만 하기엔 상황이 만만치 않다.

재벌개혁만이 경제민주화는 아니야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실태를 사실적으로 들여다보는 눈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중소기업연구원 김동선(57) 원장은 정확한 눈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산업계 공무원으로 경험이 풍부한 그는 중소기업청장을 거쳐 대학에서 벤처중소기업학을 가르치고 있다. 9월 17일 상암동 DMC타워 중소기업연구원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 경제민주화가 이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구속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경제민주화 논의가 더 뜨거워졌다. 김 원장께서 생각하는 바람직한 경제민주화 방향은 무엇인가.

 
“경제민주화에 대한 논의는 ‘기업문화의 양극화’에서 출발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성장의 양극화, 소득의 양극화, 고용의 양극화 같은 것들 말이다.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양극화를 해소하면서 무너진 균형의 추를 바로 잡는 일, 이게 경제민주화다. 지금 정치권이나 언론에선 경제민주화의 초점을 대기업 비판과 재벌구조개혁에만 맞추는 듯하다. 물론 그런 것도 포함해야 하겠지만 경제민주화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논의돼야 한다.”

✚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고유업종을 침범하는 것 때문에 갈등이 많다. 대기업의 시장침입을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시장논리에 따라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서 대기업의 다양한 업종 진입을 반대할 명분은 없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 TV나 컴퓨터를 만드는 과정 중 관련 부품산업에 참여하는, 그래서 중소업체와 업종이 겹치는 부분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완전히 이질적인 업종에까지 침투해 시장혼란을 초래하는 건 문제다. 대기업이 참여한 업종 중에는 중소업체끼리도 과잉경쟁중인 분야가 있다. 외국의 대기업들은 핵심역량사업에 주력한다. 수익창출만을 목적으로 여기저기 사업을 벌이진 않는다.”

✚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가 2006년에 폐지됐기 때문에 대기업이 마구잡이로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게 아닌가. 물론 지난해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가 시행되면서 고유업종제도가 부활했다는

 

 의견도 있지만….
“고유업종제도의 성격은 사전적 규제였다. 적합업종제도는 사후적인 성격이다. 대기업이 진입한 업종을 중소기업에게 이양하는 게 어떠냐고 권고하는 수준이다. 고유업종제도가 부활했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도 운영의 묘를 잘 살리고 대기업의 적극적인 협조만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좋은 효과를 노려볼 수 있다.”

✚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시장개방이 확대되고 있다.
“중소수출업체들이 FTA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은 많다. 그런데 잘 몰라서 활용을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 유럽연합(EU)에 이어 일본, 중국으로까지 FTA가 확대되면 우리나라 4대 교역대상국이 모두 FTA 권역에 들어온다. 해당수출품목에 대한 관세가 어떻게 인하되는지, 그 혜택을 받으려면 어떻게 원산지 증명 발급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교육이 필요하다. 현재 관세청과 대한상의에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향후 FTA의 활용정도가 해당기업의 성공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 김대중 정부 시절 IT•중소벤처 위주로 잘 닦아놓은 길을 이명박 정부가 토목•대기업 위주로 변질시켰다는 지적도 있는데.
“내가 이명박 정부 초대 경제비서관을 했다. 알다시피 중소기업청장도 했다. 그래서 정부의 정책기조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현 정부는 창업지원정책, 서민금융,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 등을 펼치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환율혜택으로 대기업수출이 늘면서 정부지원이 대기업에만 집중됐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현 정부 역시 경제의 뿌리인 중소벤처의 육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 현재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수는 얼마나 되나.
“약 307만개로 파악된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 수의 99%다. 고용으로 치면 88%를 차지한다. 수치상으로 보면 절대적인 비중이다.”

✚ 장관급 부서인 ‘중소기업부’를 정부부처로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는데.
“정치권에서 얘기가 나왔고, 업계에서도 그런 요청이 있는 것 같다. 조직이 강화되고 확대돼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선 동감한다. 그런데 이게 꼭 부部의 모양으로 승격을 해야 하느냐에 대해선 신중한 검토가 필

▲ 청년들의 취업난이 심각한데 반해 중소업체는 사람을 못 구해 난리다. 사진은 취업박람회장 풍경.

요하다. 기존의 지식경제부, 중소기업청의 역할과 연관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반면 중소기업에서는 인력이 없어서 문제라고 한다.
“인력의 ‘미스매치’가 일어나게 된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 때문이다. 선진국치고 고졸자의 80%가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많은 잠재 인력이 (불필요하게) 대학에 진학해 눈높이만 높아졌다. 그러다보니 자기에게 맞는 직장을 찾지 못하는 거다.”

✚ 이를 해결할 대안은.

“선先취업, 후後진학 시스템이 대안 중 하나다. 마이스터고라든지 특성화고 같은 곳을 많이 양성해서 그곳을 졸업한 인력들을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으로 유도하는 방안이 있다. 그렇다고 대학에 못 가는 건 아니다. 근무를 하면서 학위는 나중에 이수하는 형태의 커리큘럼이 많이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청년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대기업에 들어가 부품노릇을 하기 보다는 성장성 있는 중소기업에서 다양한 역할과 경험을 해 보는 게 청년의 미래를 위해 좋다.”

일부 중소기업 CEO 경영관 바뀌어야

청년의 인식이 나쁜 건 중소기업에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루에 14시간씩 근무를 시키면서 시간 외 수당은 모른 척 하고, CEO의 독선적 경영으로 직원을 힘들게 한다는 푸념도 들린다.
“이해한다. 청년들을 중소기업으로 유도하기 위해선 임금과 근무환경이 개선돼야 하고 중소기업 CEO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근무환경 개선은 기업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 재형저축제도 등 임금여건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안도 정부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소업체 CEO들의 인식개선이 시급하다. 기업은 경영진뿐만 아니라 종업원•투자자•소비자의 공생공간이다. 그런데 일부 CEO는 기업을 자기의 개인 재산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는 문제다. 공생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 현재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이기도 하다. 졸업 후 학생들이 곧바로 창업일선에 뛰어드는 경우가 늘고 있다. 월급쟁이부터 시작해 단계를 밟는 것이 순서라는 의견도 있는데.
“무엇이 더 낫다고 일반화할 순 없다. 외국에는 스티브 잡스나 마크 주커버그처럼 대학을 중퇴하고 창고에서 창업해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사례를 찾기 힘들다. 교육제도라든지 사회적 여건이 아직 무르익지 않은 탓이다. 가능하면 직장생활을 통해 자신의 기술을 현장에 접목해보고 거기에서 사업아이디어를 얻었음 한다. 구체적인 사업계획서는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된 다음 창업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 Who is 김동선

 - 고려대에서 무역학을 전공한 뒤 헬싱키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5회 행정고시 합격 후 특허청과 산업부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다. 제11대 중소기업청장을 역임했고 현재 중소기업연구원장과 숭실대 교수로 근무 중이다.

유두진 기자 ydj123@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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