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포虎砲 발명에 파괴적 대장군전이 완성
호포虎砲 발명에 파괴적 대장군전이 완성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 호수 12
  • 승인 2012.09.25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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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 김기환 선생의 이순신공세가(李舜臣公世家) 제5회 ②

조선 정부가 서인과 동인으로 나뉘어 군비를 할까말까 수군을 둘까말까 하고 당파싸움만 일삼는 동안에 일본은 대륙침략의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대장 신립이 진언한 계본에는 “청컨대 수군을 파하고 육군에만 전력하게 하소서”하였다. 그때에 마침 선조는 이순신의 장계를 받아 거북선의 도형과 아울러 그 시험해본 성적을 보고 대단히 기뻐하던 때에 신립의 계본을 보고 “이렇게 신기 묘술인 거북선을 왜 폐하라 하는가? 적이 바다로 오거든 어찌하여 수군을 없애려고 하는가?” 하고 의혹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신립과 그 당파인 서인들이 수군을 폐하자는 논리는 이러하였다. 지금 김성일의 일파 동인들이 군비를 아니 하기로 하여 조정의 의견이 결정되었거늘 쓸 데 없이 수군을 확장해서 일본뿐 아니라 명나라에게까지 의심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하나요, 또 설사 일본이 침범한다 하더라도 일본국은 사방이 바다로 두른 섬나라라 그 백성들이 모두 물에 익숙하여 도저히 수군으로 일본군을 막기가 어려우니 차라리 육지에 끌어올려서 대번에 철기1)鐵騎로써 쳐부수는 것이 상책이라 함이 둘이니, 이 두 가지 이유로 수군을 확장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있던 것도 폐해버리고 오직 육전2)에만 전력하자는 것이었다.

선조는 그 어느 말을 따라야 할지 몰라서 주저하였다. 신립의 주장은 조정에서 큰 분규를 일으켰다. 그 실체는 동서당파의 싸움이었고 국가본의는 아니다. 바다로 돌출한, 삼면이 바다인 조선이 되어 해군이 불필요하다는 말이 소위 무장의 입으로 나오게 되니 해상권이 무엇인지 영해3)가 무엇인지 조선에 바다를 마주한 도와 군읍이 얼마인지를 모르는 말이며 한심한 일이었다.

유성룡은 거북선의 성공으로 해서 조정에 일어난 풍파를 자세하게 이순신에게 서간을 보내고 그 서간 끝에 “조정의 인심이 국가를 위함보다 당파 또는 자신을 위함이 많고 공심4)公心보다 남의 성적을 시기함이 많으니 너무 수군을 확장하여 사람들의 미움을 받지 않도록 하시오” 하였다. 순신과 유성룡 두 사람 사이는 서간이 종종 내왕하여 일개월을 잡고도 이삼차는 서로 내왕하여 왔다. 두 사림의 마음속에는 한조각 영서5)가 서로 비추었다.
 

▲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내부에 전시된

거북선을 한 유치원생이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순신이 유성룡의 서간을 다 본 뒤에 길게 한숨을 쉬며 탄식하였다. 순신은 일본의 군사 사정을 잘 안다. 일본은 60여 주州로 나뉘어 상호 정벌의 전쟁을 위주로 하여왔다. 제후들의 영토가 서로 인접한 관계로 육전에만 전력하였고 해전은 희소하였다. 그런즉 해전보다도 육전에 경험이 더 많다고 아니할 수 없다. 수길이 일본 60여 주를 통합한 것도 육전으로 된 것이요 해전으로 된 것은 아니었다. 금번 조정에서 신립의 말이, 일본인은 수전에 능하니 우리는 대적할 수 없는 수군을 폐하자 하였으나, 이는 일본의 군사상 사정을 모르는 어리석은 말이다.

만일에 일본인이 육전에도 능하다 하면 우리는 육전으로 대항할 수 없으니 육군도 폐하자 할 것인가.
바다로 오는 적군을 요진6)要津과 요해要海 요충7)要衝에서 미리 준비하였다가 쳐부수지 아니하고 내륙으로 불러들려 산 백성을 어육魚肉으로 만들고 말 것인가. 적이 비록 일천 척 병선에 수십만 대군을 몰고 온다 할지라도 타국他國의 객병8)客兵인 저희가 조선 연해의 험이9)險易와 조수의 순역10)順逆을 알지 못할 것인즉 적을 격파하기는 우리 수군 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은 병선만 격파하면 대륙으로 나올 수 없을 것이 아닌가. 이제 조정에서 이러한 파문이 일어나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로다 하고 순신은 길게 탄식하였다. 이때에는 제2호 거북선을 짓기 시작한 때였다. 순신은 곧 분향하고 엎드려 장계를 지었다.

동풍이 연일 크게 분 뒤에 동해의 일본국 쪽으로부터 배 짓는 나무조각이 바다를 덮어 떠온다는 말과, 일본에 끌려갔던 어민 공대원 등의 말을 들으면 일본에서 오래지 않아 조선과 명나라를 치기 위하여 30만이 넘는 대군을 일으킨다는 말과, 일본에서는 포구마다 병선을 짓는다는 말이며, 수길의 호승지벽11)好勝之癖이 정녕코 이웃나라를 범할 것임을 상세하게 쓴 후에 “바다로 오는 적을 막는 데는 수군밖에 없사오니 국방의 대책大策은 수군이거나 육군이거나 어느 것을 물론하고 한쪽을 폐할 수는 없습니다” 하여 수군을 폐함은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운명을 위험에 처하게 함이라고 장계를 써서 밤을 새워 상경시켜 선조에게 올렸다.

선조는 마침내 신립이 장계에서 청한 대로 육군에만 전력하고 수군을 파한다는 교서를 이순신에게 내리려고 하던 차에 순신의 장계를 받았다. 선조는 그 장계를 읽고 무릎을 치며 순신의 문장을 못내 칭찬하였다. 선조는 수군 혁파를 주장하는 제신들에게 그 장계를 돌려 보이고 더 다른 의견을 묻지도 않고 순신의 장계에 옳다고 윤허하고 대장 신립의 계본에는 윤허하지 않는다는 비지12)批旨를 내렸다.

신립의 수군혁파안은 이순신의 수륙병존안에 패하였다. 순신의 문장으로 인하여 선조의 뜻이 기울어졌다.
순신의 장계는 말이 바르고 이치에 맞는데다가 또 그 문장 명필의 광채를 가미한 까닭이었다. 서인들은 순신의 의견이 옳기 때문이라고 하기 싫어서 글을 잘해서 또 글씨를 잘 써서 이겼다고 하여서 이것이 도리어 세력 잡은 무리들의 미움을 받는 장본이 되고 말았다.
 

▲ 순신이 특별히 괴이한 군함을 만드니 그 형상이 거북과 같다. 이배는 세계 최초의 장갑철선이었다. 그를 새로 발명해낸 사람은 곧 이순신이었다. 사진은 지난 5월 여수 거북선대축제.

순신의 장계가 효과를 내어서 수군 혁파만은 면하게 되었으나 동인들의 비전론非戰論과 서인들의 육군주의陸軍主義에 다 같이 시기를 받아서 거북선 20척의 건조와 기타 수군확장안은 뜻대로 되지 못하였다.
이렇게 조선 정부에서는 군비를 할까말까 수군을 둘까말까 하고 당파싸움만 일삼는 동안에 일본에서는 대륙침략의 계획을 착착 진행하게 되었다. 대마도수對馬島守 종의지宗義智(소요시토시)는 원래에 전쟁을 원치 않는 고로 수길이 조선에 길을 빌려 명나라에 침입하려 한다는 계획과, 머지않아 일본의 대군이 조선을 침범할 터이니 미리 명나라에 이 뜻을 전하여 외교적 수단으로 일을 무사하게 해결하도록 하라고 충고하여왔다.

일본 승려 현소玄蘇(겐소)가 김성일을 보고 비밀히 한 말이 이러하였다. “명나라가 오래 일본과 왕래가 끊어져서 외교 사절이 없으므로 수길이 분하고 부끄러움을 품어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니 조선이 만일 앞서서 이 뜻을 명나라에 알려 일본으로 하여금 사절의 길을 통하게 하면 반드시 무사할 것이요 일본 백성들도 또한 전쟁의 노역을 면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러나 김성일은 이 말을 감추고 조정에 알리지 아니하였다. 그 이유는 자기가 장담하기를 수길은 두려워 할 것이 없다고 말한 데 위반이 되는 때문이었다.

현소는 김성일의 어리석고 고집 세고 무성의함을 웃어넘기고 다시 선위사13)宣慰使 오억령吳億齡에게 명년에는 일본이 대군을 이끌고 조선에 길을 빌려 명나라를 칠 것을 말함에 오억령이 크게 놀라 그대로 조정에 상주하였다. 선조는 비전론자들의 말을 믿고 오억령이 망언한다 하여 선위사라는 오억령의 관직을 파면하여 버렸다. 오억령은 나라를 위하여 개탄하기를 마지아니하였다.

이렇게 어수선한 중에 오직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모든 장애를 물리치고 군함과 병기를 정리하며 거북선도 조정의 시기를 받아가며 두 척을 조성하였으며 또는 관하 오읍 육진에도 군사를 훈련케 하며 경향14)京鄕을 물론하고 쇠를 다루는 명인들을 불러 대완구 불랑기 신기포神機砲 대장군전 화전 대검大劍 장창 장겸長鎌 구색鉤索 등 예리한 무기와 피령전皮翎箭 유엽전 장편전長片箭 등등 수십만 개를 제조하고 천하의 지혜와 용기를 갖춘 자들을 받아들였다.

이러하여 남방의 충의롭고 세상을 개탄하는 인물들이 구름 모이듯 모여들었다. 전라우수사 이억기도 당대 명장이었다. 순신이 군대를 다스리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모방하였다. 순천부사 권준도 호걸이다. 거북선을 모방하여 일척을 지었다. 우후15) 이몽구李夢龜 이외에도 각읍 각진의 수령 변장들도 다 순신의 감화를 받아서 정성을 다하여 군대를 다스리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임진1592년 3월 5일 『일기』에 보면 상경하였던 진무가 돌아와 좌상 유성룡의 서간을 전한다. 그 편지와 함께 『증손전수방략 增損戰守方略』이라는 책자를 보내었다. 이는 수륙전의 전술을 논의한 책자이다.
유성룡이 기서16)奇書를 구하여 순신에게 제공하여 그 병법의 전략전술을 더 보조하자는 뜻이었다.
순신이 관람한 뒤에 “참으로 만고의 뛰어난 이론”이라고 하여 채용하였다.

1) _철기鐵騎 : 철갑을 입은 기병. 날래고 강한 기병.
2) _육전陸戰 : 육지에서 벌이는 전투.
3) _영해領海 : 영토에 인접한 해역으로서, 그 나라의 통치권이 미치는 범위. 연안해, 내해內海, 만灣, 해협 따위로 이루어지는데, 해수면이 가장 낮은 썰물 때의 해안선을 기준으로 폭 3해리까지가 보통이지만 나라에 따라 6해리, 12해리를 주장하기도 한다.
4) _공심公心 : 공평하여 사사로움이 없는 마음.
5) _영서靈犀 : 영검이 있는 무소의 뿔. 그 한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어 양방이 서로 관통되었으므로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6) _요진要津 : 배로 건너는 중요한 길목이 되는 나루.
7) _요충要衝 : 지세地勢가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
8) _객병客兵 : 다른 곳에서 온 병졸.
9) _험이險易 : 험난함과 평탄함.
10) _순역順逆 : 순리順理와 역리逆理를 아울러 이르는 말.
11) _호승지벽好勝之癖 : 남과 겨루어 이기기를 좋아하는 성미나 버릇.
12) _비지批旨 : 상소에 대하여 임금이 내리는 하답.
13) _선위사宣慰使 : 조선 시대에, 외국 사신을 영접하는 일을 맡아보던 임시 벼슬. 또는 그런 벼슬아치. 정조 때 영위사로 고쳤다.
14) 경향京鄕 : 서울과 시골을 아울러 이르는 말.
15) _우후虞候 : 각 도 절도사에 소속된 관직. 각 도의 주장主將인 절도사의 막료로서 주장을 보필한 까닭에 아장(亞將 : 副將)이라고도 한다. 수군우후는 정4품, 육군인 병마우후는 종3품.
16) _기서奇書 : 내용이 기이한 책.
17) _용천龍泉 : 검의 이름.
18) _두우斗牛 : 28수宿 중의 두성斗星 즉 북두성과 우성牛星 즉 견우성. 중국 삼국 시대에 오吳 나라가 멸망하기 전에 용천龍泉과 태아太阿의 두 보검이 풍성豐城 땅에 묻혀 있으면서 그 검광劍光이 두성과 우성 사이를 쏘기에 장화張華와 뇌환雷煥이 찾아서 나누어 가졌으나 후일 두 마리의 용이 되어 사라졌다는 전설이 있다.

정리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자료제공 | 교육지대(대표 장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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