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경영 | 제갈량諸葛亮의 진면목 ③
제갈량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다. 작은 아버지 제갈현諸葛玄은 원술에 의해 예장豫章 태수로 임명되자, 제갈량과 제갈균諸葛均(제갈량의 동생)을 데리고 부임했다. 그런데 마침 한나라 조정에서는 주호朱皓를 다시 뽑아 제갈현을 대신하도록 했다. 제갈현은 평소 형주목 유표와 두터운 교분이 있었으므로 그에게 가서 의탁했다. 제갈현이 죽자 제갈량은 직접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양보음梁父吟’을 즐겨 불렀다. 제갈량은 키가 여덟 자로 늘 자신을 관중管仲과 악의樂毅에 비유했지만, 그때 사람들은 이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정사 삼국지 촉서」 민음사
어떤 느낌이 드는가. 톡 까놓고 말하자. 제갈량 집안이 뭐 그리 대단치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아버지의 아버지, 또 아버지의 아버지로 계속해서 올라가다 보면, 제갈량만 그런 게 아니고 그 누구인들 왕후장상 벼슬을 지낸 조상이 한 분은 없으랴. 또 누군들 부잣집 도령이고 후손이 아니었으랴. 따라서 3대나 4대째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한 때의 벼슬과 부자 가문으로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고 함부로 평할 수 없는 것이다.
제갈량은 어땠는가. 아버지를 여의고 작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이걸 보노라면, 당시 기준으로 집안 배경은 별 중요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정리하자. 제갈량은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대부 출신’에 불과하다. 따라서 보통 사람에 속한다. 그렇지 아니한가.
다만 이 부분이 좀 재미가 있다. 신체적인 게 그렇다. ‘키가 여덟 자’라 했으니, 오늘날 식으로 환산하면 ‘184㎝’가 된다. 좀 훤칠했다고 해야 할까나.
일설에 따르면 얼굴이 멀끔하게 잘 생겼다. 그러니 훈남에 해당된다. 만약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제갈량은 연예인이 될 신체조건과 얼굴을 갖췄다. 원소袁紹처럼 대단한 집안四世三公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조조曺操처럼 막강한 부富를 자랑하는 유산 상속자도 아니다. 자랑할 게 별로 없는 평범한 남자가 바로 제갈량이었다. 적어도 스물예닐곱 나이로 보이는 제갈량은 그랬다.
학력學歷을 살피면 동문 친구 셋이 삼국지에 등장한다. 셋이란 ‘석도石韜, 서서徐庶, 맹건孟建’이다(석광원, 서원직, 맹공위라고도 하는데, 각자의 성姓에 자字를 합친 것이다).
셋 중에 제갈량이 달리 뛰어났다는 기록은 없다. 오히려 동문 셋은 ‘책 속의 자구를 완전히 기억하고 암송하기를 즐겼다’고 하는 데 반해 제갈량은 ‘큰 틀에서’ 책을 읽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독서 방법이 달랐다. 좀 특이했다.
이를테면 구구절절 글자나 따지는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문제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려 들지 않고 ‘문제 제기와 해결 방안의 구상’에 힘쓰는 학력學力에 더 관심이 많았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석사나 박사 학위 취득을 목적으로 하는 공부가 아니란 얘기이다.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에 더욱 더 정진하는 방법으로 학력學力에 매진했다는 의미다.
<다음호에 계속>
심상훈 편집위원 ylmfa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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