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선 승부사 회심의 한방 날릴까
벼랑에 선 승부사 회심의 한방 날릴까
  • 김정덕 기자
  • 호수 10
  • 승인 2012.09.11 2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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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남자’웅진그룹 윤석금 회장

▲ 앞만 보고 질주하던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이 최근 뒷걸음질치고 있다. 업계는 그의 성공신화를 다시 볼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웅진그룹이 위기다. 자금난 때문이다. 알짜기업이던 웅진코웨이를 매각하고 웅진폴리실리콘까지 내놨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승승장구의 대명사로 통하던 윤석금 회장이지만 이번엔 정말 힘들다.

올해 2월 8일. 웅진그룹 계열사 CEO가 한 자리에 모였다. 그룹 매출의 24.6%를 차지하는 웅진코웨이의 매각배경과 기대효과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의 표정은 비장했다. 알짜회사 웅진코웨이의 매각을 통해 살길을 모색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웅진그룹에 웅진코웨이의 매각은 삼성그룹이 삼성전자를 파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웅진코웨이의 지난해 매출은 1조7000억원, 영업이익은 2400억원에 달했다. 국내 정수기 시장점유율은 56%로 업계 1위였다. 웅진그룹이 ‘현금지급기’ 같은 역할을 하는 핵심계열사를 내다 팔겠다고 한 셈이니, 그 이유에 관심이 쏠린 건 당연했다.

공격수 ‘골문’을 잘못 봤나

윤 회장은 이 자리에서 명확한 목표를 밝혔다. “그룹 자금사정이 나쁘기 때문에 웅진코웨이를 파는 게 아니다. 다른 곳에 투자할 여력을 마련하기 위해 선제적 대응을 한 것이다.”

윤 회장이 말한 ‘다른 투자처’는 태양광 사업이다. 그는 “태양광 사업의 성패는 원가를 낮출 수 있느냐에 달렸다”며 “(나는) 이걸 할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스포츠 경기 포지션에 비유하면 윤 회장은 과감한 공격수다. 확신이 있을 땐 베팅을 주저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룹의 핵심계열사인 웅진코웨이를 시장에 던질 만큼 그는 태양광 사업에 확신을 가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달랐다. 웅진코웨이를 매각한다고 해도 태양광 사업에 베팅할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웅진그룹이 올해 말까지 갚아야 할 차입금은 2740억원이다. 내년 3월 5000억원, 6월 6240억원을 추가로 갚아야 한다. 약 1조4000억원이다.

반면 웅진코웨이 매각 대금은 약 1조2000억원이다. “공시된 재무재표에서 개별기준으로 부채를 뽑아보면 1조1000억원”이라는 웅진그룹 관계자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1000억원밖에 남지 않는다. 신한금융투자 김상훈 연구원은 “차입금 대부분을 차환 없이 상환한다고 가정하면 계열사 지원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엄청난 빚을 진 상태에서 투자를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웅진그룹의 태양광 사업 역시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2009년부터 폴리실리콘 시장에 공급과잉이 일어나면서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가격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대기업에서도 한화그룹을 제외하곤 사업을 중단하거나 포기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2010년 은행권으로부터 경북 상주공장 투자비용 3196억원을 신디케이트론(다수의 은행이 중장기 대출에 참여하는 것)으로 빌린 것도 문제가 됐다. 대출 당시 부채상환비율이 3.6배 이상이면 일시 상환하도록 하는 ‘기한이익상실’ 조항을 포함시켰는데, 웅진그룹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 부채를 조기 상환해야 할 처지가 됐다.

▲ 웅진그룹이 성장을 견인했던 알짜 계열사 웅진코웨이는 9월 중 매각절차가 마무리 될 예정이다.(사진=뉴시스)
윤 회장으로선 이런 상황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껏 숱한 위기를 정면돌파하면서 승승장구를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2003년부터 시작된 두원테크와 웅진코웨이개발 합병에서부터 웅진쿠첸과 웅진에너지 출범, 웅진패스원 출범과 극동건설 인수, 웅진폴리실리콘 출범, 웅진해피올 합병, 최근엔 내비게이션 사업 진출과 화장품 브랜드 출시까지 윤 회장이 이끄는 웅진그룹은 성장일로를 걸었다. 그 결과 웅진그룹은 교육·출판, 생활가전, 태양광, 소재, 건설, 식품, 금융 분야를 통틀어 15개 계열사를 둔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2011년 기준으로 그룹의 총 매출은 6조원대였다.

외환위기(IMF)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윤 회장의 전략은 빛이 났다. 1999년 그룹 내 2위의 효자계열사인 코리아나화장품을 매각했다. 여기서 확보한 자금을 다른 계열사들을 지원하며 위기를 탈출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당시와는 많이 다르다. 웅진그룹의 사업주축인 건설과 태양광, 금융(저축은행) 모두 시련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불황과 영업적자가 겹치면서 웅진그룹의 기둥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웅진그룹 자금난의 시발점은 2007년 극동건설 인수다. ‘승자의 저주’였다. 당시 웅진그룹은 극동건설을 6600억원에 인수했다. 거기에 건설 경기 하락으로 윤 회장과 계열사의 지급보증, 유상증자가 더해져 총 9000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인수 직후 건설경기는 더욱 악화돼 장기불황으로 이어졌다. 극동건설은 지난해 2162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더 큰 문제는 극동건설 인수자금이 모두 외부자금이었다는 점이다. 현대증권 이상구 연구원은 당시 “극동건설 인수로 웅진그룹의 재무리스크가 상당히 높아졌다”고 우려했다. 이 우려는 5년 후 현실이 됐다.

 
극동건설 인수 ‘승자의 저주’

신사업으로 추진한 금융사업도 윤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웅진그룹은 지난해 8월 웅진캐피탈을 통해 서울저축은행(서울)과 늘푸른저축은행(경기)를 인수했다. 총 1900억원 가량이 인수자금으로 들어갔다. 문제가 된 곳은 서울저축은행이다. 2009년 1106억원이었던 적자규모가 2010년 1142억원으로 3% 늘어났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인한 손실은 재무구조를 악화시켰다. 윤 회장은 모기업인 웅진캐피탈을 지원군으로 내세워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을 높이고 영업정지만 막는데 만족해야 했다. 특히 일부 저축은행이 정치권의 비리사건에 연루돼 업황이 나빠진 게 윤 회장의 발목을 또 다시 잡았다.

웅진그룹이 추진하는 각 사업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갈수록 심해지는 자금난도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 대신증권 이선경 연구원은 “웅진코웨이 매각만으로는 자금난을 완전히 해결할 수도 없고, 공격적인 투자도 어렵다”며 “자금확보를 위해 일부 계열사를 정리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예상대로 윤 회장은 웅진폴리실리콘 매각에 이어 웅진패스원도 매물로 내놨다. 투자금을 만들어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윤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웅진을 둘러싼 외부환경은 썩 좋지 않다. 알짜기업인 웅진코웨이를 사겠다는 기업은 많았지만 다른 매물은 아직 입질조차 없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윤 회장의 ‘한방’ 가능성은 갈수록 낮아질 수밖에 없다. 웅진그룹이 위기가 깊어지고 있다.

 
<Issue in Issue>
웅진홀딩스 자금난
1년 내 상환액 1조원 넘어

웅진코웨이 매각 대금이 1조2000억원이라 하더라도 세금을 제외하고 나면 웅진홀딩스로 유입되는 실제 대금은 약 1조600억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윤석금 회장 일가가 매각 대금을 100% 유상증자로 참여해 웅진홀딩스에 투입하는 것을 가정했을 때다.

매각이 완료되면 웅진그룹은 웅진코웨이 지분을 담보로 차입했던 부채를 즉시 상환해야 한다. 웅진그룹은 8개 금융기관으로부터 3091억원의 여신을 활용하고 있다. 이 여신엔 웅진코웨이 지분, 웅진에너지와 웅진씽크빅이 담보로 잡혀 있다.

웅진캐피탈의 차입금이 700억원, 웅진플레이도시는 700억원, 극동건설 프로젝트(PF) 파이낸싱 자금 1200억원 등 2600억원에도 웅진코웨이 지분이 담보로 잡혀 있다. 때문에 웅진코웨이 지분 매각 이후 즉시 갚아야 한다. 웅진코웨이 매각 이후 금융기관에 즉시 상환해야 할 자금은 총 5691억원이다.

웅진홀딩스가 1년 내 상환해야 하는 차입금과 사채 규모는 6455억원 가량이다. 이중 웅진코웨이 담보가 포함된 자금은 1641억원이다. 이를 제외하면 약 4800억원이 남는다.

1년 내에 웅진홀딩스가 상환해야 할 자금이 모두 합해  1조원을 넘는다는 얘기다. 웅진코웨이 판매 대금 대부분을 소진하고 고작 100억~200억원이 남는다.

신한금융투자 관계자는 “담보로 잡힌 차입금은 제외하고 1년 만기가 되는 차입금 중 일부를 차환한다면 계열사에 자금을 지원하는 게 가능하다”고 전했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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